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데 왜 몸에 불 질렀냐고? 경찰이 형을 쫓아다니다시피 했다"

[인터뷰] 분신한 건설노동자의 동료, 박석용 강원건설지부 조직부장

"'건폭' 프레임이 덧씌워지기 전 건설노조와 전문건설업체는 교섭을 통해서 채용 조건을 협상했다. 존댓말을 사용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교섭이 진행됐다. 하지만 정부가 우리를 '건폭'이라고 지칭하며 척결해야 할 대상처럼 만들자 업체들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일단 교섭 자체를 피했다. 교섭에 응하더라도 이전 교섭에는 등장할 수 없었던 일명 '오야지' 불법 하도급 업체도 함께 들어왔다. 우리가 (오야지를 통한 채용은) '불법 고용이지 않냐'고 지적하면 '그걸 왜 너희가 신경 써. 억울하면 대통령한테 가서 따져'라고 말했다. 정작 현장에서 불법을 떳떳하게 저지르는 이들은 따로 있다. 왜 정부가 우리에게만 가혹한지 모르겠다."

'건폭'이라는 신조어는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의 입에서 처음 나왔다. 당시 윤 대통령은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 단속해 건설 현장에서 법치를 확고히 세우라"며 마치 조직폭력배를 연상케하듯 "뿌리뽑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대통령은 "노조가 불법 행위를 하는데 기업이 방치한다면 그런 기업에 혜택을 줄 필요가 있느냐"고 건설노조를 고용하는 기업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식의 엄포까지 내리며 '건폭몰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경찰은 대대적인 1계급 특별승진 포상을 내걸었다. '건폭' 특별단속에 성과를 낸 경찰관 50명을 특진시키겠다고 밝혔다. 단일 수사 부문 중 가장 많은 인원이다. 전세사기 특별단속에 30명, 보이스피싱 수사에 25명보다 이례적으로 많은 수의 특진을 예고했다. 지휘부의 독려에 따라 경찰은 움직였다. 건설노조를 상대로 전방위적인 압수수색과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결국 노동자의날인 5월 1일, 강원도 건설 현장에서 활동하던 건설노조 조합원 양회동 씨가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사망한 노동자는 유서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왜 '공갈 협박'이냐는 것이었다.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에서 강원‧고성‧양양 지역을 담당한 지대장이었던 양 씨는 생전에 어떤 일을 했기에 죽음으로서 억울함을 호소했던 것일까.

11일 <프레시안>은 고인이 된 양 씨와 강원도 지역 교섭에 동행하며 함께 일했던 박석용 강원건설지부 조직부장을 고인의 빈소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인근에서 만났다. 박 조직부장은 "우리같은 건설노동자들은 매일을 떠돌아다닌다. 현장에 따라 경기도에서 부산으로 갈 수 도 있고, 나주에서 강원도에도 갈 수도 있고 현장을 찾아 떠돌아야 한다. 떠돌아다니기 싫어서 노동조합에 들어왔고 회동이형을 만났다. 형과 나는 강원도 강릉, 속초, 고성, 양양의 소규모 건설현장을 찾아다니며 교섭을 해왔다"고 말했다.

▲11일 <프레시안>은 고인이 된 양 씨와 강원도 지역 교섭에 동행하며 함께 일했던 박석용 강원건설지부 조직부장을 고인의 빈소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인근에서 만났다. ⓒ프레시안(박정연)

분신한 건설노동자는 조합원 채용을 왜 요구 했을까

현장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건설노동자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건설노동자들의 고용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대다수가 일용직인 건설노동자의 고용 구조는 매우 복잡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다. 이들은 짧게는 몇 주, 길면 6~7개월 이상의 일을 계약하고 이 기간을 마치면 또 다른 일을 찾아나서야 한다. 이마저도 공정팀의 성격에 따라 이 기간 동안 매일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양 씨가 맡았던 철근팀 노동자들의 경우 한 달 중 25일을 지속적으로 일하려면 2~3개의 현장을 병행해야 했다.

합법적인 경로라면 건설현장은 '발주처 → 원청건설사(종합건설업체) → 하청건설사(전문건설업체) → 건설노동자'로 이어져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건설노동자로 내려오기까지 더 많은 단계들이 존재한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9조(건설공사의 하도급 제한)에 따라 하청업체 이하의 또다른 하도급은 제한되나, 현실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불법하도급이 자행되고 있다.

중개업자로 불리는 '유령', '시다오께'와 도급팀장인 '오야지'가 대표적인 불법 하도급 사례다. 과거 임금지급 방식은 회사가 작업 구역을 정해주고 노동자가 해당 구역을 완공하면 약정된 금액을 노동자 대신 오야지에게 전부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오야지가 회사와 노동자 사이에서 금액을 팀원들에게 분배했다. 이 때문에 임금지급 권한을 가진 오야지가 현장에서는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게 되었다. 오야지가 노동자 임금을 갈취하거나 '갑질' 등 인권침해를 한 배경이다. 현장에서 오야지가 소개비 명목으로 임금의 10퍼센트(%)를 떼어가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전했다.

