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선글라스'에 '수급자다움'까지…정말로 '시럽급여'일까?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실업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

실업급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와 여당은 우리나라 실업급여가 너무 관대하다며 급여 하향을 위한 개혁을 할 뜻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실업급여가 달콤해서 '시럽급여'라느니 실업급여 수급자가 '샤넬 선글라스'를 구매한다느니 하는 발언이 부각되었다. 마치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적반하장처럼, 이제는 실업급여 수급자에게 '수급자다움'을 요구하는 꼴이다.

사회보험과 사회권

사회보험은 사회적 위험에 대해 보험방식으로 대처하는 제도다. '보험방식'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사회보험이 마치 민영보험처럼 보험료를 납부하고, 사전에 정해진 보장 대상 위험이 발생했을 경우에 대해서만 급여를 지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사회보험은 개인의 위험을 보험수리적으로 계상하기보다는 집합적으로 재분배한다는 점에서 민영보험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사회보험은 보험의 원리에 기초했기에 다른 사회보장제도에 비해 권리적 성격이 더욱 두드러진다. 사회보험은 기여와 그에 대응하는 급여의 짝으로 구성되어 있고, 따라서 기여 납부를 통해 급여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권리적 성격이 강한 사회보험을 놓고도 '수급자다움'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부와 여당의 사회보장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보여준다. 비단 사회보험이 아니라도 현대적 사회보장 제도는 시민의 사회적 권리(social rights)에 기초한다. 몇 해 전 기초생활수급자 아동이 돈가스를 먹는다고 민원을 제기한 사건에 대해 공감보다 비난이 더 컸던 것은 '아이'와 '밥'이라는 관찰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들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복지가 시민의 권리에 기초한다는 점이 어느 정도 공유된 인식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에 비하면 이번 발언에서 드러난 정부와 여당의 인식은 후진적이기 짝이 없다.

이 발언 자체는 사안의 본질이 아니며, 정책 변화에 관한 논의 과정에서 불거진 해프닝일 뿐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발언의 주체가 시민의 삶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는 정치인, 시민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무원이라는 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사결정과 그 결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정당한 권리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실업급여 신청 창구. ⓒ연합뉴스

사회적 위험으로서의 실업의 특성과 실업급여

사회적 위험으로서 실업에 다른 사회보험이 보장하는 위험들과 구분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실업은 사회보험이 보장하는 여러 사회적 위험 중에서도 이른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의 가능성이 가장 크다. 사람들이 연금을 받기 위해 일부러 나이를 먹을 수는 없지만,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취업 노력을 태만히 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부분의 복지국가에서 실업에 대한 사회보험이 가장 늦게 도입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사람에게 '수급자다움'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지만, 실업급여 지급에 부가되는 특수한 조건들은 실업이라는 사회적 위험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우선 실업급여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제한된 기간 동안만 지급된다. 이는 수급자가 실업급여에 의존하여 노동시장에 재진입하지 않으려는 유인을 감소시킨다. 국가에 따라서는 일정 수급 기간이 지나면 급여를 깎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의 결정으로 실업한 경우(자발적 실업)에는 급여를 삭감하거나 대기기간(실업 이후 실업급여를 받기까지의 기간)을 늘리고, 국가에 따라서는 아예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실업급여 수급 기간 동안 고용행정기관의 지도에 따라 구직활동을 해야 하고, 적합한 일자리가 주어졌을 때는 이를 수용해야 한다. 만약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급여를 삭감하거나 중단할 수도 있다.

실업급여에 부과되는 이와 같은 조건들은 실업급여의 사회권적 성격을 퇴색하게 한다. 이 조건들은 많은 국가에서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시대'라고 불렸던 1980년대부터 두드러지게 강화되었고, 그만큼 많은 비판을 받았다. 우리나라에도 개봉한 켄 로치 감독의 2016년 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는 이를 꼬집은 영화도 많은 공감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업급여 수급자를 제약하는 조건들은 실업이라는 사회적 위험의 특성 속에서 지속가능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모든 제도가 그렇듯 조건과 제재의 정도는 국가에 따라 다양하며, 그 정도에 따라 서로 다른 함의를 갖는다.

우리나라 고용보험 실업급여와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

우리나라의 고용보험 실업급여에 부과되는 조건은 어떨까?

우선 우리나라의 실업급여(구직급여)는 수급기간이 120~270일로 매우 짧다. OECD 대부분의 국가들보다 더 짧은 수준이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장기간 취업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하기에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다. 게다가 자발적 실업에 대해서는 실업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이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우 엄격한 것인데, 2015년 OECD에서 국가별 실업급여 제도를 비교한 보고서1)에 따르면 40개국 중 13개국만이 자발적 실업에 대해 실업급여를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실업자들은 고의적으로 실업해서 실업급여를 받기도 어렵다.

