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잼버리 파행 이후 새만금 SOC예산 삭감과 관련한 여야 대응과 관련해 “국민의힘은 정략적이고 전북 정치권은 낡고 구태의연하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26일 <프레시안> 전북취재본부가 주최한 '새만금과 전북의 미래' 긴급 대토론회에서 나온 말이다. 전북도민의 아픔을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는 여야 거대정당의 문제를 직격한 발언 중에서 이처럼 핵심을 찌른 말도 없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잼버리 파행 이후 ‘지역 책임론’을 내세우며 맹폭을 퍼붓는가 하면 호남 갈라치기에 나서 다시 전북을 포위하는 등 전략적이고 정략적인 모습을 보였다.
송언석 국회의원(국민의힘, 경북 김천)이 “전라북도가 ‘잼버리 대회’를 핑계로 새만금 관련 SOC예산 빼먹기에 집중했다”며 ‘전북 책임론’의 군불을 지폈고, 같은 당의 정경희 의원(비례대표)이 가세해 “전북의 꿍꿍이는 새만금 개발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핑계 좋은 볼모로 잼버리를 유치했다”며 ‘꿍꿍이 전북’으로 몰아갔다.
전북은 일순간에 국가예산을 빼먹고 뭔가 꿍꿍이가 있는 지역으로 폄하됐다. 국민의힘은 특히 전북을 ‘일 못하는 지자체’로 은근슬쩍 몰아가는 등 그야말로 ‘전북 직격탄 시리즈’를 내놓으며 공격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8월 말 전남 순천국제정원박람회를 둘러보며 극찬을 한 후 “일 잘하는 지자체와 일 잘 못하는 지자체 사이에 차별이 있어야 주민의 삶이 윤택해지고 지방자치제도가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발언에 대해 “전북 부안의 ‘새만금 잼버리’ 행사와 전남 순천의 국제정원박람회를 대비시켜 전북을 ‘일 못하는 지자체’로 내치고 전남을 껴안는 전형적인 ‘호남 갈라치기’가 아니냐”고 강하게 성토하고 나섰다.
이 와중에 느닷없이 내년도 정부예산안에 새만금 SOC예산이 78%나 대거 삭감되고 ‘기본계획(MP)’가지 재조정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나와 전북은 그야말로 그로기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이런 일련의 시리즈를 ‘국민의힘의 정략’이라고 봤던 것이다. 철저히 계산된 정치적 셈법에 의한 접근이 아니면 이럴 수 없다는 불만이 섞여 있다.
이 대표는 전북정치권의 대응에 대해서도 낡고 구태의연하다고 직격했다.
문제가 터지자 뒤늦게 부랴부랴 수습하는 과정에서 전북 정치권은 중앙정부의 전북 배제론과 홀대론을 부각하며 삭발과 집회 등 여론몰이 압박을 통해 새만금 SOC예산 복원을 외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는 “20년 전 전북도청 앞에서 새만금 흔들기 규탄 집회를 열고 서울 상경 집회에서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쓰던 시절과 판박이”라며 “잘못된 대응이라고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최선의 방법인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정략'과 전북정치권의 '구태'는 스팩트럼이 넓지 않은 지역의 정치지형과 맞물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비례)은 이를 ‘0대 45 구도’로 접근한다. 지난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서 지역구가 207개인 전북에서는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이 0명 배출된 반면에 경북의 301개 지역구에서는 45명의 민주당 소속이 당선됐다는 말이다.
이런 현상은 2022년의 제8회 지방선거에서도 숫자만 약간 바뀌었을 뿐 똑같이 반복됐다.
정 의원은 “전북은 지역주민들과 가까운 곳에서 소통하는 광역·기초의원(비례 제외) 중 보수정당의 의원이 단 1명도 없어 견제와 감시, 경쟁이 실종된 정치구도가 지속되고 있다”며 “전북이 국내 정치의 갈라파고스 섬처럼 고립되고 있다”고 말했다.
태평양의 화산섬인 ‘갈라파고스 제도’의 면적(8010㎢)은 전북의 땅 크기와 얼추 비슷하다. 고립되어 진화의 방향이 달라지는 독자적인 행보를 하는 것을 ‘갈라파고스화 현상’이라고 한다면 전북 정치가 이렇다는 주장이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국민의힘 전 당협위원장의 한 사람은 최근 “호남을 고립시켜야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할 수 있다”는 글을 써 파장이 일었다. 그는 호남과의 절연 카드 3장 중 하나로 ‘새만금 잼버리’를 언급하며 “카드는 준비됐고 총선 구도를 뒤흔들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0대 45’의 문제를 ‘민주당 독주’로 몰아가지만 정작 책임의 화살을 피할 순 없다. 평소에는 전북을 방치하다시피 하다가 선거가 다가오면 러브콜을 보내는 등 진정성이 없는 서진정책을 펼쳐 전북 내 보수의 영토를 스스로 좁혔다는 지적이 많다.
사회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번 잼버리 사태만 해도 호남 동행의원을 자처했던 영남의 현역 의원이 전북의 심장에 칼끝을 들이대는 등 전북을 대하는 말과 행동이 전혀 달랐다”며 “국민의힘이 전북을 ‘정치적 외딴섬’이라고 치부하기에 앞서 진정성을 갖고 먼저 다가가는 정성을 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보수정당에 대한 전북 표심의 변화는 빠르지 않지만 현재진행형이다. 전북은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에 13.2%의 표를 몰아줘 광주(7.7%)나 전남(10.0%)보다 높았으며, 20대 대선 역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지지율이 14.4%를 기록해 광주(12.7%)와 전남(11.4%)을 앞섰다.
국민의힘이 원하는 ‘대선 지지율 20%대 진입’은 무위로 끝났지만 이는 도민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보수정당의 책임이라는 지역정치권의 주장이다.
전북의 국민의힘 지지층도 “중앙당 차원에서 전북을 대하는 ‘정략적 접근’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전북의 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당이 먼저 다가가고 진심을 보여주는 ‘진정한 접근’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민주당 독주의 전북 정치권 구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의 말대로 전북 민주당내 견제와 경쟁이 없으니 지역민들의 민심 공천을 신경쓰기보다 중앙당 공천만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적지 않다.
오죽했으면 중량급의 한 정치인이 지난 2017년에 “전북 정치가 입으로만 노를 젓고 있다”고 자아비판했을까?
당시 이 정치인은 전북도의회 출입기자들과의 간담에서 “지역발전을 위해 정치인들이 정말 치열하게 싸우고 준비하고 노력하는 등 힘차게 노를 저어야 하는데 입으로만 젓고 있으니 배가 앞으로 나가겠느냐”고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몰아쉬었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자아비판은 유효할 것 같다. 사실 새만금 SOC예산 삭감만 해도 미뤄 짐작할 수 없었던 사안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잼버리 파행 이후 전북 책임론이 불거지며 후폭풍이 거셀 것이라는 관측은 지역민이라면 누구라도 가능했다.
그럼에도 손 놓고 있다가 SOC예산 삭감이 발표되자 부랴부랴 강력 대응에 나서는 등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됐다.
격리된 '갈라파고스 섬'에서는 강한 종(種)만 즐거울 수 있다. 민주당 정치권은 최소한 전북에서 야당이 아니라 여당이다. 지금도 말로만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는 지역민들의 주장이 나온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전북의 민주당도 민심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긴장감과 위기감을 느끼며 낡은 사고와 구태행동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지도만 볼 것이 아니라 나침반을 보며 방향성을 설정하고 미래를 현재로 끌어올 수 있는 실천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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