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 들은 제 출생 이야기가 다 거짓이었습니다"

[372명 해외입양인들의 진실 찾기] 40여년 만에 진짜 출생 배경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1976년 8월 3일에 태어났고 같은 해 10월 31일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생후 3개월에 입양된 아이였습니다. (양)부모님은 제가 부산의 한 경찰서 계단에서 고아로 발견됐고,  부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남광보육원이라는 고아원에서 지냈다고 알고 계셨습니다.

덴마크에 도착했을 때 저는 손목에 작은 팔찌를 차고 있었는데, 그 팔찌에는 제 한국 이름 김영식이 적혀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덴마크에 왔을 때 몸무게가 3.7kg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후 3개월 된 아이치고는 몸무게가 그리 많이 나가지 않았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과체중에 가까운 몸무게에 이중턱과 통통한 볼살을 갖게 되었습니다. 덴마크에 도착했을 때 저는 왜 그렇게 영양실조 상태였을까요? 양부모님은 남광보육원에서는 먹을 것이 부족해 입양 대상 아이들은 음식을 많이 받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가족과 저는 그 말을 믿었습니다.

▲덴마크로 입양될 당시의 필자. ⓒ요아킴 베르그

부모님은 아이를 낳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저는 그들에게 소원같은 아이였습니다. 이제 46살이 된 저는 저를 길거리에 내버려두고 각자의 길을 갈 수 있었던 친생부모가 저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평생 고민하며 살아왔습니다. 제가 믿어온 제 이야기입니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고, 친생부모가 왜 아기를 길거리에 버려야 했는지에 대해서도 모르는, 정체성의 위기 속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발견되었을 때 저는 태어난지 며칠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생모가 저를 키울 돈이 없었기 때문에 저를 입양 보내 인생의 두 번째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가족 모두는 덴마크 입양 기관인 오르후스 입양 센터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믿어 왔습니다.

아버지, 제 생물학적 가족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덴마크 서부 유틀란트의 리브(Ribe)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제게는 입양된 덴마크 태생의 남동생도 있습니다. 저는 제철공 교육을 받았고, 이후에 해양 엔지니어로 일했습니다. 저는 해양 산업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으며 현재는 친환경 기술을 이용한 2행정 선박용 엔진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업무차 부산에 갔다가 시내를 산책하던 중에 경찰서를 지나쳤습니다. 멈춰서서 경찰서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어쩌면 이곳이 생모가 저를 놓아두고 간 경찰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되면 남들과 다른 존재가 됩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매일매일 상기하게 되죠. 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성격 형성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입양인들은 인생의 시작부터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갑니다. 친생부모의 상실은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매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 기분을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내가 느끼는 감정과 기분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언젠가 친생부모를 찾을 수 있는지 아버지께 물었더니 그들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으니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어려울 거라고 대답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의사였던 아버지는 1986년 입양인 고국 방문과 관련해 한국에 갈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당시에 비행기에 함께 탈 의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 그는 한국사회봉사회(K.S.S.)를 방문해 제 친생부모에 대한 정보가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한국사회봉사회는 친생모들이 자녀가 입양된 후 어떻게 지내는지 보러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저를 찾으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버려진 고아라는 정체성이 뒤바뀌다

성인이 되어 연애를 시작했을 때 저는 애착 형성에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또 상실을 경험하는 것이 엄청나게 두려웠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여자친구를 멀리했습니다.

33살이 되어서야 여자친구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와 결혼해서 코펜하겐에서 살고 있습니다. 결혼은 제게 안정감을 주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입양인으로서 느끼는 어려운 감정을 직면할 용기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입양 후유증을 느끼고 있고, 그 후유증은 항상 저를 따라다닙니다.

아내는 제게 한국에서 온 다른 입양인들과 연락해 보라고 권했고, 이를 통해 저는 처음으로 정체성 버블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동료 입양인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내 자신에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습니다.

2020년 저는 입양 정보를 더 얻기 위해 한국사회봉사회에 연락했습니다. 이들이 보낸 답장에는 갑자기 모든 것을 뒤집어 놓을 정보가 담겼습니다. 제가 부산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남광보육원에 가본 적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남편과 사별한 35살 여성이 제 친생모라고 밝혔습니다. 어머니는 교제하던 남성과 사이에서 저를 임신했는데, 이 남성은 임신 사실을 알자 떠났습니다. 입양기관은 제가 조산원에서 태어났고, 조산사가 저를 입양기관으로 데려왔다고 합니다.

제 세상은 멈춰버렸습니다. 정말로 누군가가 내 생모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후 서류와 신상 정보를 요청하기 위해 입양기관과 여러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았습니다. 법에 따라 아동을 입양하려면 입양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 특정 서류를 제출해야 합니다. 이 서류 중 하나는 찬생부모의 동의서입니다. 입양기관은 이 동의서를 실제로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입양기관은 입양인이 이 문서에 접근할 권리가 없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덴마크 입양기관도 법적으로 생부모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그들 역시 동의서를 보지 못했습니다.

나의 출생기록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해 품는 희망

저는 생모와 가족들과 너무나도 재회하고 싶습니다. 또 저를 입양보낸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자발적으로 그런 결정을 한 것인지 물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생물학적 혈연관계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인과 연결이 끊어지면서 제 인생에는 공백이 생겼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무작정 떨어진 사람 같습니다. 

저는 한국의 진실화해위원회(TRC)에 사건을 제출한 많은 입양인 중 한 명이며, 첫 34건에 대한 조사 개시가 확정된 지난해 12월 8일은 우리 모두에게 역사적인 날이 되었습니다.

진실화해위가 저를 포함해 모든 입양에 대한 진실을 밝혀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보편적 복지국가로 잘 알려진, 국민을 잘 보살피고 누구도 부족한 것이 없도록 하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특권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마음 속에는 공허함이 있습니다. 

저는 덴마크에서 자랄지 한국에서 자랄지 선택할 수 있다면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선택할 수 있다면 생모와 함께 자라는 것을 선택했을 거라는 것이 바로 저의 대답입니다. 입양인은 자신의 정체성, 언어,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친생가족과의 관계를 잃게 됩니다. 이는 아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것입니다.

입양은 반드시 다른 모든 방법이 시도되고 난 이후에 남은 마지막 선택이어야 합니다.

▲이 글을 쓴 요아킴 베르그 씨. ⓒ필자 제공

2022년 9월, 283명의 해외입양인들이 진실화해위원회에 입양될 당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조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 11월 15일, 12월9일 두 차례에 걸쳐 추가로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372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권위주의 시기에 한국에서 덴마크와 전세계로 입양된 해외입양인의 입양과정에서 인권 침해 여부와 그 과정에서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다행히 진실화해위는 12월 8일 '해외 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조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한 데 이어 지난 6월 8일 추가로 237명에 대한 조사 개시 입장을 밝혔다. 이는 한국이 해외입양을 시작한지 68년만의 첫 정부 차원의 조사 결정이다. <프레시안>은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요청한 해외입양인들의 글을 지속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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