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알제리계 10대 경찰총격 사망에 5일째 격렬 시위…1600명 체포

佛 뿌리깊은 인종·이민 문제에 불씨 당겨…마크롱 정권 위기로 번지나

교통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알제리계 10대 소년 나엘 군이 경찰 총격에 숨진 사건으로 프랑스 전역에서 성난 군중의 폭력 시위가 5일째 격렬하게 이어졌다.

프랑스 정부는 전국 주요 도시에 경찰 수만 명을 배치했지만 인종차별을 규탄하며 거리 곳곳에 나선 시위대를 진압하는 데 한계가 있는 모습이다.

이번 시위는 연금개혁 시위로 흔들렸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정부에 또 다른 위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화·약탈 등 폭동으로 번진 시위…주말 사이 1500명 이상 체포

2일(현지시간) <AFP> 통신과 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프랑스 내무부는 이날 오전 1시 30분 현재 프랑스 전역에서 불법 시위 가담자 322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수도 파리 일대에서 126명이 체포됐으며, 남부 도시 마르세유에서 56명, 리옹에서 21명이 각각 경찰에 붙잡혔다.

프랑스 내무부는 프랑스 전역에서 발생한 폭력 시위가 방화, 약탈 사건 등으로 이어지며 치안 불안이 고조되자 시위 발생 5일째인 1일 밤 전국 주요 도시에 경찰 인력 총 4만5000명을 배치해 불법 시위의 사전 차단에 나섰다.

경찰 인력 증강 배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남부 대도시 마르세유에선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다.

마르세유 도심부에 모인 시위대가 진압 경찰과 격렬한 대치를 벌였으며, 소셜 미디어에선 현지 경찰이 시위대 해산을 위해 최루가스를 사용했다는 영상이 퍼졌다.

수도 파리에선 소셜미디어에 이날 기습 시위를 벌일 장소로 도심부인 샹젤리제 거리가 지목됐으나 전투경찰이 도심 곳곳에 배치돼 군중 결집을 차단했다.

북부 도시 릴에서는 경찰특공대가 시위 진압에 나서는 장면과 소방관들이 차량 화재를 진압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공유됐다.

내부무 집계에 따르면 시위 4일째인 30∼1일 밤새 자동차 1350대와 건물 234채가 불에 탔고, 2560건의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4일째 시위에서만 프랑스 전역에서 총 1311명이 체포됐다.

앞서 나엘 군은 지난달 27일 오전 파리 서부 외곽 낭테르에서 교통 검문을 피하려고 하다가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차 안에서 숨졌다.

근거리 총격 장면을 담은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퍼지면서 사망 당일인 지난달 27일부터 5일 연속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마크롱, 연금개혁 위기 벗어나자마자 또 '수렁'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애초 이달 2∼4일 독일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시위 격화로 일정을 미뤘다.

우파 공화당과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에서는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시위가 격화하고 있던 지난달 28일 밤 가수 엘튼 존의 공연을 보러 간 모습이 포착되면서 극우 야당 정치인들로부터 비판받기도 했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연금 개혁으로 홍역을 치렀던 마크롱 대통령이 이번 폭력 시위로 다시 한번 정치적 수렁에 빠졌다고 평가했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2018년 노란 조끼 시위에 이어 올해 초부터 수개월간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시위에 시달렸다.

<이코노미스트>는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소수 중도파 정부는 극좌파와 민족주의 강경 우파 사이에 껴 있다"라며 "그는 인기 없는 연금개혁으로 촉발된 오랜 정치 투쟁에서 이제 막 벗어났는데 이번 폭동으로 두 야당이 마크롱을 다시 한번 약화시킬 기회를 얻었다"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앞선 두 차례의 폭동은 정부 정책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었다"면서 "이번 사태는 마크롱과는 관련이 적으며 교통단속에서 치명적인 총기 사용을 허용하는 치안 정책 본연과 맞닿아 있다"라고 평가했다.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 일요판 <선데이 타임스>는 마크롱 대통령이 2005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재임 때 발생한 폭동 이후 가장 심각한 폭동 사태의 재발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5년 프랑스 파리 북부 교외 지역에서 아프리카 출신 두 10대 소년이 경찰을 피해 변전소 담을 넘다가 감전사한 사건을 계기로 파리 전역에서 이민자 폭동이 발생한 바 있다.

두 달가량 지속한 소요 사태로 300여 채의 건물과 1만여 대의 차량이 불탔으며 미성년자를 포함해 3000여 명이 체포됐다. 시라크 당시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선언하기도 했다.

