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달라진 전북의 추석 민심 … "예산 칼질엔 칼질로 대응해야" 강경여론

민족 고유의 명절에는 고향에 터전을 두고 살아온 현지인과 타지에서 모처럼 고향을 찾은 귀성인의 민심이 뒤섞이는 '혼융(渾融) 현상'이 일어난다.

그다음 해에 선거가 있다면 타지 민심과 현지 민심의 융합 현상은 더욱 격렬하게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큰 흐름이 자리를 잡는가 하면 새로운 조류가 형성된다. 정치권이 명절 민심을 진정한 여론의 풍향계나 가늠자로 보고 중시하는 이유이다.

전북의 추석 민심은 예년 같으면 경제 회생과 일자리 창출 등으로 수렴되기 일쑤였다. 전북의 지역총생산(GRDP)이 전국 17개 시·도 중에서 12위의 하위권인데다 1인당 GRDP는 3117만원 수준으로 13위, 전국 평균의 77%에 만족하고 있어 경제 활성화가 매번 명절 연휴의 화두로 떠올랐다.

하지만 전북 정치권과 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접한 올해 추석 민심과 관심은 확 바뀌었다.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3일 귀경길은 원활한 교통흐름을 보였다. ⓒ연합뉴스

우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달라거나 경로당 난방비 인상 등 복지 지원책을 강화해달라는 생활형 주문은 줄어든 반면 유달리 정치 이야기가 많았고, 특히 새만금과 전북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다고 정치권이 전했다.

지역민의 아픔으로 자리한 잼버리 대회에 대해서는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인 만큼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 속에 새만금 SOC 예산 삭감과 관련해서는 "예산 칼질에는 칼질로 대응해야 할 것"이라는 강경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많았다는 전언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전주 병)은 “추석 연휴 직전에 이재명 당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에 대해 잘된 일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며 “하지만 내년 정부 예산안에 78%나 삭감된 새만금 SOC 예산을 놓고 복원할 수 있느냐고 궁금해하거나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새만금 공사 현장 ⓒ연합뉴스

김 의원은 “추석에 만난 지역민 대부분이 새만금 예산 삭감에 대해 분개하는 목소리를 내놓았다”며 “어떻게 하든 되살려야 한다는 여론이 확연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정운천 의원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많이 했다”며 “전주시민들도 새만금 예산을 걱정하며 잼버리 파행과 연계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하게 주문했다”고 전했다.

정 의원은 “예년 같으면 고령층에서 경로우대 확대나 난방비 지원 등의 요구가 많았는데 올해는 복지와 관련한 이야기가 줄었다”며 “대신에 잼버리 파행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따져야 한다거나 새만금 예산은 내년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말들이 오갔다”고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전북 현안이 칼질당한 만큼 국회의 예산심의를 지켜보겠다는 모습”이라며 “예산을 아는 식자층을 중심으로 공항 예산이 형평성이 떨어진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전했다.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새만금국제공항 예산은 부처에서 580억원을 반영했지만 정부의 막판 검토에서 66억원이 계상되는 등 쥐꼬리(11.4%)만 반영된 상황이다.

반면에 부산 강서구 가덕도 일원에 총면적 666만9000㎡ 규모로 건설하는 가덕도신공항은 총사업비만 14조원에 육박하지만 정부가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내년 12월에 착공해 2029년까지 개항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새만금 국제공항 조감도 ⓒ전북도

예비타당성 검토도 넘지 못한 충남 서산공항 역시 내년도 예산 10억원이 반영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새만금공항만 내치는 전북 차별이라는 지역여론이 적잖았다는 정치권의 전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삭감에는 삭감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울분의 민심을 접할 수 있었다"며 "그만큼 전북 민심이 흉흉하다는 반증"이라고 토로했다.

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추석 민심이 예전과 달라졌지만 대응강도(强度) 주문 역시 확연히 변했다"며 "지금까지는 위기 때마다 '전북의 힘을 모아야 한다'는 여론으로 정리됐는데 이번에는 '전북의 힘을 보여주자'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윤석정 전북애향운동본부 총재는 “전북의 명절 민심은 주로 경제와 일자리 걱정이었는데 올해는 지역민들이 모두 새만금을 염려했다”며 "국책사업인 새만금 SOC 예산은 각 부처에서 엄격히 검토해 꼭 필요한 사업비만 기재부에 올린 것인데 이를 78%나 삭감한 것은 말이 안된다며 어떻게 하든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게 지역의 진정한 여론이었다”고 전했다.

윤 총재는 “만약 삭감된 예산이 그대로 간다면 전북은 없어져야 할 것이라는 말과 같다는 강경한 성토 목소리도 나왔다"며 "전북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아 지역민 의지를 결집해 정부에 전달하고 새만금 예산이 부활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훈 전북인비상대책회의 사무총장도 “모처럼 고향을 찾은 귀성객들도 고향의 홀대를 걱정하며 화가 끓어오른 모습이었다”며 “자영업자들은 ‘내 삶도 힘들지만 이 상황이 불쾌하고 자존심이 상한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조 사무총장은 “성난 민심에는 ‘전북이 더 이상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지가 섞여 있었다”며 “지난 70년대 이후 고도성장 과정에서 농도(農道) 전북의 희생이 컸는데 또다시 희생당할 수 없다는 민심의 물결이 거센 파도처럼 출렁였다”고 덧붙였다.

올 10월 국정감사와 11월 국회 예산심의 돌입을 앞두고 전북에서는 새만금 예산이 향후 민심변화의 중대 변수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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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홍

전북취재본부 박기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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