불법이 만연한 현실에서 건설노조의 조합원 채용 요구는 불법 하도급을 대신해 일감을 고정적으로 유지할 합법적 통로다. 노조는 직업안정법 제33조(근로자공급사업)에 따라 근로자공급사업의 주체로서 활동할 수 있다. 양 씨가 건설노조에서 맡았던 업무도 조합원 채용 요구였다. 양 씨는 3지대(강원도 강릉, 속초, 고성, 양양)에 속한 120여 조합원들의 채용을 위해 건설현장을 찾아 다녔다. 박 조직부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양회동) 형은 건설노조에 들어오기 전 철근 도급일을 했다. 그때 저가 수주 경쟁에 자괴감을 느꼈다고 했다. 철근은 무게로 임금을 따지는 구조인데 예를 들어 톤당 36만 원, 이런 식으로 단가를 책정한다. 다른 오야지가 5000원을 깎으면 또 1만 원을 깎고, 결국 점점 더 싸게 부르는 경쟁이 된다. 그래도 돈은 남겠지 하고 간 현장에서 몸은 몸대로 축나고 적자를 보는 상황이 발생한다. 형은 현장의 부조리한 구조를 안타까워했다. 그러다 건설노조에 들어와서 합법적 교섭을 통해 일을 하니 '사람답게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11일 <프레시안>은 고인이 된 양 씨와 강원도 지역 교섭에 동행하며 함께 일했던 박석용 강원건설지부 조직부장을 고인의 빈소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인근에서 만났다. ⓒ프레시안(박정연)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교섭을 진행했다" 고인의 처벌불원서 써준 현장소장들

양 씨가 속한 3지대(강릉, 속초, 고성, 양양)는 권역은 넓고 일 할 현장은 없었다. 아파트와 같은 대규모 시설이 들어설 일이 적기 때문에 바닷가 근처의 생활용 숙박시설의 한 동짜리 건물을 짓는 소규모 건설 현장이 대부분이었다. 교섭을 위해 운행해야 하는 거리가 100킬로미터(㎞)는 우습게 넘었다고 한다. 그래도 양 씨는 조합원들의 채용을 위해 교섭에 최선을 다했다. 양 씨가 맡은 철근팀은 떠돌아다니면서 작업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양 씨는 조합원들에게 '저녁에 가족들과 밥을 같이 먹는 삶을 공유해주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박 조직부장은 전했다.

박 조직부장은 "대통령의 '건폭' 발언 이전의 교섭 현장에서는 우리가 약속을 잡고 현장을 방문하면 전문건설업체의 결정권자와 인사를 나누고 존댓말로 서로 정중하게 교섭을 진행했다. 서로 요구하는 조건이 다를 경우 타협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납득시키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언성이 올라가기도 하지만 욕설을 하거나 위협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왜냐하면 불쾌한 협상을 하면 현장에서 조합원들에게 어떻게든 불이익이 갈 수 있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교섭을 진행했다"고 교섭이 진행되는 분위기를 설명했다.

인건비가 저렴한 외국인 노동자보다 지역주민을 채용하고 싶은 전문건설업체들을 위해 원청을 압박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조력자로서 노조가 기능하기도 했다. 박 조직부장은 "오히려 전문건설업체 소장과 관계자들은 집회를 해서 원청을 압박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하청이 지역주민이고 내국인인 건설노조 조합원을 채용하고 싶지만 공사 금액자체가 적으니 집회를 하면 원청사가 압박을 느끼지 않겠냐는 얘기였다. 집회 시점과 종료 시점까지 전문건설업체 소장과 합의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강원지역 건설업체 관계자들은 양 씨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처벌불원서를 써주기도 했다. 한 현장소장은 자필로 작성한 처벌불원서에 "지역민을 채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경비손실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기에, 일일이 근로자를 만나는 번거로움보다 이미 검증된 지역민을 (노조를 통해) 채용한 것"이라며 "간부들을 구속하거나 형사처벌해 건설 현장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경찰이 '갈취'라고 주장하는 노조 전임비에 대해서 한 소장은 "노조전임자가 조합원들 근무를 관리해주고 회사와 근로자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노조 전임비도 문제없이 지급했다"며 "인력투입 과정에서 집회를 한 사실은 있으나 그로 인해 겁을 먹거나 업무가 방해된 사실은 없다"고도 강조했다. 이른바 '건폭의 갈취' 논란은 경찰이 현장의 사정을 모르고 일방적으로 갖다붙인 프레임이었다는 얘기다. 

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는 "단체협약에 전임비라고 하는 유급 근로시간 면제에 관한 조항이 있고, 복지비에 관한 조항이 있다"며 "(경찰이) 팀장 급여는 무노동임금이라고 하는데 그게 싫다면 건설업체가 직접 관리인원을 채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를 고려한 노조 전임비는 정당한 임금이라고 권 변호사는 설명했다.

