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교수의 흑역사 ②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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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를 두고 "진중권 교수나 비슷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 친한 후배 기자에게 '강 교수에 대한 비평 글을 써보면 어떨까' 하고 넌지시 물었더니 곧바로 "강준만·진중권 교수 두 사람 모두 비평할 가치조차 없다"는 냉담한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두 사람은 한때 '안티조선 운동'을 이끈 '투톱 아이콘'이었다. 사이가 좋던 두 사람은 2002년 지방선거 때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를 둘러싼 이른바 '옥석 전쟁'으로 사이가 틀어졌고, 그 뒤 노무현 정권 출범 후 열린우리당 창당 등을 계기로 정치적 입장이 확연히 달라지며 결별했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강-진 교수는 한때 서로를 향해 날 선 공격을 퍼붓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독설가들인지라 내용이 섬뜩할 정도로 신랄하다. "진중권은 '소아병적 의인'이다. 모든 사람이 진중권을 알아주고 떠받들어주는 한 그는 우리 사회를 위해 의로운 일을 많이 할 사람이다." "궤변가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자신의 방어에 주력하는 '소극적 궤변가'와 상대편의 약을 올리는 데에서 쾌감을 느끼는 '적극적 궤변가' 또는 '가학적 궤변가'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의 진중권은 후자의 경우다." 2002년 7월 강 교수가 '진중권식 궤변의 '폭력성'을 비판한다'는 글에서 한 말이다.

독설의 강도로 치면 진중권 교수도 이에 못지않다. 그는 강 교수가 2004년 한국일보 칼럼을 중단하자 웹진 <진보누리>에 이런 독설을 날렸다. "(강 교수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적 '자성'이 아니라 그동안 자기 논리의 모순, 말하자면 자기가 사용했던 기준에 자신의 발언이 어긋난 부분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논리적 '점검'일 것이다." 진 교수는 '강 교수의 두 가지 문제'로 △글쓰기의 기준이 상식/몰상식 혹은 사회적 공공선 위에 서 있기보다는, 김대중과 그의 당을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꾸 기준을 이리저리 바꿨다는 점을 들었다. (<미디어오늘> 2004년 3월15일)

▲강준만 교수와 진중권 교수는 한때 서로를 향해 날 선 공격을 주고 받았다. 강 교수는 진 교수를 향해 “상대편의 약을 올리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가학적 궤변가”라는 독설을 날렸고, 진 교수는 “강 교수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꾸 기준을 이리저리 바꿨다”며 “자기가 사용했던 기준에 자신의 발언이 어긋난 부분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논리적 점검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강준만-진중권 싸움의 종말

그런데 세월이 흘러 이제는 두 사람이 다시 비슷해졌다. 우선 '조선일보 신봉자'가 됐다. 조선일보를 향해 "하루에도 300만부씩이나 찍어 전국을 '거짓말'로 도배하는 신문"이라고 질타했던 진중권 교수는 '조선일보가 가장 사랑하는 코멘테이터'가 됐다. 기피 대상이던 조선일보와 직접 인터뷰도 했다. 강 교수의 조선일보 사랑은 이미 앞에서 많이 언급했다.

두 사람 모두 '반민주당'으로 정치적 입장 통일도 이루었다. 강 교수는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친노' '친문'과 멀어졌고, 진 교수 역시 '조국 사태'를 계기로 민주당을 향한 공격의 선봉장이 됐다. 두 사람은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과 평가다.

대선 이후에도 강 교수의 입장은 크게 변함이 없는 듯하다. <신동아> <UPI뉴스> 등에 연재하는 글을 보면 온통 민주당 비판 일색이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언급은 가뭄에 콩 나듯한데 주로 "대통령의 스타일 문제"나 "희한한 성격" 등을 비판하는 데 쏠려 있다. 심지어 윤석열 정권이 "정권의 이익조차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다"고 '걱정'한다. "탈레반식 도그마와 맹목적 돌진을 사랑했던 문재인 정권은 나라의 장래에 큰 부담을 안겨줄 과오들을 저질렀지만, 정권의 이익을 챙기는 일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능했다. (…) 반면 윤석열 정권은 제대로 된 국정운영도 해보기 전에 최소한의 정권 이익조차 지켜내지 못하면서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강준만의 직설, UPI뉴스 2022년 9월19일)

