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피해자 두 번 울린 정치인 막말, 도대체 왜이러나

[박해성의 여의대교] 저질스러운 '말의 전쟁', 환호 보내는 열성 지지층

기상 관측 이래 50년 만에 찾아온 역대급 장마라고 합니다. 사람과 재산을 잃고 미래마저 막막해진 수재민들이 용기를 내어 삶의 터전을 재건하는 데 나설 수 있도록 조속하고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거기는 어떤가요? 다들 별일 없으신가요?" 지난 며칠간 많은 분이 맘 졸이며 가족과 지인들에게 연락을 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당장 내 가족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불행을 당한 사람들의 처지를 헤아리며 우리 모두 안타까운 마음을 나누고 있습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맹자의 얘기대로, 다른 사람이 처한 어려움을 가엾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지금 중국과 러시아가 마치 범람하는 강과 같은데,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가서 한 행동과 말은 우리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궁평 지하차도로 밀어 넣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본다."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대통령을 비판하며 언급한 내용입니다.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빗대어 논란이 일었습니다. 결국 유가족들에게 사과했습니다만, 이 발언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다뤄질 거라고 합니다.

정치의 영역에서 말은 큰 사회적 힘을 가집니다. 여론을 형성하고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정치적 증오를 촉발하거나, 또는 해소할 수 있습니다. 국민을 통합할 수도, 분열시키고 소외시킬 수도 있습니다.

"진보적인 미국과 보수적인 미국은 없습니다. 미국이 있습니다. (There is not a liberal America and a conservative America; there is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2004년, 버락 오바마 미국 상원의원의 연설 중 한 대목입니다. 당시 오바마 의원은 대중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오바마는 이 연설로 많은 미국인에게 반향을 일으켰고, 이념적 분열을 초월하는 통합의 정치인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10년도 더 지난 후 미국의 한 언론(NBC News)은 ‘미래의 대통령으로 나아가는 연설’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7월 초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로 '거대 양당 중심의 대결적 구도'를 꼽은 응답자의 비율이 23%로 가장 높았습니다. 다음으로 '불투명한 공천 과정' 22%, '인기영합적 정책발표' 19%, '정치인과 유권자 간 괴리' 14%, '승자독식 선거제도' 11% 등의 순이었습니다. (리얼미터, 2023.7.5.~6.)

서로 다른 지향을 가진 두 주요 정당이 국민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면 그걸 뭐라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런데 '대결적 구도'가 문제라는 지적에는 '정치인들이 맨날 싸우기만 해서 싫다'는 감정이 실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야는 어떻게 싸울까요? 예전에는 몸싸움까지 불사했던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만, 최근에는 국회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서 다행히도 그런 일은 사라졌습니다. 이제 정치세력 간의 대결이란 자신들의 생각, 목표, 방법론 등을 국민에게 설득하는 과정이고, 거의 유일한 수단은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대규모 대변인단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현실을 방증합니다. 국민의힘은 112석의 의석 규모를 가진 정당인데요, 수석대변인 2명, 대변인 3명, 상근부대변인 4명, 원내대변인 2명 등 원내·외로 구성된 11명의 대변인단을 두고 있습니다. 총 299개 국회의석 중 168석을 점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대변인단 역시 수석대변인 1명, 대변인 4명, 상근부대변인 4명, 원내대변인 3명 등 12명에 달합니다.

여기서 매일같이 브리핑과 논평을 쏟아냅니다. 그밖에 비상근직인 부대변인으로 임명된 사람들도 여야 각 20~30명씩 됩니다. '메시지 전쟁'을 위한 대부대가 준비돼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각 정당의 지도부 회의, 원내의 대책 회의, 본회의나 상임위원회 발언, 공청회와 토론회, 그리고 개별 정치인의 방송 출연, 언론 인터뷰, 강의, SNS까지. 어디서나 늘 정치인의 말은 넘쳐납니다.

정치는 말하는 직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법을 만들고, 국가와 지역사회에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정부를 감시하고, 주민들의 삶을 살피는 많은 일들이 정치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우리에게 도달합니다. 그렇다면 유능한 정치란 잘 말하는 것이고, 좋은 정치는 선한 언어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우리의 정치 언어, 정치인들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너 진짜 맞는 수 있어(질문하는 기자에게), 개소리(유튜브에서), 양아치(상임위에서), 노숙자 느낌(세월호 참사), 빈곤 포르노(동남아시아 순방), 시체 팔이(이태원 참사), 마약 도취(패스트트랙 처리), 돌팔이 과학자(후쿠시마 오염수), 날파리 선동 프레임(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이 정도는 제가 충격을 받았던 기억에 의존해 떠올린 일부에 불과합니다.

공업용 재봉틀, 귀태(鬼胎)의 후손, 오물 쓰레기 등 상대 진영의 대통령을 향한 저주에 가까운 막말 리스트도 있습니다. 우리의 정치 언어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니 여기서 발언자를 특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참담한 심경이 듭니다. 이런 저급한 표현이 버젓이 온 국민에게 전달됐다는 점, 발언자가 우리를 대표해 정치를 하는 공직자 신분이라는 점, 그들이 시정무뢰들이나 쓸법한 막말을 공개적으로 사용했다는 점, 나라가 슬픔에 잠긴 재난 상황에서도 거리낌 없이 배설되었다는 점, 사회적 약자나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감수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 등 때문입니다.

국회의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2020년 개원한 이번 21대 국회에 접수된 의원 징계안은 총 47건입니다. 그중 13건이 막말·망언 관련 건이라고 합니다.

진영론에 갇힌 우리 정치 현실을 이용해 더 독하게, 더 자극적으로 말해 인지도를 올리고 열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는 일부 정치인들을 보고 있자니 서글퍼지기까지 합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험한 말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보통은,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막말을 쏟아내는 건 미성숙한 인격과 천박한 품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 삼가지 않나요.

엘리트주의자였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말로 중우정치(衆愚政治)를 경계하며 당시 엘리트들의 정치 참여를 촉구했습니다.

이 격언을 대의제 민주주의가 정착된 현대 정치에 거꾸로 적용해도 꼭 들어맞을 것 같습니다. 증오와 혐오의 정치를 우리가 외면해버리고 만다면 대표자로서, 공직자로서 자질이 부족한 정치인들이 계속 국민 위에 군림하며 권력을 누리게 될 테니까요. 대가를 치르는 건 결국 우리 자신들입니다.

유머, 품격, 지성을 갖춘 언어로 말하는 정치인이 나를 대표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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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티브릿지 대표는 여론조사 전문가이자 정치·선거, 빅데이터, 공공정책 분야의 컨설턴트입니다. 2019년부터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2년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지역산업·경제분과위원장을 맡아 국가적 과제 해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직업인으로서, 비판적 시민으로서의 감수성과 현실을 직시하는 균형감각을 신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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