<선데이타임스>는 "지난 20년간 이민자 인구가 증가하면서 인종 문제는 더 악화했다"라며 "이민자에 대한 적대 정책은 작년 대선에서 41.45%를 득표한 극우 성향 마린 르펜의 정책 핵심이었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번 사태는 2005년보다 더 빠르게 통제 불능 상태로 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면서 특히 소셜 미디어의 가짜 사진·동영상이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도 "증가하는 위기는 마크롱 대통령을 시험대 위에 올릴 것"이라며 "소년의 죽음이 인종과 정체성, 경찰에 대한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키면서 프랑스는 고통스러운 결정의 순간에 놓이게 됐다"라고 평가했다.

佛경찰, 작년에도 운전자 13명 사살…"대부분 흑인·아랍계"

경관의 총격에 10대 알제리계 소년이 사망한 일로 들끓어 오르는 프랑스에서 최근 증가한 경찰의 폭력적 진압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앞서 프랑스 정부는 최근 수년간 발생한 국내 테러를 계기로 경찰이 더 강력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를 적절히 운용할 역량이 뒷받침되지 못한 탓에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숨진 나엘(17)을 포함, 올들어 프랑스에서 교통 검문 과정에서 경찰의 총에 사망한 이는 모두 3명으로 집계됐다.

2020년 한 해 동안 2건, 2021년에는 3건에 불과했으나 작년 13건으로 급증했다.

관련 희생자의 대다수가 흑인이나 아랍계 출신이라는 점을 두고 현지 인권단체 사이에서는 프랑스 사법기관의 법집행 과정에 인종차별적 요소가 자리 잡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인종주의 SOS'(SOS Racisme)의 대표 도미니크 소포는 "경찰들은 흑인이나 아랍인들을 보면 고함을 지르는 대신 인종차별적 말을 내뱉거나 머리에 총을 쏘는 경향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두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017년 2월 경찰의 차량 검문에 불응해 도주하는 운전자에게 총을 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이 개정된 것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는 2015년 파리 연쇄 테러, 2016년 니스 트럭 테러 등이 이어지면서 치안 강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도입된 조치다. 이듬해 의회에서 이 법안이 표결에 부쳐지자 압도적 다수가 찬성표를 던졌다.

과거 프랑스 경찰관들은 즉각적인 위험에 처했을 때에만 정당방위 차원에서 차량에 총격을 가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운전자들이 도주하는 가운데 인명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상황이면 발포가 허용된다.

하지만 주행 중이거나 과속하는 차량에 발포하는 행위는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많은 도시에서 금지되고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일례로 뉴욕 경찰은 1972년부터 통상적인 경우 자동차에 총을 쏘는 것이 금지돼 있다.

미국 연구단체 경찰행정연구포럼(PREF)의 간부인 척 웨슬러는 "프랑스의 정책은 여러 면에서 이례적"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프랑스에서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첫 9개월간 모두 5명의 운전자가 경찰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이전 5년간 발생한 사고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다.

NYT는 "프랑스에서는 해당 법안 통과 후 평균 2개월 반마다 1건씩 총격 사망 사고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이전과 비교해 6배로 증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프랑스 경찰은 이에 "2012년에서 2021년까지 경찰의 검문 정지 요구를 거부하는 사례가 2배로 늘었다"고 반박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총격 사망 증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법률의 폐지를 주장하는 경찰노조 '알리앙스 폴리스'의 프레데릭 라가슈는 "이 법과 관련해 어떠한 훈련도 받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총격 판단과 관련한 상황, 현장과 동떨어진 이론 등이 담긴 영상을 시청하는 것이 전부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 감사원의 작년 보고서를 보면 전체의 40%에 이르는 경관들이 사격 훈련 3회 참여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NYT는 프랑스의 저명한 정치인들이 법을 재고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현지 대표적 언론사인 르몽드는 사설에서 법 개정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마린 통들리에 녹색당(EELV) 대표는 "17세 소년이 죽었고, 그 영상이 남았다"며 "2017년부터 발생한 고질적 문제를 더는 정치적으로만 다룰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다른 유럽 국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프랑스 경찰의 구조나 접근방식이 문제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프랑스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라기보다는 국가나 정부의 수호자라는 인식이 있으며, 그 결과 프랑스에서 경찰과 대중의 관계가 북유럽이나 독일, 영국에서와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2018∼2019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정권을 향한 '노란 조끼'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면서 총 2500명의 시위 참여자가 다쳤고, 이중 실명하거나 팔다리를 잃은 경우도 있다.

올해 들어 3월까지만 연금개혁 반대 시위 등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부상자만 1000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범죄학자인 세바스티앙 로셰는 프랑스 경찰이 시위대를 진정시키보다는 대립을 통해 긴장감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며 "경찰은 상관에게만 반응하고, 사회로부터는 격리돼있는 상태"라고 분석했다.

▲2일 새벽(현지시간) 시위 5일째를 맞은 파리 시내 도로에 차량이 뒤집혀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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