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역사는 사과 필요없다? 오키나와에 새겨진 기록들

[화보] 미군 전진기지 오키나와 현지에는…

21세기 세계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화로 미·일·유럽 대 러시아·중국·북한 간의 신냉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세계질서가 격변하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균형 있는 외교'를 던져버리고 미·일과의 동맹 강화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동원에 대한 손해배상 요구를 일방적으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고 "100년 전 일어난 일 때문에 일본에 사과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 같은 정세 속에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가 태평양전쟁의 최후의 격전지로서 수많은 한인이 징병자, 징용자, 성노예 등으로 끌려와 최대 1만 명이 희생당한 곳이자 대(對) 중국 전진기지로써 미국의 새로운 미군기지 건설에 주민들과 평화운동가들이 처절한 저항운동을 벌이고 있는 일본 오키나와를 다녀왔다. 손 교수가 현지에서 포착한 사진들을 화보로 싣는다. 편집자

오키나와현립박물관

▲ '일본의 제주도'라고 할수 있는 오키나와는 일찍이 본토에 복속된 제주도와 달리 독립된 왕국을 유지하다 1870년대 일본에 복속됐는데, 류쿠왕국이 조선반도, 일본, 중국과의 역사적 관계를 잘 정리해 놓았다. ⓒ손호철
▲ 중국, 일본 등 인근국과의 교류를 설명한 지도 ⓒ손호철
▲ 청일전쟁으로부터 태평양전쟁 기간에 대한 설명 ⓒ손호철
▲ 2차대전 후 오키나와 역사를 설명한 도표 ⓒ손호철
▲ 미군의 태평양 방어의 핵심으로 변모한 오키나와에 대한 설명 ⓒ손호철

오키나와평화기념공원

▲ 오키나와 동남쪽에 위치한 오키나와평화기념공원에 세워진 한국인위령탑공원. 서승 교수 등에 따르면, 오키나와에 징병자, 징용자(군소속 노역자인 군부) 성노예로 끌려와 희생된 한국인은 최대 1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손호철
▲ 한국인위령탑. 이 공원에 한국 국적 231명, 북한 국적 82명 등 460여 명의 조선인이 묻혀있다고 한다. ⓒ손호철
▲ 1975년 세운 이 탑에는 '대통령 박정희'라고 쓰여 있고 헌시 역시 이승만, 박정희를 찬양한 대표적인 어용문인인 이은상이 썼다. 일제 말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쓰고 일본장교로 친일에 앞장선 박정희가 일제에 희생된 혼령을 기린다니 역사을 우롱하고 있는 것이다. ⓒ손호철
▲ 오키나와평화기념당안에 있는 거대한 평화의 부처상. 오키나와 출신으로 오키나와 전투에서 두 아들을 잃은 화가가 72세 나이에 시작해 90세에 완성한 대작이다. 건설비용은 초등학생까지 주민들이 모금해 마련했고 작가는 작업 중 높은 곳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으나 고령에도 곧 회복해 불상을 완성했다. ⓒ손호철

요미탄손

▲오키나와 중서부의 주요도시인 요미탄손의 한적한 언덕에는 오키나와에서 쓰러진 한인들을 추모하는 '한의 비'가 세워져 있다. 한의 비라는 이름이 너무 아프게 가슴에 다가오며 100년 전 역사로 일본이 사과할 필요없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 이곳에 누은 한많은 희생자들이 어떤 생각이 들까 하는 부끄러움이 들었다. ⓒ손호철
▲ 한의 비 ⓒ손호철
▲ 개머리판을 휘두르는 일본군의 강압으로 눈을 가린 채 앞으로 나아가는 한인의 다리를 어머니가 잡고 울고있는 조각이 보는 이의 심경을 찡하게 한다. ⓒ손호철
▲ 한의 비 앞에서 묵념하는 손호철 교수 ⓒ손호철
▲ 조선인들이 끌려와 건설했던 옛 일본군 비행장 ⓒ손호철
▲ 이 비행장은 2차대전 종전 후 미군이 접수했지만 주인들이 반환투쟁을 벌여 결국 반환받았다. 이 과정을 전시해놓은 야외 전시물과 반환 기념비 ⓒ손호철
▲ 요미탄손 중심가에 세워진 '전쟁포기선언비'와 '전쟁포기서약'. 이 비석은 최근의 일본의 재무장화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손호철
▲ 요미탄손 마을센터에 설치되어 있는 일본 헌법 9조(전쟁의 포기).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이에 대한 개헌을 추진하다 암살됐지만 자민당은 여전히 적극적으로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손호철
▲ 비핵선언 비 ⓒ손호철

