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6명 익산 미니기업, 요르단 페트라에 세계 최초 야간경관 사업 진출 일궈

박보승 크리에이티브 빅터 대표이사 "익산을 세계적 도시로 알리는 데 일조"

우연히 전북 익산에 왔다가 지독한 사랑에 빠진 남자. 그래서 자신의 회사 본사를 이곳으로 옮기고 기존의 서울 사무소는 지사로 쓰게 된 문화예술인. 급기야 주소지와 자택마저 이전하고 완전히 익산맨이 된 국내 최고의 전문가.

서울 명동의 신세계백화점 일루미네이션 아트를 2015년부터 3년 동안 연출해 감동을 줬던 주식회사 ‘크리에이티브 빅터’의 박보승 대표이사(46) 이야기이다.

올 5월에 서울에 있던 본사를 익산시 동서로에 있는 ‘익산종합비즈니스센터’로 옮긴 이 회사는 스토리텔링과 다양한 미디어 기술의 결합을 통해 생동감 있는 상상과 현실의 교차점을 여러 시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든다.

▲박보승 크리에이티브 빅터 대표이사 ⓒ박보승 대표이사

박 대표가 연출한 콘텐츠는 최근에만 서울 예술의전당 미디어파사드(2022년)와 거제 조선해양문화관 리얼라이즈 미디어파사드(2022년), 익산 호러 홀로그램 페스티벌(2022, 2023년) 등 다수에 이른다.

예술의전당 미디어파사드는 건축적 특성을 살려 계단과 벽면을 활용한 다양한 영상들로 방문객들의 즐거움과 탄성을 자아냈으며, 홀로그램을 활용해 몰입도를 최대한 끌어올린 ‘2023 익산 호러 홀로그램 페스티벌’은 국내 실집계 방문객 최다를 기록할 정도로 지역 축제이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

사실 박 대표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난 2011년 유럽의 사계절을 재현하고 빛을 더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 일본의 명소로 꼽히는 나가사끼에 미디어 파사드를 연출하며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그는 2015년 롯데타워 미디어파사드에 이어 2017년 신세계백화점 미디어 파사드를 각각 연출해 글로벌 인지도를 쌓았다.

▲박보승 대표이사가 프로젝트에 대해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백화점의 외형을 살린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스크린으로 만들어낸 일루미네이션 아트의 장관이 SNS에 큰 영향을 끼치며 인증샷 명소이자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핫스팟이 되기도 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관련 산업의 지평을 확장해 온 박 대표는 지난해 우연히 익산시 성당면에 있는 ‘교도소 세트장’을 방문했다가 한눈에 반했다.

“처음 봤을 때 너무 좋았습니다. 주변 환경도 아름답고 지역민들도 친절하고 따뜻했습니다. 한마디로 익산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 것이죠. 하하하.”

이렇게 해서 ‘2022 익산 호러 홀로그램 축제’를 총 연출하게 된 그는 올해도 같은 축제를 맡아 공전의 히트를 치며 아예 올 5월에 익산의 중장년 기술창업 제도를 통해 서울의 본사를 익산으로 이전하는 결심을 하게 된다.

우연이 필연일 때가 있다면 박 대표와 익산의 인연이 그렇다.

익산의 사무실은 고작 20여평 남짓에 불과한 조그마한 공간이다. 직원의 총인원은 박 대표를 포함해 6명, 그런데 직원 1명만 눈에 띄어 다른 직원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1명은 캐나다에, 다른 1명은 싱가포르에, 나머지는 서울지사에 각각 출장 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직원 수만 보면 꼬마 기업인데 노는 마당은 전 세계인 셈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는 규모의 크기 문제가 아니라 그 회사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역량과 인적 내트워크가 중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도 작은 공간에서 몇 명이 성장을 주도했다. 구성원들이 만들어낸 훌륭한 콘텐츠와 작품이 회사의 가치를 설명하고 세계도 그것을 인정한다.

아직 잘 정돈되지 않은 사무실의 한 벽면에는 야심 찬 스케줄표가 부착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아~ 이거요? 익산에 본사 이전을 전후해 중동 요르단의 야간 경관 사업에 진출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7개월 남은 기간에 준비해야 할 시간표입니다.”

사실 박 대표의 크리에이티브 빅터 회사는 중동의 요르단 페트라 지역개발관광공사(PDTRA)와 세계 최초로 미디어아트를 활용한 야간 경관 조성사업에 대한 협약을 맺는 대성과를 이뤄냈다.

요르단 페트라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의 유적지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학 유적 관광지이기도 하다. 익산시의 미륵사지 유적보다 약 150여 년 뒤인 800년경 설립되었으며, 백제역사유적지구와 같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크리에이티브 빅터는 지난 8월 익산 호러 홀로그램 페스티벌에서 홀로그램 콘텐츠로 만든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실감콘텐츠 시장 진출의 포문을 열었다.

