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에 필요한 건 노동조합과 연습생 협의회

[케이팝 다이어리] 열악한 환경에 둘러싸인 케이팝 생태계

이제 케이팝은 한 두 사건으로 정리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존재가 되었다. 케이팝은 한국 대중음악 산업을 대표하는 장르이며, 실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역이다. 온라인 음악 서비스 차트 최상위권은 늘 케이팝으로 채워진다. 케이팝이 아닌 뮤지션의 음악이 인기를 끄는 일이 뉴스가 될 정도다.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2012년만 해도, 다시 일어나기는 쉽지 않았을 거라 여겼던 유튜브 조회수 기록이나 빌보드 차트 진입은 드물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블랙핑크와 BTS를 비롯한 인기 케이팝 뮤지션들의 유튜브 조회수가 얼마나 되고, 그들이 빌보드 차트 몇 위까지 올랐는지 다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새로운 기록이 많아졌다. 지금은 스트레이 키즈, 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비롯한 케이팝 뮤지션들이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케이팝 생태계에서는 인기와 차트 기록 갱신이라는 사건만 벌어지지 않는다. 보이그룹 아스트로의 멤버 문빈은 지난 4월 19일 스스로 세상을 버렸고, 브레이브 걸스는 올해 2월 계약이 연장되지 않으면서 해체할 뻔 했다. 3월 12일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스페인의 매체 <엘 파이스>와 했던 인터뷰도 논란을 일으켰다.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이라는 이름의 가격변동제를 적용하면서 BTS 슈가의 미국 뉴욕주 벨몬트 파크 공연 티켓이 1036달러에 이르렀던 사건도 도마에 오르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화제를 집중시켰던 SM 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의 진행과정 또한 모범적이고 긍정적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물론 케이팝이라고 해서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규모가 큰 영역에는 빛만큼의 그림자가 존재하는 일이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무엇보다 한 사회의 산물은 그 사회로부터 전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케이팝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 승자독식과 각자도생의사회,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사회, 불안과 경쟁이 일상화된 사회, 삶을 갈아 넣어야 겨우 버틸 수 있는 사회, 가부장주의와 남성우월주의가 살아있는 사회라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와 직결된다. 그렇지 않은 사회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케이팝에서 부정적인 사건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하다. 세상의 슬픔과 불행이 케이팝만 피해가기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세상은 케이팝의 문제와 비극은 금세 외면하거나 아예 주목하지 않는다. 초창기의 케이팝에는 그저 청소년들만 좋아하는 뻔한 음악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는데, 최근 케이팝 뮤지션이 해외에서 큰 성과를 거두자 세상은 그들의 성과가 얼마나 대단한지에만 관심을 집중한다. 케이팝에 대한 큰 관심은 수출역군론이나 국뽕 같은 담론과 전혀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케이팝 뮤지션이 세상을 떠날 때만 계약관계의 문제, 혹독한 스케쥴과 폭력적인 관리방식, 성차별적인 시선을 잠시 문제제기 하는 현실이 그 증거다. 케이팝 산업에 종사하는 창작자와 기획자, 마케터를 비롯한 노동자 당사자들이 얼마나 케이팝을 사랑하고 진심을 다해 일하는지 모르지 않지만, 케이팝 생태계는 선진국에 이르렀으나 뮤지션이 처한 현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 시간의 노동과 낮은 출생률을 기록하며 침몰해가는 한국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케이팝을 바라보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시선이다. 케이팝의 흥행과 인기에 열광하면서, 케이팝의 획일적인 어법과 잘못된 운영방식에 침묵하는 언론과 평단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태도가 케이팝의 문제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일조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케이팝을 만드는 창작자들의 노력으로 좋은 음악이 상당수 선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획일적인 음악들이 양산되고 있는데도 이 문제를 이야기 하는 이들은 적다. 오히려 평단의 권위를 앞세워 주례사 비평을 남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케이팝의 성과만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케이팝의 문제에 시선을 돌릴 상식조차 잊게 만들어버린다.

케이팝을 만드는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드러나지 못하는 현실 또한 중요한 문제다. 다행히 케이팝 팬들은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편이지만, 케이팝 뮤지션과 소속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좀처럼 흘러나오지 않는다. 케이팝의 영광은 박진영, 방시혁, 양현석, 이수만이 다 만든 게 아니다. 수많은 연습생들과 아티스트, 노동자들의 피땀눈물이 없었다면 어떤 성과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소수의 리더와 스타에만 주목할 뿐 그 영광을 함께 만든 이들을 외면하기 일쑤다. 실패한 이들이 존재했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화려한 무대를 짊어지고 있음을 보려하지 않는다. 수백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없는 현실은 그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쉽지 않고,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의식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만약 SM엔터테인먼트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이수만의 일방적인 권력이 가능했을까. SM 엔터테인먼트의 사례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고 노동조합이 없어도 될 까닭이 없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연습생들의 목소리 또한 대변할 수 있는 조직까지 존재할 때, 케이팝 생태계는 비로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영역이 되지 않을까. 예술도 산업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 그들을 만들고 조력하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 예술은 다 가짜다.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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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음악 글을 쓰고, 심사하고, 평가하고, 연구하고, 강의하며 산다. 가끔 공연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동안 <밥 딜런, 똑같은 노래는 부르지 않아>, <음악편애>, <누군가에게는 가장 좋은 음악>, <음악열애>, <그렇다고 멈출 수 없다>를 썼다. <대중음악의 이해>, <대중음악 히치하이킹하기>, <인간 신해철과 넥스트시티>는 함께 썼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음반리뷰>,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음반 인터뷰>, <레전드 100 아티스트>, <음악과부도>, <나쁜 장르의 B급 문화>, <한국대중음악명반 100>은 거들었다. 취미는 맛있는 빵과 디저트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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