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밥도둑’의 문화문법

요즘은 상추쌈이 제철이다. 새벽에 일어나서 밭에 나가 풀을 베어 멀칭(mulching 바닥덮기 : 작물의 잎이나 줄기, 짚, 기타 유기물이나 폴리에틸렌 필름 등을 지상에 덮어 우적침식(雨滴侵蝕)을 방지하고 토양 수분 보존, 온도조절, 표면 고결 억제, 잡초 방지, 유익한 박테리아의 번식 촉진 등의 효과를 얻는 농법)을 한다. 풀을 뽑거나 베어서 작물 주변을 덮어주면 수분 증발을 막아준다고 해서 시작한 것이다. 작년 겨울에 심은 양파는 가뭄을 이기지 못해 거의 자라지 않았다. 초보 농부의 비애를 느낀다. 그래도 상추와 당귀 등은 가뭄을 극복하고 잘 자라 주어서 아침 저녁으로 식사 때면 즐거움을 준다.

오늘 아침에 상추와 밭작물 등을 사진과 함께 SNS에 올리고 “상추와 당귀가 밥도둑”이라고 적었다. 그랬더니 일본인 친구로부터 바로 질문이 들어왔다. 질문을 그대로 옮겨 본다. “무슨 뜻이에요? 당신의 음식을 도둑 맞았어요?”라고 하였다. 한국인이라면 ‘밥도둑’이라는 표현을 금방 알아듣지만 외국인들은 무슨 말인가 모른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한국의 음식문화를 한국인처럼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화문법을 강의하면서 이런 경우를 자주 접한다. 가장 많이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고무신 바꿔 신다.’라는 말이고, 그 다음으로 즐겨 사용하는 예가 ‘가방 끈이 짧다’는 말이다. 오늘 처음으로 밥도둑에 관한 질문을 받고 이것도 문화문법의 법주에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칼럼으로 쓰기로 했다.

우선 밥도둑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로는 “하릴없이 놀고먹기만 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흔히 건달이니 놈팡이, 양아치 등의 용어로 많이 알려져 있는 말이다. 예문으로는

태호는 삼식에게 밥도둑이라 욕하며 사정없이 매질을 하였다.

그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밥도둑이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지만 꾹 참았다.

와 같다. 이런 경우는 밥을 축내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오늘 필자가 밥도둑이라고 이른 것은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밥도둑의 또 다른 의미는 “입맛을 돋우어 밥을 맛있게 많이 먹게 하는 반찬 종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밥을 많이 먹게 하는 맛있는 반찬을 이른다. 흔히 게장 광고에 많이 쓰인다. 게장 먹을 때 등껍데기(?)에 밥 비벼 먹으면 한 그릇은 금방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의 예를 들면

파김치는 익혀서 신맛이 날 때 밥에 걸쳐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어머니의 간장 게장은 가족들의 반찬 투정을 잠재우는 밥도둑임에 틀림없다.

(고려대학교 <한국어사전> 재인용)

과 같이 쓴다. 파김치나 신김치는 필자에게는 라면을 부르는 라면도둑(?)이다. 고구마에는 신김치나 동치미가 있고, 따끈한 밥에 간장 게장은 두말이 필요없는 밥도둑이다. 이와 같이 입맛을 돋우어 밥을 많이 먹게 하는 반찬을 밥도둑이라고 하는데, 일본인이 그 말의 뜻을 알 수가 없다. 길게 설명하여 답글을 적었는데, 뭘 잘못했는지 글이 사라지고 없어졌다. 아직도 필자에게 SNS는 먼 나라 얘기인가 보다. 그래도 요즘은 챗GPT에 맛을 들여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오늘은 한국어 문법 관련된 것을 질문했는데, 구개음화나 두음법칙에 관한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챗GPT도 아직은 갈 길이 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만간 이러한 것을 모두 극복하고 문화문법과 관련된 어려운 것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아직까지는 AI가 무서운 세상은 아니지만, 곧 지식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될 것은 분명하다. 빅데이터가 문화문법을 극복하는 날이 그날이 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 불을 보듯 훤)하다. 그날이 오기 전에 빨리 문화문법을 알려야 하는데, 갈 길은 멀고 퇴직은 코앞에 다가오고, 오호 애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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