'DJ 신봉자'의 윤석열 지지

강준만 교수는 잘 알려져 있듯이 고 김대중 대통령의 열렬한 신봉자다. 고 김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화해와 평화공존의 대명사와 같은 존재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들고 4대 보험을 보편적으로 적용해 한국을 복지국가 반열에 오르게 했다. 야당 때부터 가족법 개정으로 여성 인권신장을 이끌었고, 재임 시기 국가인권위를 설립하고, 남녀평등을 국가적 과제로 제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은 이와는 완전히 정반대다. 남북관계 개선 노력은 포기했고, 극우적 성향의 대북 강경론자를 통일부 장관에 앉힌 뒤 통일부의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 기능을 사실상 없애려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 역시 뒷걸음질을 계속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집회와 시위, 노조 활동에 대해서는 강경 대응 일변도이고, 인권 청사진인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수립은 1년 가까이 미루고 있다. 여성가족부도 계속 유지될지 미지수고, 언론자유도 축소됐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지난해보다 4단계나 하락했다. 앞으로 공영방송 장악이 이뤄지면 언론자유지수는 더 폭락할 것이다. 복지 분야에서도 재벌 특혜와 부자감세 정책은 추진하면서 서민복지는 '재정 건전성'을 앞세워 대폭 줄이고 있다. 쉽게 말하면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을 원점으로 돌리는 방향으로 국정운영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강 교수의 글들에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정책에 대한 비판의식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강 교수가 말하는 대로 '진보적 가치'니 '보수적 가치'니 하는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좌우 노선 구분을 떠나 윤석열 정권이 가는 방향이 과연 나라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한가에 대한 판단은 끊임없이 해야 하지 않을까. 그 대목에서 강 교수의 판단과 견해는 대체로 실종 상태다. 강 교수가 고 김대중 대통령을 신봉한 것은 애초부터 고인의 이념과 정책 방향과는 무관한 것이었는가?

강 교수는 진보세력의 위선과 이중성, 우리 사회에 만연한 증오와 혐오, 독선과 편견, 집단적 갈등 문제 등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한다. 나름 귀 기울여 들을 지적이 많다. 하지만 증오와 혐오에 대해 말하자면 '살아 있는 권력의 증오와 혐오' 만큼 심각하고 무서운 것이 있을까? 편견과 독선의 위태로움으로 치면 '최고권력자의 편견과 독선' 만큼 나라의 장래에 해를 끼치는 것이 있을까? 그것이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강 교수가 윤석열 정권의 국정운영 방향에 별로 심각성을 느끼지 않는 점은 충분히 존중한다. 모든 판단은 강 교수의 자유다. 다만 '윤석열만 비판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훈계하는 식의 태도는 삼갔으면 한다.

강 교수는 8월7일치 <한겨레> 칼럼에서도 윤 대통령 비판자들에 대한 훈계와 폄하를 이어갔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 현 정권을 향한 비판은 대부분 '너 죽어라'는 비판이지 '너 잘돼라'는 비판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강 교수의 날선 민주당 비판은 '너 잘돼라'는 '사랑의 매'이고, 다른 사람들의 윤석열 대통령 비판은 모두 '너 죽어라'는 '고의적 비방'이라는 말인가? 강 교수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심각한 자가당착이고 오류다.

강 교수는 이번 칼럼에서 "논객들 자신의 진보적 관점을 절대시하면서 하는 비판"의 무용성도 비판했다. 하지만 실제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칼럼들을 읽어 보면 '진보적 관점'을 운위할 정도도 못된다. 정부의 주요 요직을 모조리 검사 출신들로 채운 '검찰공화국', 정권 핵심인사들만 뭉치는 인사 편향, '용산출장소'로 전락한 여당의 역할, 대형참사 졸속 대응과 책임 떠넘기기, 정부 국책사업을 하루아침에 백지화했다가 되돌리는 갈지자 행보 등등 진보니 보수니 하는 잣대를 들이밀기도 민망한 난맥상에 대한 비판이 주류를 이룬다.

강 교수는 "비판 대상에게 어떤 식으로건 도움이 될 수 있게끔 소통의 선의와 진정성"이 필요하다는 훈계도 덧붙였다. 그런데 거꾸로 묻고 싶다.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판에 한번이라도 '소통'하는 반응을 보인 적이 있는가? 윤 대통령을 향한 비판의 상당 부분은 바로 "소통 부재"에 쏠려 있음을 강 교수는 모르는가. 다시 말하지만, 강 교수가 윤 대통령 비판을 절제하는 것이야 뭐라 말할 일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의 비판마저 조롱하고 폄하하지는 말기 바란다.

"30여년 전의 나를 다시 만나 보는 일"

강준만-진중권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가한 독설은 어느 면에서 정곡을 찌르는 게 있다. 진 교수의 행보를 보면 "소아병적 의인"이니 "가학적 궤변가"니 하는 강 교수의 촌평에 새삼 무릎을 치게 된다. 강준만 교수에 대한 진중권 교수의 평 역시 그렇다. "자신이 애초 가졌던 기준과 지금의 발언이 어긋나지 않는지에 대한 논리적 점검"이 강 교수에게는 가장 절실한 과제가 아닐까.

강준만 교수는 <MBC의 흑역사> 책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머리말을 쓰기 전에 내가 33년 전인 1990년 출간한 『한국 방송 민주화 운동사』란 책을 다시 읽어 보았다. (…) 세상에 이 책이나마 내놓으면서 33년 전의 나를 다시 만나보련다."

그렇다. 강 교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30여년 전의 나를 다시 만나 보는 일"이다. 그때의 생각과 논리, 그 당시 썼던 글에서 지금 얼마나 멀리 벗어나 있는지를 진지하게 되돌아보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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