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인력난, 지역회복의 희망적 신호?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지역-산업 정책, 사람들의 일자리와 삶의 질 제고에 방점 둬야

얼마 전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재가동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한때 수천 명이 일했던 호황기에 비할 바 아니지만, 생산 현장을 떠났던 노동자들이 일감을 찾아 돌아오면서 지역사회에도 오랜만에 활기가 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선박 블록 생산량 증가에 따른 인력난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방안을 내놓고 있다.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지역을 떠나는 마당에 일자리가 늘어나고 사람들이 돌아온다니 반가워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최근의 조선업 인력난 문제를 바라보면 편치 않은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조선업의 흥망성쇠와 새로운 산업으로의 전환

2000년대 고도성장을 거듭하며 세계 1위로 올라섰던 한국의 조선업은 고유가와 수주감소로 2010년대 중반부터 급격한 위기 국면을 맞이한다. 20만 명이 넘던 노동자들은 불과 3~4년 만에 절반 아래로 감소했다.

정부도 몇 해 전 평택 쌍용자동차 사태 등을 통해 지역 주력산업의 위기가 지역경제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점을 경험했기 때문에 곧바로 정책 대응에 돌입했다. 조선업 밀집 지역을 산업 및 고용위기 특구로 지정하고 대대적인 자금지원과 고용유지, 실직자 재취업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한국의 조선업이 단기간의 성장으로 얻었던 과실만큼이나 추락의 대가도 비례했다. 울산 동구나 경남 거제와 같이 대형조선소가 소재한 지역들은 조금씩 수주와 생산이 회복되었지만, 혹독한 구조조정의 터널을 거쳐야 했다. 중소조선업체들이 밀집한 목포나 통영, 군산은 아예 새로운 산업을 모색해야 했다.

스웨덴의 말뫼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지역들에게 희망으로 떠올랐다. 1970년대까지 세계 조선업을 호령하던 스웨덴은 한국과 같은 후발국에 밀려 조선소 문을 닫아야 했다. 코쿰스 조선소에 있던 골리앗 크레인은 단돈 1달러에 우리나라 조선소에 팔려 가면서 '말뫼의 눈물'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폐허가 된 터전에 말뫼대학을 설립하고 새로운 산업과 인재를 육성한 결과 오늘날 말뫼는 IT와 바이오 등 신산업을 육성하면서 첨단도시로 변모했다. 말뫼의 눈물이 있던 자리엔 '터닝 토르소'라는 시그니쳐 타워가 대신 자리하고 있다.

▲ 터닝 토르소 ⓒ이상호

통영과 군산도 제2의 말뫼를 꿈꾸며 변신을 시도했다. 통영은 '캠프 마레'라는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조선업 대신 문화관광산업 육성을 추진했다. 미륵도에 위치한 향토기업 신아SB조선의 본사 건물은 '리스타트 플랫폼'이라는 창업 공간으로 개조하고, 야드에 놓여있던 골리앗 크레인 주변을 야외 공연장과 수변공원으로 변모시키는 전략이다.

GM 자동차 공장 폐쇄까지 겹쳤던 군산은 '군산형 상생일자리'를 출범시켰다. 전기자동차 관련 중소기업들이 클러스터를 이루면서 함께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생산성을 혁신하면서 적정 임금을 제공하는 괜찮은 청년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물론 이런 노력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통영의 도시재생사업은 조선소 부지의 토양오염 문제로 예상했던 것보다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야심차게 육성하려고 했던 문화관광 산업 역시 메르스나 코로나 같은 외부 충격이 있을 때마다 부침을 겪고 있다. 군산 역시도 전기자동차 클러스터 내 일부 기업이 무리한 인수합병과 법적 분쟁 등에 휘말리면서 사업 전망이 흔들리고 고용 창출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산업이 회복되어도 나아지지 않는 일자리의 질

군산을 비롯한 조선업 고용 특구들은 연장에 재연장, 재재연장을 거치면서 지난해 말 드디어 '위기특구'라는 딱지를 떼어냈지만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에 놓여있다.

