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과 낫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충북 지역 민간인학살사건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총과 낫

1950년 7월 9일

대한민국 군경의 총부리는 양민을 향해 있었다

네 시간 넘게 옥녀봉 계곡에 울려 퍼진 소총과 기관총 소리에

바리데기도 하늘을 등진 채 하염없이 눈물만 훔치고 있었다

그날 옥녀봉에 붙잡혀 온 사람들은 졸년월일이 같았다

그러나 저승의 문이 너무 넓어 아무도 그 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보도연맹원 800명이 학살된 그날 밤

맏형은 낫과 이불홑청을 들고 죽음의 계곡으로 향했다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지옥 속에서

촛불로 원혼들의 마지막 얼굴을 비춰가며 동생들을 찾았다

새벽녘 형이 낫 끝으로 제 심장을 겨누어 동생 셋의 목을 거둘 때

하현(下弦)도 낫빛이 되어 같이 울었다

피의 씨앗은 파종하지 않아도 해마다

우부룩하게 돋아나고 다시 목이 베어졌다

명부에도 없이 생짜로 저문 뜨거운 숨들이

남긴 핏빛 유언들

햇빛 아래서는 읽을 수 없는 어둠의 쐐기문자였다

그들의 피눈물을 먹고 73년 동안 자란

온몸이 뿌리인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지금도 화약 냄새가 저승의 문고리를 단단히 움켜쥐고 있는

옥녀봉 계곡에

아직까지 그 식물의 학명은 밝혀지지 않았다

*옥녀봉 국민보도연맹 민간인학살자 800명 중 신원이 확인된 사람들

(충북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옥수리)

이삼표 조수복 민정호 박명준 이동희 父 이병학 오선호 장관석 장상석

장옥석 장창영 장팽석 강병철 강봉식 김인배 김수봉 김우봉 오선호 ○

복동 권준호 안상근 이영종 이재화 최창수 김정출 김학소 김형식 김규

록 김규성 김규철 김규환 김근영 김동화 김만식 김무현 김문현 김부학

김수길 김흥기 박노옥 박노현 박항규 성진용 이상학 한금수 한응교 강

흥구 김달현 김무현 김상년 김세현 김의현 김익현 김창현 김철현 김태

년 김형년 신기호 임노귀 임노위 고석원 변상윤 이상근 이성화 박종화

오병선 이병국 김덕연 김만일 김영일 김창연 김천병 이호근 전명철 김

갑출 김영주 父 조수근 김종옥 兄 김종회 김태용 兄 방영식 父 유만희

父 이종옥 兄 김우공 변종문 나상하 나예찬 김창배 이규인 임선재 弟

전욱현 김래현 조희상 김모진 민병신 민용기 김덕원 이학천 이광로 임

달웅 김동현 변상록 이천호 곽동열 곽동춘 김순산 박진성 손석승 신현

철 이복영 이성록 이재호 신현추 김규달 김규덕 김규락 김규만 김규면

김규석 김규섭 김규인 김규천 김규택 김기성 김기철 김순봉 김준성 김

진두 안화준 윤옥섭 이만증 이석만 이석범 이서일 이석하 이성준 이소

증 이의증 이해진 정완영 정우영 정인동 공재덕 곽기설 곽대규 곽세용

곽영락 곽한용 김임묵 김재철 김충묵 변차돌 신주연 신호연 손근생 우

장규 김진영 김택린 변광섭 연규섭 연규철 연규현 음갑무 음종철 이재

복 이주호 정홍재 한상규 강태산 김광응 박래형 서성권 손근세 손형원

신경철 신성규 우도중 우상문 우석규 우영 우영원 우영준 우영택 우용

원 우용원 우종갑 우종두 우종민 우종섭 우종수 우종호 우종윤 우종은

우종춘 우종하 우진규 우태규 이용하 이인하 이종열 임태희 채인석 최

대식 황해돌 우성택 김연철 김용하 김재봉 김현묵 류인일 류인준 류정

혁 류춘영 양치정 우만경 우복경 우재경 우종만 이재성 이재억 이제필

정복식 주홍선 김광묵 김사영 김상묵 김재용 김재희 김진묵 김찬묵 김

광식 이근홍 김정회 손병국 안성훈 이규식 이규태 이규환 이근덕 이영

노 이종관 이춘식 장동락 조순천 김용회 신강륜 윤태의 권이수 권인용

권재수 권태수 김국원 김만성 김복만 김상룡 김종호 김한식 박태영 박

해봉 송감식 송갑식 송근영 송근영 송요홍 송인복 유창렬 윤기병 임순

영 임인석 임재필 전원진 전원진 조석순 한수원 한장수 현종근 현종학

김종만 김학준 박노순 박노원 조동기 홍종업 황태진 박원규 노형식 성

우경 성주현 홍순영 홍종근 윤이병 김규학 김영한 이복희 이장직 임비

학 홍재창 황단연……

* 명단과 사연은 박만순, 『기억전쟁』, 예당기획출판, 2018 참조. 이 가운데 김광묵, 김상묵, 김진묵 삼형제가 사연의 주인공들이다.

▲ 옥녀봉 민간인 학살지. ⓒ휘민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