▲크리에이티브 빅터 회사는 중동의 요르단 페트라 지역개발관광공사(PDTRA)와 세계 최초로 미디어아트를 활용한 야간 경관 조성사업에 대한 협약을 맺는 대성과를 이뤄냈다. ⓒ크리에이티브 빅터

요르단 페트라 측은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인 익산에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역사유적과 미디어콘텐츠를 통한 야간 경관 관광산업을 연계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출했다.

특히 박보승 대표가 제안한 아트디자인, 마케팅, 광고 등의 창의적인 솔루션에 대해 극찬하며, 페트라에서 이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간절히 기다린다는 국가 공식문서(Formal Letter)를 보내오기도 했다.

크리에이티브 빅터는 앞으로 요르단 페르라 지역개발관광공사와 2024년부터 10년간 야간 경관 조성사업을 실시하며 내년 4월부터 페트라 문화유산 전역에 미디어아트와 일루미네이션 아트가 펼쳐질 예정이다.

계약 체결 과정은 그야말로 놀랍다. 요르단에서는 공식 계약 문서를 보내려면 수상의 허가를 받아야 해 통상 한 달 정도 걸린다. 하지만 이 회사는 4일 만에 문서를 받았을 정도로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그만큼 요르단 측이 꼭 같이 일을 하고 싶었다는 말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세계 굴지의 실력파 기업 8곳이 페트라 프로젝트에 눈독을 들였지만 뒤늦게 뛰어든 크리에이티브 빅터가 기회를 잡게 된 극적 순간이다.

박 대표는 12년 전 요르단에 미디어파사드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다 나라의 정치적 이슈로 뜻을 이루지 못한 경험이 있어 내년 4월부터 진행될 요르단 페트라의 미디어파사드는 더욱 뜻깊게 다가온단다.

▲사실 페트라 프로젝트는 요르단 입장에서는 향후 경제의 사활을 건 중대사업이다. ⓒ크리에이티브 빅터

사실 페트라 프로젝트는 요르단 입장에서는 향후 경제의 사활을 건 중대사업이다.

인구 1100여만의 요르단은 인근 중동의 나라들과 달리 석유나 천연가스가 안 나온다. 그래서 주력 산업은 서비스업과 주변국에 비해 쾌적한 기후와 유적을 통한 관광산업이다.

GDP의 8%~10%를 차지한 관광수입은 페트라가 먹여 살렸는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어 그동안 야간관광을 산업화할 수 없었다.

그런데 유네스코가 최근에 야간관광을 허용했고, 그 첫 번째 프로젝트를 이제 갓 익산에서 창업한 사무실 20평 규모의 소기업이 맡아 ‘20평의 기적’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요르단의 페트라를 칭송한 말에는 영국의 시인 존 버곤 신부의 ‘영원한 시간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밋빛처럼 붉은 도시’라는 표현이 있다.

사해와 아카바 만(灣) 중간에 있는 페트라는 BC 400년경에 아라비아반도에 정착한 유목민족 나바테아인의 종교적 중심지이자 수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 사암을 뚫고 건설된 페트라의 미디어파사드는 킹스툼즈(Kings Tombs), 우리의 ‘왕의 구역’ 길이만 150m에 달하는 등 방대한 지역을 7개 구역으로 나눠 순서별로 아름다운 야간 경관을 보여주는 세계 최고의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을 전망이다.

박 대표는 현재 요르단 페트라 지역개발관광공사 측과 시나리오를 긴밀히 협의하는 등 7개월 준비의 대장정에 돌입한 상태이다.

“요르단의 역사와 페트라의 놀라운 유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미디어파사드에 담으려고 합니다. 위대한 건축물 외벽에 최고의 야경 콘텐츠를 담아 요르단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한국의 실력도 유감없이 발휘할까 합니다.”

박 대표의 목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익산이 좋아서 무작정 왔다는 그는 익산을 전 세계에 알리는 중장기적 목표를 갖고 있다. ⓒ박보승 대표이사

익산이 좋아서 무작정 왔다는 그는 익산을 전 세계에 알리는 중장기적 목표를 갖고 있다. 익산시도 홀로그램 산업 육성을 위해 핵심기술 개발, 기업 유치, 연구개발(R&D) 인프라 지원 등 관련 산업 생태계 확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미 교도소 세트장에서 진행한 두 차례의 ‘호러 홀로그램 페스티벌’은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서울과 경기도, 경상도 등 타 지역 관광객을 대거 흡수하기도 했다.

이 축제를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키워 '판타스틱 코리아'와 ‘어메이징 익산’을 알리겠다는 자신만의 포부이다. 중국 베이징국립영화대학 초빙교수로 일했던 그는 해외 인적 네트워크도 강하다.

중국의 유명 영화감독 장예모가 졸업한 이 대학에서 교수로 강단에 선 한국인은 박 대표가 최초이며, 외부 교수로도 13번째이다. 현재 록팰러재 아시아소사이어티 문화예술분과 정회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역 축제의 세계화가 가능하냐고 물어보았다. 국내보다 해외 인지도가 더 높은 그가 살포시 웃음을 머금은 채 이렇게 말했다.

“판을 키워야 하지요. 판을 키우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 가능성?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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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홍

전북취재본부 박기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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