일부러 실업할 수도 없고 장기간 실업할 수도 없다면, 우리나라 실업자들이 '시럽급여'를 타먹는다는 인식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한 가지 가능성은 반복적으로 실업하고 실업급여를 수급하는 경우다. 장기간 실업할 수 없으니 실업 – 재취업 – 재실업을 반복하면서 실업급여를 받는 방법이 가능하다. 특히 우리나라 고용보험 실업급여의 피보험단위기간(실업급여 수급을 위해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기간)은 최근 18개월 중 180일로 OECD 국가들 중에서도 짧은 편이다. 비교적 단기적인 재취업을 통해서도 실업급여 수급권을 확보할 수 있다. 반복실업을 통해 '시럽급여'의 혜택을 누리기에 유리한 조건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 역시 실업급여의 반복수급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 실업급여는 자발적으로 실업한 경우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짧은 피보험단위기간을 채우고 재실업해서 반복적으로 실업급여를 받은 실업자의 반복적 실업 역시 타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기 계약직이어서 계약기간이 종료되었거나, 사업장이 도산·폐업해 일자리를 잃었거나, 사업장의 사정으로 퇴직을 권고 받는 등의 사유가 전형적이다. 이렇게 보면 실업급여를 반복 수급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일부러 실업급여를 받고자 했다기보다는 그만큼 불안정하고 취약한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만약 이런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면, 그것은 실업급여 수급자가 수급자답지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 노동시장에서 좋은 일자리의 기회가 만들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에서 좋은 일자리에 취업할 기회가 부족한 책임을 취약한 일자리에라도 취업해서 타의에 의해 일자리를 잃을 때까지 일한 실업급여 수급자에게 지우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에 정부의 책임도 있다고 보는 시각에서는 오히려 정부의 책임을 지적할 수 있다.

노동시장 환경과 실업급여

우리나라 고용보험 실업급여의 피보험단위기간 조건이 상대적으로 관대한 것은 이처럼 불안정한 노동시장 환경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한 환경에서 실업으로 인해 생활상의 위협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은 실업자들을 지원하려면 장기간 가입할 것을 수급 조건으로 제시해서는 안 된다. 물론 여전히 비정규직, 소규모 사업장 종사자의 상당수가 고용보험에 가입해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관대한 조건도 의미를 상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피보험단위기간은 그나마 우리나라 실업급여가 우리의 노동시장 조건에 조응하는 측면이다.

정부가 가장 강력하게 지적한 실업급여의 높은 하한선(최저임금의 80%) 문제도 마찬가지다.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실업급여의 하한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하한선이 저임금 노동자의 근로의욕을 낮출 수 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고용보험 하한선만 뚝 떼어서 우리나라 고용보험 실업급여가 관대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부당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 고용보험 실업급여는 수급기간이 매우 짧다. 또한 다른 국가들의 경우 우리에게는 없는 부양가족에 대한 추가급여를 두는 경우도 많다. 실업급여의 하한선과 달리 상한선은 오히려 낮은 수준이라는 점도 생각해볼 문제다. 실업급여 하한선이 높아서 개혁이 필요하다면 이 모든 사항을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제도를 살펴봐야 할 문제다.

정부는 실업급여 하한선이 너무 높아서 최저임금 근로자와의 소득역전이 일어난다고까지 말했다. '시럽급여'라는 표현의 또 다른 근거다. 사실 이는 최저임금 근로자의 실효세율이나 실질적 사회보험 부담을 임의적으로 설정한 '편법비교'에 근거한 것이지만, 정부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노동시장 환경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실업급여 하한선과 비교해야 할 정도 소득을 가진 취업자가 많다는 것은 또 다시 우리 노동시장의 취약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미만율, 최저임금 영향률, 그리고 저임금 근로자 비율이 모두 높은 우리의 노동시장 상황이 '높은 실업급여 하한선'의 영향을 받는 취업자를 늘린다. 실업급여 하한선으로 인한 소득역전 논의는 한 편으로 우리 노동시장에 취약한 노동자가 많다는 방증이자,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 정책이 실패해왔다는 고백이다. 그리고 그 고백을 다시 취약한 노동자를 위한 제도를 축소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하는 모습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말 도덕적 해이가 문제라면 고용서비스부터 강화하라!

앞서 언급한 OECD 보고서에서는 한국의 실업급여가 자발적 실업에 대한 제재가 매우 강하고 구직활동에 대한 조건이 엄격한 편이지만, 실업자가 수용해야 하는 적절한 일자리에 대한 요건은 엄격하지 않고 실업기관의 지도에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한 제재도 적다고 평가했다. 언뜻 생각하면 실업급여의 사회권적 성격에 부합하는 관대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관리하기 쉽고 손이 적게 가는 측면(자발적 실업에 대한 급여 박탈, 실업자의 구직활동 의무)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고용서비스 기관의 밀착관리가 필요한 측면(적절한 일자리의 발굴 및 제안, 실업자의 재취업을 위한 종합적 관리)에 대해서는 느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실업급여 수급자 관리의 현황은 취약한 공공 고용서비스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나라 고용서비스 지출은 GDP의 0.05%로 OECD 평균(0.13%) 보다 현저히 낮으며, 공공고용서비스 인력은 독일의 12분의 1, 프랑스의 11분의 1, 일본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실업자를 밀착 관리하고 적극적으로 취업을 지원할 역량은 부족하니 손이 덜 가며 도덕적 해이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규정만 엄격하게 하고 있는 꼴이다.

실업급여 수급기간도 짧고 자발적 실업도 차단되어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실업급여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라면, 고용서비스부터 강화해야 한다. 고용서비스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통해 양질의 취업기회를 제공하고, 일부 급여를 편취하는 사례에 대해서는 개별화된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고용서비스의 취약성은 그대로 둔 채 실업급여 반복수급을 제한하고, 피보험 단위기간을 늘리고, 급여 하한선을 없애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행정 편의주의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발상의 피해자는 취약한 노동시장에서 하루하루 분투하고 있는 정당한 노동자-실업급여 수급자가 될 것이다.

각주

1)Langenbucher, K. (2015), “How demanding are eligibility criteria for unemployment benefits, quantitative indicators for OECD and EU countries”, OECD Social, Employment and Migration Working Papers, No. 166, OECD Publishing, Paris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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