원래 컨테이너선이나 벌크선 등을 건조하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는 이제 울산에서 건조되는 선박에 들어갈 블록을 생산하는 하청업체 노릇을 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생산물량을 늘린다고 하지만, 조선 경기가 다시 불황에 빠지면 언제 다시 내쳐질지 모른다. 지역발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체계적인 전략이 수립되지 않고 정책과 예산이 투입되면, 지역혁신의 기회를 지연시킬 수 있다.

지금까지의 정책지원 방식에 의문이 드는 이유는 무엇보다 지난 십여 년간 수조 원을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의 질이 오히려 악화했기 때문이다.

조선업은 경기와 생산 상황에 따라 인력 운용의 불확실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용접‧도장‧배전 같은 생산기능직 인력의 60% 이상을 사내협력사에 의존하고 있다. 올해도 대형 3사의 정규직 생산직 인력은 여전히 감소추세에 있고, 증가하는 일자리 대부분은 사내협력사나 물량팀 인력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다른 산업에 비해 임금도 낮아지고 있다. 2011년 조선업 월평균임금은 전산업 평균을 100으로 했을 때 126.8을 기록했다. 불황을 겪으면서 2021년 전산업 대비 107.5까지 하락했다가 경기회복이 시작된 지난해에도 111.2로 예전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

더군다나 조선업에서 오래 일할수록 다른 산업 종사자보다 상대임금이 더 낮아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조선업에서 10년 이상 근속한 사람들은 전산업 대비 97.0에 불과하다. 옥외에서 힘든 육체노동을 하면서 각종 산업재해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지만 임금은 더 낮으니 구인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전산업(=100) 대비 조선업 종사자의 근속기간별 월평균(상대)임금(위), 00인 이상 사업체(=100) 대비 종사자 규모별 월평균(상대)임금(아래). 출처 :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월임금총액 기준)

지역 일자리 양극화 해소 통해 공간적 양극화 풀어가야

조선업이 겪고 있는 명암은 지역에 있는 다른 업종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용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2002년 10인 미만 기업 종사자는 500인 이상 대기업에 비해 70.5%의 임금을 받았는데, 2022년에는 불과 50.6%의 임금을 받고 있다. 이차전지, 반도체, 스마트모빌리티 등 신성장 분야의 지역 중소기업들도 채용공고를 통해 제시하는 임금이 최저임금 언저리를 웃돈다.

서울수도권 집중은 결국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일자리 양극화가 공간적 양극화로 귀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지역 중소기업 일자리의 질이 개선되지 않으면 구인난을 해소하기 어렵고,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을 막기도 어렵다.

그런데 적지 않은 중앙 혹은 지역의 정책담당자들이 산업의 성장을 일자리 질 개선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조선업에 그토록 많은 지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인난을 겪고 있는 이유는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지도록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업 지원의 목적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이 좋아지도록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불합리한 원하청 관계 개선이 중요하다.

지역 공동체에 살고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일'에 관심 가져야

지방소멸 대책도 마찬가지다. 지역에 대한 지원이 반드시 지역에서 살고 일하는 사람들까지 좋아지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발전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이루어지는 수많은 개발사업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대도시, 대기업과 같이 점점 더 '큰 것'이 되기 위한 목표로 도로와 공항, 시설을 더 지어봐야 얼마만큼의 경쟁력을 가질 것이며, 그 혜택이 또 누구에게 돌아갈까?

세계적인 경제지리학자인 리차드 플로리다 교수는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라는 책에서 "경제발전을 만들어내는 힘은 더 이상 자연자원이나 대기업이 아니라, 인재를 모으고 집중시키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지역에서 실직한 사람들, 취약계층이 가장 원하는 것은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살고 있는 터전에서 양질의 교육과 일자리 기회를 갖는 것이다. 우리도 중소도시나 농어촌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사람, 지역 중소기업에서 일하게 될 청년의 일과 삶을 개선하기 위한 '작은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 필자소개

이상호 박사는 한국지역고용학회의 상임이사 및 한국고용정보원의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방소멸위험지수'를 개발했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지역노동시장 양극화, 일자리정책평가 등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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