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동자의 호소 "덥다고, 어지럽다고 쉬면 내일 나오지 말라 해"

건설노조, 정부에 폭염대책 요구…"더워 죽는 것보다 굶어 죽는 게 더 무섭다"

"덥다고 어지럽다고 쉬면 내일 나오지 말라고 합니다."

"현장 나와 직접 해봐야 고통을 압니다."

"정말 눈이 돌아갑니다. 폭염 때문에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많은데 대책이 시급합니다."

"매일매일 정말 죽겠습니다. 살려주세요."

건설노조가 폭염기 건설 노동 환경에 대한 의견을 묻자 건설노동자들이 내놓은 답변들이다. 이들 10명 중 8명 이상이 하루 중 가장 기온이 높은 오후 2∼5시에도 실외에서 휴식없이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은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건설노조 폭염 기자회견'을 열고 형틀 목수, 철근, 타설 등 토목건축 현장 노동자 320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일 때 무더위 시간대인 오후 2∼5시 옥외 작업을 중지하도록 한 것과 관련한 사항이 지켜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2424명 중 81.7%에 해당하는 1981명이 '별도 중단 지시 없이 일한다'고 답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이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폭염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건설노조

현행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566조)에 따르면 체감온도 33도 이상(폭염주의보)일 경우 매시간 10분, 체감온도 35도 이상(폭염경보)일 경우 매시간 15분의 휴게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의무사항이 아닌 '권고'이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적용률이 높지 않다.

전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폭염 대응 긴급 지방관서장 회의'를 열고 "올해의 폭염은 전 세계적으로 사막의 선인장도 말라 죽일 정도의 살인적 폭염으로, 우리나라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며 "온열질환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사업주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1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대피시키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날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건설 현장에서는 이같은 지시는 이행되지 않고 있었다.

26년째 철근을 다루는 일을 하는 노동자 장성문 씨는 "30도가 넘는 날씨에는 양철 바닥에서 열이 올라오고 들고 나르는 철근도 달궈져 뜨겁다"며 "뜨거운 바닥 양철판 위에 서서 달궈진 철근을 만지면 장갑을 덧끼워도 고통이 극심하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노동자의 생명과 직결된 야외 폭염대책이 나오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폭염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건설노조

강한수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야외 건설노동도 '고열작업'으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산업안전보건법상 고열작업은 사측이 노동자에 대한 안전대책을 마련하게 돼 있지만 야외작업은 이 고열작업에서 제외된다"며 "건설노동자의 야외 옥외작업을 고열작업으로 규정하고 대책을 마련하길 고용부에 요구한다"고 했다.

건설노조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체감온도가 35도가 넘어가도 작업중지는 없었다. 언감생심, 노동자가 작업중지하겠다는 말을 꺼낼 수도 없다"며 "더워 죽는 것보다 굶어 죽는 게 더 무섭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일하다 쓰러질 거라곤 생각못했던 해체정리 노동자가 병원에서 '일 나오지 말아 달라'는 사측의 말을 들었다"며 "정부에서 보내는 폭염시 야외활동 자제에 대한 안전문자를 분명히 건설업계 관리자들도 받을텐데 건설현장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건설노조는 "정부가 폭염대책을 명확히 못내고 또 권고 따위로만 두니 대체 어떤 사용자가 노동자들을 위해 폭염대책을 스스로 내어 놓고 현장에 적용을 하겠나"라고 반문하며 "죽일 듯이 쏘아대는 햇빛과 달궈진 철근, 굳어가는 콘크리트가 내뿜는 열기를 맨몸으로 받아가며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기자회견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에 옥외작업의 온열질환 예방대책을 반영하라며 안전모에 얼음물을 받아 뒤집어쓰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폭염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안전모에 얼음물을 담아 붓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건설현장 폭염기 온열질환 사망재해는 예고된 것이라며 폭염대책 법제화를 촉구했다. ⓒ건설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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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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