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는 나의 닻이고 돛이며 덫이다."
21일 김해수로문학회 초청 나희덕 시인 북콘서트에서 한 말이다.
나 시인은 "김해에 여러번 왔었다"며 "김해외국어 고등학교도 왔었고 여기 김해도서관에도 예전에 한번 왔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의 시(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서 참 기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시인라고 하면 굉장히 좀 심각하고 우울하고 그런 거로 생각할텐데, 저는 비교적 생활인으로서 한 달도 쉬어본 적이 없다. 늘 사회생활하면서 아이들 키우고 생활의 긴장이나 활력 같은 것들을 계속 가지고 그 속에서 시(詩)를 써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나 시인은 "시(詩)를 좀 더 강렬하게 분출할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면서 "그래도 제 안에는 예술가적인 자아와 철학적인 논리적인 자아가 계속 같이 있어왔던 것 같다"고 했다.
일상을 쪼개서 읽고 쓰고 노동하듯이 글을 써왔다는 뜻이다.
나 시인은 "초기 시(詩)들은 굉장히 서정시들이 많았다"며 "생활에서나 가족들과의 관계나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정서적인 경험, 고향이나 자연에 대한 어떤 경탄과 자연을 기반으로 한 친화적인 서정시를 주로 썼다"고 말했다.
또 "그때는 그냥 그저 제 어떤 감각과 경험에 의존해서 시를 썼다"면서 "그런 것들을 되도록이면 아주 담담한 언어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경험을 조금 더 되새김질 해서 최대한 응축시켜서 간결하게 전달하는 것이였다"고 덧붙였다.
나 시인은 "시인이 계속 자기의 주관적인 감정과 경험에만 의존해 계속 비슷한 얘기를 반복하기 보다는 지금까지 제가 쓰지 않은 그런 주제들과 문제들을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며 "현실의 고통과 부조리를 바라보면서 조금이라도 제 목소리를 내야한다"고도 했다.
나 시인은 "소명감 내지 그런 것들도 갈수록 좀 더 드는 것 같다"면서 "제 개인적인 얘기보다는 좀 사회적인 이야기나 철학적인 이야기 또 다른 예술가들과의 어떤 미학적인 어떤 교감 이런 것들이 주로 많아지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각주도 많아지게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나 시인은 "주로 길에서 많이 소재을 얻었다"며 "끊임없이 그냥 걸어다니면서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돌멩이도 보고 그냥 거미가 집 짓는 것도 보고 그러면서 성장기에 그런 마음의 복잡함을 달랬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문학 수업이었다"고 하면서 "뭔가 관찰하고 다른 존재들의 어떤 삶의 양태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천천히 오랜 시간 들여다보는 거 사실 그것만한 문학 수업은 없다"고 밝혔다.
나 시인은 "고독하게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문학적인 건 내 안에 있는 게 아니고 바깥에 있다. 그것들을 더 이렇게 더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는 거 그런 게 제일 저한테는 시를 쓰게 하는 가장 중요한 그런 계기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나 시인은 "어느 시대든지 지배적인 체제에 저항하면 늘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며 "사실 한국사회에서도 시인은 마찬가지다. 또한 블랙리스트로서 한국땅에서 살아가는 것도 사실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고 밝혔다.
"가능주의자에서 시대적 폭력이라든지 절망 속에서 어떻게 우리가 살아야 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될 것인가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는 나희덕 시인은 "그렇다고 해서 그런 문제들을 정치적 선언이나 그런 메시지를 통해서 생경하게 전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그런 것들을 압축할 수 있는 언어나 그런 것들이 또 필요한 것이다"고 말했다.
나 시인은 "가능주의자라는 말은 제가 만든 말이다"면서 "꽤 오래전에 시작 노트 한 구석에 가능주의자라는 단어를 써놓았다. 개인에 따라서도 어떤 보는 관점에 따라서도 다양한 가치가 공존할 수 있다. 특별한 어떤 가치나 이념을 표방한 것이 아니라 삶의 불가능성 속에서도 그 가능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점에서 가능주의자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고 밝혔다.
나희덕 시인은 "가능주의자라는 그 다섯 글자의 메모가 이제 이 시대 속에서 한 편의 詩가 되었다"며 "메모 한두 줄 해놓고 그게 정말 한 5년 10년 후에야 시(詩)가 되기도 하고 또 하룻밤에 한 두세 편의 시를 바로 쓰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생각이라는 게 다 자기가 타고난 어떤게 있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나희덕 시인은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파일명 서정시>이다.
시론집에는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 접시의 시> 산문집은 <반통의 물> < 저 불빛들을 기억해>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예술의 주름들>이다.
그는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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