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게임' 한국정치, 파국을 맞다

[이관후 칼럼] 이재명 체포동의 사태는 예견된 결말

기어이 벌어진 사태

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기어이 가결되었다. 여기서 기어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한국정치에서 지난 1년 넘는 시간동안 오로지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만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해 야당 대표의 측근들에 대한 수사와 구속으로 시작해서 올해 초 한차례의 체포동의안을 거쳐서 어제의 가결에 이르기까지, 우리 정치가 무엇을 했는가를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 동안 정부 여당은 어떠한 정치적 타협이나 협상은커녕,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만남조차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치에 무관심했다. 정치를 사실상 포기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로지 야당 대표를 괴롭히고 옥죄어서 반사이익을 얻겠다는 것 외에 어떠한 정치행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야당도 정부 여당의 그러한 일방적 태도에 대한 정치적 대안을 모색하기보다는 무조건의 정면대결을 선택했다. 당초 대선과정에서 약속했던 선거법 개정을 포함한 정치개혁, 불체포특권 포기 같은 전략적 선택에 대한 검토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라가 계속 그렇게 갈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해결책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필자의 희망 섞인 바람에 대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선 직후 용산이 야당 대표에 대한 수사를 언급한 순간부터, 또 그에 맞서 이재명 대표가 계양 출마를 결심한 순간부터, 어제의 사태는 예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한번 철로에 올라 간 기차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듯이 말이다.

▲2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한동훈 법무장관이 체포동의안 요청 이유를 설명 하던 중 소란이 일어나 여야 원내대표와 김진표 국회의장이 논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치킨 게임, 물러서면 죽는 정치

대학에서 <비판적 사고와 토론>이라는 수업을 할 때, 초반에 몇 가지 이론과 사례에 대한 강의를 한다. 그중 하나가 '합리적 선택이론(rational choice theory)'이고, 사례 중 하나로 '치킨 게임(chicken game)'을 소개한다.

치킨게임을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도로에서 2명이 차를 몰고 서로 마주보고 달린다. 둘 다 직진을 계속하면 둘 다 죽거나 크게 다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 먼저 한 사람이 피하게 되면 그 사람은 겁쟁이가 된다. 끝까지 핸들을 잡고 직진한 사람이 승자가 된다.

지난 몇 년간의 한국 정치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치킨 게임'이다. 물러서면 죽는 정치다. 정부 여당과 야당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대립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대선 같은 큰 선거가 있을 때는 당연히 대립이 극심하게 마련이다. 그것을 두고 뭐라 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런 대결이 항상적일 수는 없다. 그런 곳에는 정치가 존재하지 않고, 정부도 국회도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국가는 필연적으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치킨 게임의 정치가 정말로 위험한 까닭은 그 차에 자기들만 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치킨 게임은 운전자 한명만 탄다. 그러나 지금 이 차들에는 운전자 외에도 각 정당의 국회의원과 당원들, 지지자들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함께 타 있다. 차 안에서 핸들을 잡고 있는 리더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과격 팬덤들은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어조로 '그냥 달려'를 외치고 있지만, 과연 그 결과가 모두가 바라는 것일까?

치킨 게임에서 이기는 방법

치킨 게임을 조금 아는 사람들이 제안하는 이기는 방법이 있다. 차량을 출발시키고 나서 운전대를 뽑아서 창밖으로 던져버리라는 것이다. 그것도 상대방이 잘 볼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이미 선택지가 없으니, 이제 살든지 죽든지 네 마음대로 해라'는 식이다. 그리고 눈을 감아버린다.

지난 몇 년 간 한국 정치에서도 이런 조언을 하는 사람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권력자들 주변에 많았던 것 같다. '무대뽀'로 질주하는 쪽이 이기게 된다고 보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다. 정치적·합법적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나의 권력을 키워서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려고 한다. 또 가능한 많은 과격한 팬덤을 조직해서 정당 안에서건 밖에서건 상대를 압박하고, 선거에서 화끈하게 상대를 몰아붙이라고 선동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이 보았던 것이야말로 '나는 운전대를 뽑아 버렸으니, 네가 양보하라'는 식의 권력투쟁이었다.

