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서울서 수류탄 폭발로 거리에 버려져 입양됐다구요?

[372명 해외입양인들의 진실 찾기] (27) 해외입양 결정은 어떻게 이뤄지나

"이 아기는 많이 운다."

나의 입양 파일에 있는 몇 안 되는 문서와 희미한 정보 속에서, 이 문장은 매우 놀라웠습니다. 

나는 내 이야기가 1980년 3월 18일 화요일에 시작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생후 3개월 무렵 서울의 어느 거리에서 홀로 발견되었습니다. 수류탄 폭발로 심하게 다쳐서 봉합수술을 받았고 왼쪽 엉덩이에 그 흉터가 남아있습니다. 그 당시 나를 발견한 사람은 나를 인천의 한 고아원으로 보냈고, 노르웨이로 입양되기 전까지 그 곳에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잠깐... 내가 혼자 발견되었다고? 1980년대 초반에 길거리 한복판에서 수류탄 공격을 받은 아기를 누군가 그냥 데리고 갔다고? 다친 아기를 그 먼 곳에 있는 고아원으로 보냈다고? 이 이야기는 내게 해답보다는 더 많은 의문을 불러와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고, 내가 들은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내 입양 파일을 살펴보았습니다.

나의 기록상의 행적은 같은 날 시작되지만, 서류에 의하면 나는 그날 인천시 북구청에서 인천에 있는 고아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그 이전의 기록은 없었으며, 그 이후 4개월간의 기록도 전무합니다. 수류탄 폭발에 대한 진술이나 내 몸에 있는 흉터를 치료한 기록도 없습니다.

내 삶이 처음으로 기록된 지 4개월 후, 나는 입양기관에 입소하게 됩니다. 입양기관에서 준 정보는 일반적인 진술만 있을 뿐 간략했습니다. 두 장의 흑백사진만 서류에 붙어있었습니다. 사진 속의 나는 얼어붙은 눈동자로 겁먹은 채 스스로를 달래려고 입에 손가락을 물고 있습니다. 몇 달 뒤 영원히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 얼굴이 고스란히 사진에 담겼습니다.

▲멜비 씨의 입양서류에 붙어 있는 사진 ⓒ필자 제공

나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엄청난 가정이 필요합니다.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에 대해 믿을만하고 객관적인 문서나 판단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괴롭습니다.

국제입양은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깨뜨립니다. 대부분의 경우 문화와 종교, 언어를 빼앗깁니다. 내게 익숙했던 모든 것을 끊어내는 이 결정은, 내가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고 의견을 말하지 못하던 바로 그 때, 타인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결정은 신뢰할 수 있어야하며 철저한 검증을 통해 문서화된 사실을 근거로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누가, 언제, 어디에서 날 발견했는지 모릅니다. 나의 가족에 관해서나, 나의 가족을 찾기 위한 노력은 있었는지, 혹은 나를 도우려는 사람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모릅니다. 나는 생후 몇주 사이에 다쳤던 것 같은데, 사고의 경위나 처치에 관한 정보도 전무합니다. 국제입양이 내게 이로웠고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도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실상은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마법처럼 입양 장면에 들어와 한국 밖으로 보내진 것입니다.

내가 버려진 아이라서 가치가 없는 사람처럼 여겨져 여전히 슬픕니다.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나이, 인종,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인권을 가지고 있음을 느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인간이기에 가진 권리입니다. 그러나 권리는 충족이 불가능하거나, 충족할 수 있는 안전한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가치가 없습니다. 아기와 어린이들은 자신의 권리와 필요를 충족하려면 타인에게 완전히 의존해야하므로 특히 취약합니다. 때문에 어린이와 함께, 또는 어린이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인권에 대해서 알아야하며, 나아가 이런 권리에 수반되는 일들을 일상 업무에 적용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알고 가족에게 속하는 것은 단지 인권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하는데 중요한 구성 요소입니다. 나를 아기로 묘사한 짧은 문장. 바로 그 문장이 저를 강타했습니다. 그 문장은 나의 본질의 일부, 익숙한 무언가를 부여잡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무언가를 말입니다. 의미 없는 문장들과 단어의 나열 속에서 이 문장은 내게 접촉점이 되었습니다. 단 한 줄이 한국과 노르웨이를 논리적으로 연결시켰습니다.

이 짧은 한 문장이 내가 가진 전부입니다. 나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시킬 수 있도록 뭐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있지는 않을까 궁금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을 테지만,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에게는 아주 하찮은 정보조차 큰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한국이 입양의 역사를 용기 있게 직면하여, 입양인이 자신의 역사를 진실 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기를 희망합니다.

이 글을 쓴 멜비 씨는 노르웨이에서 변호사이자 아동 권리를 위해 일하고 있다. 2022년 9월, 283명의 해외입양인들이 진실화해위원회에 입양될 당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조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 11월 15일, 12월9일 두 차례에 걸쳐 추가로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372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권위주의 시기에 한국에서 덴마크와 전세계로 입양된 해외입양인의 입양과정에서 인권 침해 여부와 그 과정에서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다행히 진실화해위는 12월 8일 '해외 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조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이는 한국이 해외입양을 시작한지 68년만의 첫 정부 차원의 조사 결정이다. <프레시안>은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요청한 해외입양인들의 글을 지속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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