사키마미술관

▲ 사키마미술관은 미 해병대 후텐마기지 경계에 세워진 미술관으로,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땅이 미군에 수용되자 그 보상금으로 평화와 전쟁 고발에 대한 작품을 사 모아 전시하는 평화미술관이다. 특히 오키나와 전투와 원폭 학살에 대한 그림을 그린 마루키 이리와 마루키 토시 부부 작품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손호철
▲ 구미도의 학살. 마루키 이리와 마루키 토시 ⓒ손호철
▲ 오키나와 전투 요미탄손 3부작. 마루키 이리와 마루키 토시 ⓒ손호철
▲ 미술관의 명물인 야외 옥상 23계단. 오키나와 전투가 끝난 1945년 6월 23일을 기려 23계단을 만들었고 매년 6월 23일 일몰에는 상단에 만들어 놓은 구멍으로 해가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손호철
▲ 23계단에서 내려다보면 미술관을 포위하고 있는 후텐마 기지가 끝없이 펼처져 미국에 포위되어 있는 오키나와의 신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손호철

헤노코 미군기지

▲ 미국이 대(對)중국 전진기지로 후텐마 기지를 대신해 오키나와 중동부에 위치한 작은 어촌마을 헤노코에 바다를 매립해 건설 중인 헤노코 미군기지. 아래 사진의 철조망 안쪽에 건설장비들이 보이는데, 여러 면에서 제주도 강정을 닮았다. ⓒ손호철
▲ '오키나와를 다시 전장으로 만들지 마라', '미군은 나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미군기지 건설 반대시위를 하고 있는 지역주민들과 평화운동가들 ⓒ손호철
▲ '헌법9조 개악저지. 핵배치를 멈춰라', '오키나와로부터 미군은 나가라', '오키나와로 다시 전장으로 만드는 것을 허용하지 마라! 진정으로 평화외교를 행하라' 등의 펼침막들 ⓒ손호철
▲ 연좌농성 3214일이라는 숫자가 아프게 다기온다. ⓒ손호철
▲ 신기지 건설 반대 농성장의 풍경 ⓒ손호철
▲ 여러 구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류쿠독립'이다. 한 농성자에게 묻자 "일본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이익을 도외시하고 미국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미국의 식민지이고 오키나와는 일본의 식민지라는 점에서 오키나와는 이중의 식민지 상태"라면서 "류쿠가 1870년 일본에 의해 식민지화되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류쿠독립이 진정한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독립된 류쿠는 류쿠 원주민들이 주인이 되고 인권주의에 기초한 입헌공화국이며 비핵, 비무장, 비전쟁국가를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호철
▲ 오키나와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그림으로 표현한 헤노코마을의 '성조기의 벽' ⓒ손호철
▲ 헤노코마을 평화공원에 있는 평화의 탑. 탑 뒤 왼쪽 끝으로 보이는 헤노코 기지 건설현장이 평화라는 글씨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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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화가를 꿈꾸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로 진학했다. 독재에 맞서다 제적, 투옥, 강제 징집을 거쳐 8년 만에 졸업했다. 어렵게 기자가 됐지만, '1980년 광주 학살'에 저항하다 유학을 갔고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일하며 진보적 학술 활동과 사회운동을 펼쳐왔다. <국가와 민주주의>, <한국과 한국 정치>,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등 이론서와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레드 로드-대장정 13800KM 중국을 보다> 등 역사 기행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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