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기금'인데 국민은 어디로?

[기고] 모두의 삶을 지키는 공공성 파업 ④

매일 안전하게 출근해서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걱정 없이 병원에서 치료하고, 구석구석 편리하게 아름다운 한반도를 기차로 이동하는 상상을 합니다. 가능합니다. '공공성'과 '노동권'이 깊고 넓게 퍼진 한국 사회라면 우리의 미래는 현실이 될 것입니다.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지하철, 의료, 철도 등 내 곁에 노동자들이 '모두의 삶을 지키는' 공동 파업을 합니다. 이들은 먹고 살기 어려운, 불안이 불안을 낳는 시대의 대안은 시장주의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성 확대라고 주장합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보내온 여섯 편의 기고를 싣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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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잘 옮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음 세대가 잘 기르게 물려줄 수 있을까? 요즘 인기 절정을 달리는 판다 '푸바오' 이야기가 아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래서 더 안쓰러운 코끼리 '국민연금' 이야기다. 흔히 국민연금 개혁을 코끼리 옮기기에 비유한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복잡한 논의가 오간다. 5년 전 제4차 재정계산 때 4가지 복수안을 만들었으나 결국 코끼리를 옮기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연금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였고, 당선 후에는 연금·노동·교육을 3대 개혁 과제로 천명해 마치 이번에는 코끼리를 옮길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어째 이 코끼리가 더 야위어가고, 잠깐 한눈 팔면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다. 공공성을 축소하고 민영화에 열을 올리는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굶어서 야위어가는 코끼리, 국민연금 보장성 약화의 이면에는?

1988년 처음 시행된 국민연금은 2번의 개혁을 거쳐 덜 받고, 늦게 받는 형태가 됐다. 재정 부담을 이유로 소득대체율을 깎고, 수급 연령도 늦췄으나 보험료율은 1998년 한 번 올린 후로 25년 동안 어느 정부도 올리지 못했다. 당장 체감되는 보험료를 올렸다간 심한 반발이 있을 테니 보장성만 축소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국민연금 노동자들이 2007년 2차 개혁 때 연금 개악을 막기 위해 대국민 선전전을 하고, 총력 투쟁도 불사했으나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고 말았다. 기금 소진 시점은 늦춰졌으나 국민의 연금이 깎였다. 올해 4월 기준 노령연금 수급자 540만 명 중 380만 명이 월 60만원 미만을 받고 있는데, 짧은 가입 기간과 낮은 소득도 문제지만 소득대체율이 깎인 것도 저연금 수급자 양산에 한몫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2007년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소득대체율 삭감은 유지한 채 보험료율을 높이고, 수급 연령도 더 늦춰질 것 같기 때문이다. 재정계산위원회가 정부에 제출할 최종 보고서에는 소득대체율을 40%까지 삭감하는 걸 유지하며 보험료율을 최소 12%로 올리고, 수급 연령을 68세까지 늦추는 방안 등이 담겼다고 한다. 소득대체율 인상이 담긴 소득보장안은 소득보장론자들이 수적 우위에 있는 재정안정론자들의 몽니에 시달린 끝에 삭제를 요구했고, 회의에서 퇴장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보고서대로 된다면 국민연금은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는 식'으로 나빠질 것이다. 언론은 계속해서 보험료 폭탄, 기금 소진을 강조하며 국민(특히 청년들)이 국민연금을 불신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정말 보고서대로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국민연금지부를 비롯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보험료율은 올리더라도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소득대체율도 함께 올릴 것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미 운동장이 심하게 기울어졌다. 이대로 가면 국민연금이라는 코끼리는 보장성도 축소되고, 국민의 신뢰도 잃으며 굶고 야위어갈 것이다.

그런데 코끼리가 작아지는 대신 다른 동물이 커지고 있다. 바로 사적연금 시장이다. 생명보험협회는 올해 사적연금 활성화를 강조했으며, 실제로 생명보험사의 연금보험 판매량과 적립금이 조(兆) 단위로 뛰었다고 한다. 국민연금 불안에 대한 반사이익을 톡톡히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마치 이런 상황을 노린 것 같다. 이미 정부는 작년 6월 발표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 연금개혁을 추진하겠다며 사적연금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마치 생명보험협회의 입장을 대변하듯 말이다. '국민연금 불안하니 사적연금 가입하는 것 내 마음이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제도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여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지만, 사적연금은 상품에 가입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 챙길 뿐이다.

