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도발 MB 228회, 박근혜 108회, 문재인 5회…이래도 9.19 없애자?

존폐기로 놓인 '9.19 군사합의', 5주년 기념 토론회…"군사합의 폐기? 무책임하고 무모하다"

2018년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체결됐던 '판문점선언이행 군사분야합의서'(이하 9.19 군사합의)가 5년이 지나 존폐 기로에 처한 가운데, 당시 합의를 만들었던 문재인 정부 당국자들은 이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5년 동안 북한과 충돌이 거의 없었다면서 평화를 위한 노력을 비판하는 것은 무모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19일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토론회 '평화의 힘, 평화의 길'에 참석한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새로운 국방장관 후보자는 9.19 선언의 부속합의서였던 9.19 군사합의의 폐기를 공언하고 있다"며 "이렇게 해서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그 무책임함과 위태로움에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를 맡은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은 "남북 군사합의를 체결하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 정부 임기 동안 몇 번의 군사적 충돌이 비무장지대에 발생했고, 몇 명의 국군 장병들이 사망했을까? 2017년 우리 정부가 미국의 최대 압박 전략을 따라만 했었다면 오늘날 한반도의 평화가 가능했을까?"라며 "평화를 위한 노력을 비판하는 것만큼 무모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무모함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최 전 차관은 "9.19 군사합의서에 따라 접경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됐다. 이명박 정부 기간 비무장지대 국지 도발 횟수가 228회, 박근혜 정부 기간에는 108회였던 것이 우리 정부에는 기록상 5회 정도"라며 "3회의 남북정상회담과 수많은 정상 간 서한, 북한과 미국을 협상하게 하는 데 큰 마중물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2018년 합의 당시 국정상황실장에 재임중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토론자로 참석해 "9.19 합의를 파기하자는 건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이 법을 어긴다고 해서 그 법을 없애자는 주장과 동일하다"라며 "필요하면 법을 엄격하게 만들든지 아니면 패널티를 매기는 것이 타당한데 아예 법 자체를 없애자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9.19 군사합의(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북측 군부가 상당히 반대했던 영역"이라며 "북한이 반대한다는 건 오히려 우리에게 득이 된다는 부분이다. 이런 부분들을 정확하게, 주도면밀하게 보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자는 움직임은 그릇된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9.19 군사합의를 비롯해 문재인 정부때 북한과 여러 합의가 만들어졌는데, 이를 기반으로 북한과 협상을 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최 전 차관은 "협상은 회유나 유화 정책이 아니다. 적대적인 관계를 평화적인 관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라며 "대한민국이 북한보다 더 자신감 있고 용기 있으며 강하다는 증거가 바로 이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을 비이성적이거나 속임수를 쓰는 집단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옳지 못하다. 그들도 전략이 있을 것이고, 그 전략은 자기들의 외부 환경에 민감할 것"이라며 "그래서 대화, 협상을 통해 이들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자세를 필수 전략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획득한 상대방에 관한 정보는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전 차관은 "북한 역시 우리와 협상했던 정신과 취지를 바탕으로 미국은 물론 대한민국 정부와 대화를 해야 할 것"이라며 "북한도 용기를 내야 한다. 용기가 바로 평화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 역시 "같은 편끼리 대화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불신이 오래 쌓인 적대적 상대와 평화를 위한 대화는 정말 어렵고 용기가 필요한 것"이라며 "우리가 여기서 만드는 평화의 기운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고 장관 재임 당시를 회고했다.

강 전 장관은 "지금의 정부처럼 무조건 미국과 한 노선을 가는 것이 우리의 장기적인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라며 "우리의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적 번영을 위해 한미 동맹을 지속적으로 다져나가야 한다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에 대해, 미중 갈등 속에서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에 대해 고민 없어 보이는 미국 편들기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 19일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토론회 '평화의 힘, 평화의 길'이 개최됐다. ⓒ연합뉴스

이날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이기범 전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회장은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사회의 개선을 위해 남한 사회를 평화와 정의의 성공 모델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남북 평화를 추진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정당한 방향은 우리 사회가 평화와 정의의 성공 모델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북한이 그 모델을 참고하고 채택할 수 있게 된다"라며 "예컨대 북한이 자유와 인권을 증진하기를 기대한다면 우리 사회가 자유와 인권을 더욱 존중하는 법, 제도와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현재 우리 사회의 자유와 인권 수준이 향상되고 있는지, 퇴보되고 있는지에 대한 냉정한 반성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제사회와 북한이 자유와 인권을 강조하는 우리의 정당성과 설득력을 인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강조하고 탈북민을 많이 수용하기를 원한다면 전쟁 난민과 정치 난민 허용을 늘려야 한다. 난민 포용은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 중 우리가 최저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이 전 회장은 "장애인, 여성, 실업자, 노숙자, 무주택자 등 취약한 시민, 그리고 이주 노동자, 난민 등 외국인들의 자유와 인권을 증진하는 방안을 시민사회와 정부가 함께 모색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라며 "그래야 우리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주장이 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하는 중요한 지렛대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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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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