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희생자와 침략자 같지 않다"…교황 중재안 사실상 거부

전쟁 뒤 처음으로 교황 만나 러시아 규탄 요청…교황청 "평화 위해 기도"

프란치스코 교황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만났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교황에게 러시아를 직접적으로 규탄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또 교황 쪽 중재를 포함해 우크라이나가 제시한 평화안이 아닌 다른 방식의 중재는 불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바티칸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40분가량 만남을 가진 뒤 젤렌스키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수백 만 우크라이나인들의 비극에 대한 교황의 개인적 관심에 감사를 표한다"고 밝히고 교황에게 러시아 쪽이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러시아로 강제로 끌고 가고 있는 문제를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아동 불법 이주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지난 2월 발간된 미 예일대 공중보건대학원 인도주의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로 강제 이주된 우크라이나 어린이 규모는 최소 6000명에 이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만남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르고 있는 범죄를 규탄해 달라고 요청했다. 왜냐하면 희생자와 침략자가 같은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정의로운 평화를 달성할 유일한 평화적 방법인 우크라이나 평화 공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실행에 동참해 달라고 제안했다"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러시아군 철수·우크라이나 영토 회복·전쟁 범죄 기소 등을 골자로 한 10개 평화 공식을 제시한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러 차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촉구했지만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 비판은 피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그는 지난해 이탈리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촉발된 것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확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발언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교황청 쪽은 회담 뒤 두 사람이 "진행 중인 전쟁의 인도주의적·정치적 상황에 대해 논의"했고 교황이 평화를 위해 "끊임 없이 기도"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말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 중재 관련해 바티칸이 진행 중인 임무가 있다고 말했지만 <뉴욕타임스>(NYT)를 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13일 이탈리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교황이 우크라이나 전쟁 중재자가 될 수 있냐'는 질문에 우크라이나는 중재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과의 중재는 가능하지 않다"며 악의적 행동을 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대화는 의미가 없으며 전장에서의 승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가톨릭이 아닌 정교회 신자가 대부분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13일(현지시각) 바티칸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처음으로 만났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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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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