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들은 '살기 위해' 서울에 모인다

[인권학의 프런티어] 5월, 성소수자도 마음껏 사랑하라

봄빛 선연한 5월, 바야흐로 사랑에 물든 계절이다. 가족, 연인, 친구에게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는 각종 이벤트가 곳곳에 한창이다. 비단 요즘뿐 인가. 사실 사랑은 대중문화의 오랜 단골 소재였다. 로맨스 빠진 콘텐츠는 드물다. 최근엔 짝을 찾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다. 연예 기사에서는 유명인 이름 옆에 '♥'표시를 붙여 그의 연인을 함께 언급한다.

그런데 이러한 로맨스가 허상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사회학자들은 그동안 진지하게 사랑을 연구해왔다.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현대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2003)에서 '낭만적 사랑'의 기원을 설명한다.

때는 18세기 초, 잉글랜드에 부르주아가 등장한다. 동시에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결혼 풍습도 변했다. 친족 관계, 경제적 이해관계를 고려하던 전근대적 결혼 양식은 점차 쇠퇴하고, 상대방의 성격이 결혼 결정의 핵심 요건이 됐다. 근대적 결혼은 상대방의 인격, 즉 도덕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로 변화했다. 그렇다. 낭만적 사랑은 근대 자본주의에서 시작되고 개인주의로부터 만들어진 사회적 산물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연애 감정을 취급하는 방식 또한 사회·문화적 구조에 영향받는다는 점이다. 만일 사회의 가치관이 변화한다면 사랑의 모습 또한 얼마든지 다양하게 변할 수 있다. 현재 내가 추구하는 사랑의 모습이 일시적이고 단편적일 수 있다는 의미다.

▲시민사회엔 "사랑이 이긴다"는 구호가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 등 성소수자 인권 운동 현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구호다. 그들의 사랑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인정 받지 못했다. 사회가 변했지만, 여전히 일부 세력들은 그들의 사랑에 '반대'를 외치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누군가의 사랑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인 보호장치로 꼽힌다. ⓒ프레시안(한예섭)

사랑한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있다

타인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거나 폭력적 상황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있다. 때때로 이들은 곤란한 상황을 피하려 일상 속에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감추기도 한다. 섹슈얼리티와 사랑에 대한 통념이 전보다 많이 변화했지만, 이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아직도 굳건하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반대에 부딪힌 주된 이유는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과 관련돼 있다. 최근의 인권조례 폐지 요구에도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반영돼 있다.

확성기로 외치는 욕설, 현수막에 써 붙인 비하 표현만을 혐오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혐오와 차별은 우리가 일반적이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상 속에 더 많이 존재한다. 고의적이고 조직적인 혐오보다 이러한 '보통의 차별'이 소수자에게는 더욱 어렵게 다가온다.

성소수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차별을 겪고 있을까. 2022년 성소수자 인권단체 '다움'은 19세부터 34세의 청년 성소수자 3911명의 삶을 조사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실시된 성소수자 관련 조사 규모 중 가장 크다. 적극적으로 조사에 임한 참여자도 많았다. 그만큼 사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뜻일 테다.

먼저 성소수자들이 가장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특히 직장에서 정체성이 들키지 않도록 조심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폭력이나 위협에 처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한편 이들이 진정 인정받고 싶은 부분 또한 정체성이었다. 응답자의 88.2%는 자신의 정체성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응답자의 33.6%는 최근 1년간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트렌스젠더의 경우 화장실, 탈의실뿐만 아니라 신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많은 차별을 겪었다. 실제 트렌스 여성은 구직과정에서 성정체성을 이유로 입사취소, 채용거부를 가장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확인됐다. 조사에 따르면 당해 기준 지난 5년 간 구직 경험이 있는 트랜스젠더 중 57.1%는 본인의 정체성과 관련해 직장 지원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편집자.)

성별이 다른 유니폼을 착용해야 하거나 병적증명서, 주민등록초본 등 성별이 포함된 서류를 제출해야 할 때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난 성별정체성을 가진 사람), 젠더퀴어(성별범주를 거부하거나 벗어나 성별정체성을 가지는 것) 또한 곤란함을 느꼈다. HIV감염인일 경우 감염사실로 인해 고용차별을 겪거나 자신의 병력이 주변에 알려질까 크게 우려했다.

