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가방’의 문화문법  

바야흐로 논문의 계절이 왔다. 과거 한국어가 인기가 없던 시절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전공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동료 교사들로부터 핀잔도 많이 들었다. 학부에서 한문교육학을 전공한 터라 한국어교육이 뭔가 끌리는 것이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대학원에서는 ‘국어교육과’라고 했지만 한국외국어대학교만은 ‘한국어교육과’라고 하여 특화해 왔다. 물론 대부분이 국어교육에 관한 공부였고, 여 교수 한 분만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을 지도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른 과목은 쉬웠는데, 그분의 어학 수업은 조금 어려웠다. 영어가 많이 나오기도 했고, 문법 용어도 조금 생소한 것들이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한국어교육’으로 교육학석사학위를 받고 계속 박사과정에 진학해서 가방끈을 늘여나갔다.

외국인들은 “가방끈 길다고 공부 잘하니?”라는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가방 크다고 공부 잘 하니?”라고 했을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속뜻까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나라는 문교 혜택을 많이 받았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고, 장학금을 타인에게 양보하면서 학교에 다녔다는 등의 해학적인 표현도 즐겨 사용한다. 이는 한국인만이 지닌 언어유희의 한 장면이다. 실재로 가방끈과 교육 과정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가방’이라는 등식으로 언어를 구사한다.

우선 ‘가방’이라는 말은 “손잡이나 멜빵이 달려 있어 물건을 넣어 들거나 메고 다니는 용구”를 말한다. 필자 어린 시절에는 가방은 언감생심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책보에 둘둘 말아서 남자는 어깨에 둘러메고, 여자는 허리춤에 묶고 다녔다. 그러다가 논이나 도랑에 책이 빠져서 곤욕을 치룬 적도 많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겨우 운동화에 가방이 생겼다. 그래서 우리 세대에는 ‘가방’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공부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던 것이다. 책이 워낙 많아서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끈은 끊어져서 실로 꿰매고, 옆구리에 끼고 다닌 적도 많다. 그러므로 가방끈과 교육적 혜택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난 가방끈이 짧아서 그런 어려운 말 잘 몰라.”라고 하기도 하고, “얀마, 가방끈 길다고 세상사 다 아니?”라고 하면서 가방과 공부의 등식을 깨기도 한다. ‘가방끈’이란 “어깨에 메거나 손으로 들 수 있도록 가방에 달아 놓은 끈”을 말한다. 두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래도 필자의 세대는 항상 가방이나 가방끈을 교육과정과 연관지으려고 한다. 참 재미있는 민족이다.

한편으로 일부러 가방과 교육을 부정하려고 하는 표현도 있다. 특히 ‘고스톱’이라는 화투놀이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으로 “가방 크다고 공부 잘 하니?”라고 하는 표현을 한다. ‘광’을 너무 좋아하지 말라는 표현이다. 단순하게 ‘삼 점’ 나는 것이 필요하지 큰 것 바라다가 망한다는 표현을 그렇게 바꿔서 흥미를 준다. 참으로 문장을 재미나게 만들 줄 아는 민족이다. 하기야 요즘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가방을 보면 천차만별이다. 무슨 가방이 그리 비싼지 모르겠다. 가방 장사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욕먹을 수 있지만 실제로 가방을 만드는데 그리 큰 수공이 들어가는 것 같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가방 값을 말하는 것을 들어 보면 입이 벌어진다. 필자도 몇 년 전부터 등에 메고 다니는 가방을 선호해왔다. 나이 드신 선배들이 “애들같이 그게 뭐냐?”고 하지만 지고 다니니 편하기는 하다. 손에 들고 다닐 때보다는 힘이 덜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가방끈의 개념도 바꿀 때가 되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길게 만드는 가방끈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 등에 지고 다니는 가방을 선호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가방끈’이나 큰 가방‘의 속뜻이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특히 요즘의 젊은이들은 작은 노트북 컴퓨터 하나만 들어 있으면 만사 끝이다.

세월이 변하듯이 언어의 의미도 결국은 변하게 마련이다. 가방끈 긴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우리민족이었는데, 이제는 지식을 추구할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휴대전화만 열면 세상의 모든 지식이 다 들어 있으니 가방 큰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식을 폐하더라도 지혜로운 늙은이가 되고 싶은데, 말을 많이 하면 꼰대라고 하고, 말이 너무 없으면 바보라고 무시한다. 나이 들면 인생은 가방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그냥 사람들이 싫어하는가 보다.

오호 애재라! 늙은이는 존경받고, 어린이는 밝게 뛰노는 상생의 사회는 정녕 요원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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