정말 미친 짓 뿐일까?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이것은 미친 짓이다. 치킨게임을 좀 더 아는 사람들은 결코 이 방법을 권하지 않는다. 감당해야 하는 기회비용, 곧 리스크에 비해 얻을 수 있는 효능이 너무나 적기 때문이다. 두 자동차가 그대로 부딪치면 운전자는 죽거나 크게 다친다. 이긴다고 해도 얻게 되는 것은 '골목대장'이라는 작은 명성뿐이다. 그것도 '그 이상한 세계'에서만 알아주는 영예일 뿐, 그 골목을 벗어나면 어떤 존경도 받을 수 없는 훈장일 뿐이다. 이 해결책은 말 그대로 '하이 리스크 로 리턴(high risk, low return)'이라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택하지 않을 방법이다.

필자는 수업시간에 치킨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물은 다음, 학생들에게 이 사례를 소개해주는 이유를 설명한다. 여러분이 인생을 살면서 어떤 어려움에 빠졌을 때, 이것이 어떤 종류의 게임인지를 빨리 이해하는 사람이 그 상황에서 좋은 선택을 하고 좋은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치킨 게임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된 행위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우선 학생들에게 치킨게임이라는 생각이 들면, 얼른 밑천을 세어 보라고 이야기 한다. 이건 주로 시장에서 벌어지는 치킨 게임의 상황일 때다. 동종 업계에서 유사한 제품을 팔면서 경쟁하는 경우에는 자원과 자본력, 곧 밑천이 든든해서 가격경쟁에서 버틸 수 있는 쪽이 유리하다. 과거 세계시장에서 반도체나 석유 가격 경쟁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먼저 게임체인저가 되는 쪽이 이겼다

그러나 그 치킨게임이 인간관계나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면 상황은 전혀 다르다. 이건 밑천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런 경우 많은 학자들은 가장 합리적인 선택으로 '그 게임에서 당장 빠져나오는 것'을 제안한다. 그런 사례가 있다. 미소 간 핵무기 경쟁이 그렇고 지금 미중 간에 벌어지고 있는 패권경쟁이 그렇다.

오해 하지 않기를 바란다. 게임에서 당장 빠져나오는 것은 겁쟁이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게임 자체를 변화시키는 이니셔티브와 리더십을 발휘하라는 것이다. 치킨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게임 자체를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데 행위자가 둘이어서, 한 사람이 얻는 만큼 다른 사람이 빼앗기는 게임이다. 그러나 정치를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결과는 파국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미국은 핵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소련에 군비감축 제안을 선제적으로 제안하고 일방적으로 감축을 시작했다. 그래서 미국이 소련에게 굴복한 겁쟁이라고 불렸는가? 그 때 미국의 지도자들은 '상대를 어차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파국을 맞게 되더라도 그냥 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던가? 그랬다면 지금 인류가 남아 있을까?

역대 총선 최저투표율 46.1%, 경신될까?

국회의원 선거는 물론 제로섬 게임이다. 300개의 의석을 두고 싸운다. 당 밖에서 싸우는 것은 기본이고, 그 전에 당내에서도 싸워야 한다. 공천권을 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한 사람에게 공천을 주면 다른 한 사람에게는 줄 수 없는 게임처럼 보인다.

그래서 정부여당과 야당은 한 치도 물러섬 없이 싸우고, 당내에서도 싸운다. 야당 대표의 수사를 둘러싼 싸움, 올해 초 여당 전당대회 때의 싸움, 지금 야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은, 이런 제로섬 게임과 치킨 게임들이 쌓이고 또 쌓여서 벌어진 결과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대로다.

운전대를 뽑아버린 두 정당이 맞부딪치는 결과는 무엇으로 나타날까? 총선 투표율이다. 민주화 이후 총선에서 최저의 투표율은 46.1%였다. 내년 총선에서는 어떻게 될까?

만약 30%대의 투표율이 나오고, 국민들 세 사람 중에서 두 사람이 투표하지 않은 총선에서 어떤 정당이 이긴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과반을 차지해 봐야 국민 6명 중 1명 정도의 지지를 받았을 뿐인 그 정당이, 또 그런 정당으로 구성된 국회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4년의 시간이 지나간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까? 이것은 과연 승자가 있는 게임일까?

국민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게임의 형식을 바꾸자고 호소하는 정치, 정당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국민들은 여전히 못 믿겠다며 지금 같은 무관심을 계속 유지하게 될까? 적과 싸우는 전선에서 이탈한다는 팬덤의 비난이나 받게 될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치킨 게임의 결말을 우리가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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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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