퇴직연금 또한 노동시장 양극화 등의 문제로 한계가 있다. '기초연금이 있으니 그거 받으면 되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재정 문제를 이유로 국민연금 보장성도 축소되었는데 나중에는 기초연금도 금액이나 범위, 혹은 둘 다 축소될지도 모른다. 결국 끝 없는 '각자도생' 속에 국민의 노후도 양극화가 더 커질 것이다.

▲국민연금공단이 2022년 한 해 국민연금기금 운용 수익률이 -8.22%를 기록했다고 밝힌 2일 오후 서울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모습. 국민연금의 작년 수익률은 1988년 제도가 도입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연합뉴스

검은 장막에 가려지는 코끼리, '국민연금기금'인데 국민은 어디로?

심각한 문제가 하나 더 있다. 국민연금의 보장성이 떨어지는 것과 함께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민주성이 점점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기금 운용 거버넌스의 민주성이 후퇴하고 있다. 게다가 모수개혁(보험료율·소득대체율 등을 조정하는 개혁)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면 이쪽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먼저 올해 3월에는 제1차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안건과 회의 진행 과정에 반발한 노동계 추천 기금 운용 위원을 품위 손상을 이유로 해촉해버렸다.

문제는 그 안건에 있었다. 바로 수탁자 책임 전문위원회 구성 변경 안건이다. 과거 국정농단 세력이 벌인 사건 중 하나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태 때 그들은 국민연금을 끌어들여 부당한 합병을 성사시켰다. 당시 외부 추천 인사로 구성된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에서 당연히 반대할 것 같으니,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내 투자위원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게 만든 것이다. 이 일로 국민연금은 <참여연대> 추산 약 6천억의 손해를 봤다. 그리고 국민의 신뢰도 잃었다.

이후 정권과 자본이 결탁해 국민의 소중한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 기금을 멋대로 손대는 일이 없도록, 국민연금이 주주로서 올바른 주주권을 행사해 기업이 제대로 경영할 수 있도록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아래 기금위) 내에 수탁자 책임 전문위원회를 만들었다. 또한 독립적 의사결정 구조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자·노동자·지역 가입자 단체 각 3명씩 9명의 위원으로 구성했다. 그러나 제1차 기금위에 상정된 개정 안건은 각 단체별 위원 3명을 2명으로 줄여버리고, 민간전문가 추천 전문가 단체에서 3명을 추천받아 복지부가 위촉하는 형태로 바꾸는 내용이었다. 사용자 추천 위원 2명에 복지부 위촉 전문가 3명이면 이미 과반수가 된다. 과연 그 전문가 3명이 경영계와 정부 의견에 반대하며 위원회에서 의견을 낼 수 있을까?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산정하는 지표인 기준소득월액 상·하한액이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의 최근 3년간 평균 소득변동률에 맞춰서 7월부터 조정된다. 상한액은 553만원에서 590만원으로, 하한액은 35만원에서 37만원으로 각각 인상된다. ⓒ연합뉴스

그것뿐만이 아니다. 기금운용본부 안에 '건강한 지배구조 개선위원회'를 설치했다(명칭은 변경됨). 현재 있는 위원회와 기능이 중첩되는데, 정부의 영향을 받는 이사장의 추천을 받는 외부 전문가 10인이 과연 수탁자 책임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수탁자 책임 전문위원회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 기업은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여러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과정에 또 정부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3월 6일 '기금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4월 참석했던 국민연금 수익률 제고 관련 토론회에서는 한 토론자가 현행 기금위에서 노동계 등 추천 위원을 빼고 그 자리에 전문가를 앉히라는 말까지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 토론회 뿐만 아니라 수익률 제고를 위해 전문성을 높이라는 말이 수없이 나온다. 높은 수익률을 위해선 당연히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지금까지 노동계 등 가입자 대표들이 수익률이 떨어져도 크게 반발하지 않은 것은 함께 기금위에서 의사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가입자 대표성 확보는 곧 기금운용 의사 결정의 민주성을 의미한다. 그나마 민주적으로 결정해왔기 때문에 별말이 없었는데, 수익률 제고와 전문성 확보를 이유로 기금운용 거버넌스를 바꿔버리면 과연 누가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자꾸만 코끼리가 장막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아 두렵다.

국민연금은 누구나 늙는다는 사회적 위험에서 국가가 적정한 연금을 지급함으로써 국민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고자 만든 제도다. 제도 본연의 목적에 따라 누구나 연금으로 행복하고 존엄한 노후를 누릴 수 있도록, 코끼리가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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