이렇듯 직장과 관련해 느끼는 공포가 제일 큰데도 직장 내 성소수자 관련 제도는 거의 없었다. 실제 취업자 중 26.8%는 '직장에서 심각한 차별을 당했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다수의 참여자들이 직장에서 커밍아웃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하루속히 조성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혹시 특정 성정체성에 따라 고용 상황이 다르지는 않을까? 조사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트랜스여성이 가장 열악한 상황에서 노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랜스여성은 상대적으로 다른 성소수자보다 임시직 및 시간제로 고용되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주휴수당이나 최저시급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정신적 스트레스도 상당했다. 조사 참여자의 37.6%가 최근 1년간 정신과를 방문한 경험이 있었고, 그중 30.8%는 약물을 처방받아 복용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우울감의 정도를 물어보니 두 명 중 한 명꼴로 최근 일주일 동안 우울 증상을 겪었다고 말했다. 특히 트랜스여성의 경우 가장 높은 우울 증상을 호소했다. 전체 참여자 중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사람은 무려 41.5%에 달했다.

위의 조사 결과는 청년 성소수자가 처해있는 열악한 현실을 보여준다. 성소수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보살필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성소수자 추모제 Kiss & Cry(키스 앤드 크라이). 추모 공간의 정중앙에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들을 추모하는 의미의 무지개 영정이 놓였다. ⓒ프레시안(조성은)

서울에 모이는 성소수자들? 그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 커뮤니티

조사 참여자들에게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지 물었다. '안 좋다'는 응답이 97%에 육박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발원지는 어디일까? 참여자들은 종교 단체의 조직적인 반대와 미디어의 부정적 보도가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만들었다고 봤다.

성소수자와 관련된 정책 공백과 혐오 속에서 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준 것은 자생적 커뮤니티였다. 성소수자들은 온·오프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성소수자의 도시 이주 경향은 높아지고 있다. 도시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커뮤니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도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적 조치를 비교적 빠르게 받을 수 있고, 익명성이 보장되며, 성소수자 관련 인프라와 행사가 많은 서울에 거주하는 것은 정체성을 공격받지 않기 위한 이들의 생존 전략이었다.

진정한 사랑과 연대는 다양성을 존중할 때 가능하다

낭만적 사랑이 가진 약점이 있다. 상대방에게 이상적·도덕적인 모습을 계속 요구하여 관계가 저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든스는 '합류적 사랑(confluent love)'을 제안한다. 합류적 사랑은 두 사람의 정체성이 서로 다른 기반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협상해가는 사랑의 방법이다.

그런데 이는 비단 사적인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공적이고 사회적인 수준에서도 각자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존중할 때 진정한 사랑, 즉 사회적 유대가 만들어질 수 있다.

사회도 살아있는 것이라 시간이 흐르면 변화한다. 따라서 이전엔 당연하던 것이 이제는 차별이 될 수 있다. 다가오는 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이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거리낌 없이 표현해도 되는 세상, 누군가를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자, 이제는 보통의 차별과 이별한 성숙한 사회가 되었음을 제도로써 공표할 때가 되었다.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다양성 존중의 초석을 세워야 할 때다.

▲시민사회 연대체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해 4~5월 동안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건강악화로 단식을 중단하기 전까지, 전국 4명의 활동가들이 식사를 거른 날들의 총합은 123일에 이른다.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은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에 대해 끝내 답하지 않았고,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사진은 지난해 5월 26일, 단식농성 중단 기자회견에서 마지막 발언에 나선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 ⓒ프레시안(한예섭)

※ 본 연재에서는 한국인권학회·인권법학회에서 다뤄지는 주요 인권 담론을 소개합니다. 본문에 언급된 학술논의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인권자료> 정성조 (2023). “성소수자 차별과 욕구들.” 한국인권학회 제25차 월례포럼.

[다움. 2022. “나 같은 사람이 혼자가 아니구나: 2021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다운로드 링크

https://dawoom-t4c.tistory.com/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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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한국인권학회 이사. (현)환경사회학회 연구이사. (현)한국인권학회 편집간사. 사회학 박사로 유튜브 '눈맑은기린'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2022년 성공회대에서 「환경문제의 인권적 전환: 충남 서북부 환경취약지역 주민을 중심으로」라는 연구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관심 연구분야는 인권사회학, 인권 및 환경문제의 해결방안, 시민운동과 민주주의 등이다. 주요 연구성과로는 '시민단체 활동가의 활동경험에 대한 연구: 대전지역 시민단체 사례를 중심으로(2018)', '은평구 노인인권실태조사 및 중점과제연구: 재가노인을 중심으로(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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