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은 나와 남편, 세 아이의 삶을 지배했습니다"

[372명 해외입양인들의 진실 찾기] 입양인 부모, 입양 역사를 연구하는 아들

제 이름은 엘리스 플릭베르트이지만, 사실 저는 세 개의 이름과 두 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때 저는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한국인 엄마와 아빠, 언니와 오빠를 둔 김미애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길로 접어들어 전혀 다른 세상에서 입양인으로 살게 된 것을 저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억울하고 부담스러웠지만 인생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였어요.

한국에서 입양된 남편과 제가 직접 겪었던 그 부담감은 세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입양 당사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입양이라는 부담은 우리 가족 안의 공통 연결고리였습니다다. 입양은 우리 부부와 아이들 삶의 거의 모든 중요한 결정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두 번의 한국 이사와 네덜란드 귀환은 우리 가족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결과 현재 큰 아들이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그는 최근 연세대학교에서 한국학 석사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연구 분야는 한국의 입양 역사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입양에 관한 많은 책들이 출판되었지만 한국의 입양 역사 전체를 다룬 연구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입양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정착되어 오늘날의 제도와 산업으로 형성되었는지 말입니다. 한국에서 신필식 교수를 처음 만나고 그를 통해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그룹(DKRG, Danish Korean Rights Group)의 공동 설립자이자 변호사인 피터 뭴러를 만났을 때, 아들은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그의 탐구를 우리에게 들려주었습니다. 

1년 전,  DKRG는 덴마크 한인 입양에 대한 보다 철저하고 심층적인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서류가 해외 입양이 가능하도록 위조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서류상 고아가 되어 과거가 지워지고 친가족의 모든 권리는 사라졌습니다. 저는 항상 내 원래 정체성에서 네덜란드 정체성으로 바뀌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습니다. 아무도 제 허락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 모든 시스템을 만든 걸까요? 태어난 나라와 문화에서 완전히 다른 미지의 세계, 특히 아시아 출신인 저에 대한 우월주의적 시선에 종종 직면해야 하는 나라로 옮겨지는 것을 왜 기뻐해야 하나요?

한국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우리 사례를 받아들여 해외입양 시스템 구축과 관련된 한국 정부의 역할을 조사하기로 하면서,  내가 갖고 있던 의문들은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미 1980년대에 정부는 국내 4대 입양기관의 행위와 관련하여 아동 인신매매(child trafficking)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진실과 정의를 찾기 위한 우리 아들, DKRG의 노력은 저와 입양 경험이 있는 소수의 네덜란드 한인들에게 힘을 주었고, 네덜란드에서 이 시스템을 파헤치기 위해 자매 단체인 NLKRG를 설립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주었습니다. 네덜란드 정부는 한국 입양기관 한국사회봉사회(KSS)의 파트너 기관이었던 네덜란드 베렐드킨더렌이 활동하는데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그리고 해외 입양을 촉진하고 해외 입양에 대한 환상을 만드는데 있어 베렐드킨더렌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요? 

입양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돕고 지원하기 위해서 우리는 입양 서류에 관한 지식과 서류에 적힌 정보를 해석하는 방법, 또 거의 모든 서류에 누락된 정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파악할 것입니다. 

OKRG(재외한국인진상규명그룹)에 모인 자매단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입양제도의 진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누가 이 제도를 만들었고, 누구의 책임이며, 누가 조장했는가, 학대가 드러난 후에도 이 제도가 계속되도록 한 주체는 누구인가? 또 입양 사례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인정하고 정의를 찾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제 무의식 속에는 서구 세계로부터 구원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늘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친가족을 만나면서 그 생각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저는 죽음에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길거리에서 발견된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한국 사회는 입양제도를 통해 미아 가족을 찾아서 아이를 돌려보내야 할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입양 서사는 무척 의심스럽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아이를 포기하는 제도에 속아 넘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는 해외입양에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거의 38년이 지난 후에야 아버지는 자신의 어린 딸에게 일어난 끔찍한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함께하지 못했던 모든 추억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강제로 돌아서야 했던 다른 길은 저를 가족과 멀어지게 했고, 가족을 잃게 했습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내 나라, 문화, 원래의 정체성도 잃었습니다. 서구 사회와 입양 부모들이 만든 해외 입양에 대한 분홍빛 환상은 잔인하게도 제가 슬픔을 표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대신 행복해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가르쳤습니다.

입양 배경을 가진 사람으로서 보건대, 지금 우리의 경험과 우려를 표명하고, 거짓 동화 같은 해외입양에 대해 더 넓은 관점과 이야기를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입양 사례를 진실화해위에 제출하고 NLKRG에서 일하게 된 동기는 제 관점과 경험을 공론의 장에 더해 이 모든 고통과 슬픔이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글을 쓴 엘리스 플릭베르트 ⓒ필자 제공

2022년 9월, 283명의 해외입양인들이 진실화해위원회에 입양될 당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조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 11월 15일, 12월9일 두 차례에 걸쳐 추가로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372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권위주의 시기에 한국에서 덴마크와 전세계로 입양된 해외입양인의 입양과정에서 인권 침해 여부와 그 과정에서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다행히 진실화해위는 12월 8일 '해외 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조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이는 한국이 해외입양을 시작한지 68년만의 첫 정부 차원의 조사 결정이다. <프레시안>은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요청한 해외입양인들의 글을 지속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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