8살 어린 동료에게도 말 놓지 않던 고인 "강요하고 협박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건폭' 발언 이후 교섭 상황은 180도 변했다. 박 조직부장은 "일단 전문건설업체의 책임자가 전화를 회피하며 만나주지를 않았다. 교섭을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어쩌다 만나서 '왜 전화를 안받으시냐'고 하면 이제는 반말로 '왜 내가 받아야 하는데?'라고 하는 분도 생겼다. 교섭에 들어가더라도 이전에는 교섭테이블에 나오지 못했던 불법하도급자인 오야지가 들어와서 '너네 못 쓴다'고 대놓고 말하는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

양 씨와 박 조직부장이 '오야지'를 통한 채용은 불법이라고 지적하자 "억울하면 대통령한테 가서 따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박 조직부장은 "우리가 (오야지를 통한 채용은) '불법 고용이지 않냐'고 지적하면 '그걸 왜 너희가 신경 써. 억울하면 대통령한테 가서 따져', '우리도 돈 좀 벌어보자'고 하는 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박 조직부장은 "전문걸업체에 찾아가 '사장님 안녕하세요. 민주노총입니다'라고 했는데 쳐다보지도 않아서 형이 계속 서있었던 적도 있었다. '야 나가', '거지같은 것들'이런 말들도 들었다. 굴욕적이었고 엄청난 스트레스였다"고 말했다.

교섭이 어려워지자 양 씨가 택한 방법은 경찰이 말한 '공갈'이 아닌 '읍소'였다. 양 씨는 현장을 돌아다니며 만난 전문건설업체 관계자에게 "(우리 조합원이) 지역주민이니까 제발 좀 써주세요", "형들 좀 써주면 안되나요"라며 사정을 하고 다녔다. 탄압이 시작된 후 그가 속한 3지대 120여명 중 일하는 조합원은 35명, 일거리가 없어 일하지 못하는 조합원은 85여명에 달했다.

51살인 양 씨는 8살 어린 박 조직부장에게도 말을 놓지 않는 사람이었다. 박 조직부장은 "내가 8살 어렸는데도 형은 '노조 조직관계에 있지 않느냐'며 말을 안 놨다. 술을 먹고 깊은 이야기를 할 때는 '석용아'하면서 말을 놨다가 바로 다시 존대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형은 '민주노총이 평등해서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명감이 생긴 것 같다. 돌아 보면 지대장이라는 책임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형은 설득하고 읍소하는 스타일이지 강요하고 협박하지 않았다. 절대 못그런다"며 "정작 현장에서 불법을 떳떳하게 저지르는 이들은 따로 있다. 왜 우리에게만 가혹한지 모르겠다"고 개탄했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부 간부 양회동씨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죄가 없는데 왜 몸에 불을 질렀냐고 한다 경찰이 형을 쫓아다니다시피 했다"

경찰에 의해 노조활동에 '공동 공갈' 혐의가 적용되자, 양 씨는 치욕스러움을 느꼈다. 결국 그는 노동자의날인 지난 1일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그는 유서에 "정당한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니,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다"며 "끈질기게 투쟁하며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데 혼자 편한 선택을 한 지 모르겠다"고 썼다.

양 씨는 분신 직전까지도 3지대 조합원들을 걱정하며 함께 채용 교섭을 다니던 박 조직부장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박 조직부장은 "회동이 형이 분신 전 건설노조 강원지부 팀장들 소통방에 유서를 직접 올렸다. 그걸 읽고 있는데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디세요 형님' 하니까 '법원입니다'라고 했다. '형님 지금 뭐하세요'라고 하니 '도저히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안될 것 같아요. 부장님 미안해요'라고 했다. 그래서 전화기를 잡고 정신차리라고 막 소리를 쳤다. 그랬더니 회동이형이 '석용아 미안해'하더니 전화가 끊겼다"고 했다.

박 조직부장은 경찰의 수사가 '표적수사'나 다름없었다고 주장했다. 양 씨가 교섭을 위해 방문한 사업장에,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경찰이 뒤이어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박 조직부장은 "사람들은 죄가 없으면 떳떳하게 조사를 받지 왜 몸에 불을 질렀냐고 말을 한다. 하지만 경찰의 압박이 엄청났다. 회동이형이 교섭하고 난 뒤, 바로 30분 뒤에 경찰이 교섭장에 들어왔다. 경찰이 형을 쫓아다니다시피 했다. 형은 누가 자신을 도청하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불안해했다"고 전했다. 경찰의 압박이 양 씨를 죽음으로 몰아간 기폭제였다. 

박 조직부장은 윤 대통령의 '건폭' 프레임과 노동 탄압이 노조활동에 '공포'를 조장하려는 시도 같다고 지적했다. 박 조직부장은 "(정부가) 노조를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넣는 것 같다"며 "하지만 이번 열사의 분신 사건으로 징이 울리듯 천천히, 보수적인 강원도에서도 대중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부탁했다. 그는 "저희는 열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대통령의 사과를 받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 "조합원들에게 최소한 저녁 있는 삶을 선물해주고 싶다고 했던 양회동 열사를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4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한강대로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관계자 등이 정부규탄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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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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