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쥔 노동자 정치세력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것인가

[기고] 4. 24 민주노총 대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오는 4월 24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이하 대대)에서 민주노총 정치방침과 2024년 총선방침이 논의, 의결될 예정이다. 참으로 중요한 과정이고 기대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실상을 보면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사실 하나의 조직 안에서도 다른 의견이 있기 마련인데, 하물며 서로 다른 조직 사이에서 안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야 더욱 불가피한 과정일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접점을 형성해 낼 수 있느냐가 문제 될 뿐이다. 접점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사전 논의 과정을 통해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겠다는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대대를 불과 며칠 앞두고 나타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가 않다. 제출될 정치방침과 총선방침에 대한 내용적 검토보다 과정과 절차, 그리고 그에 따르는 어떤 의구심을 드러내는 데에 더 관심과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모든 안은, 누구의 안이든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게 없다면 그게 더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그 의도와 목적 또한 논쟁의 대상이다. 다만 그 둘은 구별되어야 하며, 각각 논의되어야 한다. 이 둘을 뒤섞으면 주객이 전도되거나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한다. 또한 과정과 절차도 주어진 현실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해진 규칙을 어긴 게 아니고 각자의 주장을 펼치는 게 막히지 않았다면 조금 부족하더라도 논의에 임해야 한다.

필자가 보는 민주노총 정치방침(안)의 핵심 내용은 이렇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기존의 경로가 '진보정당을 통한 정치세력화'였다면, 이번에 제출된 것은 '노동자를 정치의 주체로 세우는 정치세력화'로의 전환이다. 지난 정치세력화의 실상이 의회주의/대리주의로 경도되었다면 이번의 경우는 노동자 '직접정치', '광장정치'를 강화하는 기조와 방향으로의 선회이다.

그동안 현실에서 벌어진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대중적, 정치적으로 크게 두 가지 해악을 끼쳤다. 하나는 자유주의 세력과의 ‘야권연대’에 치중함으로써 ‘계급세력화’, ‘독자세력화’의 동력과 기반을 창출하지 못한 것이고, 또 하나는 정치는 ‘진보정당’, 투쟁은 ‘노동조합’이라는 양날개론을 앞세워 정치와 투쟁을 분리시킴으로써 정당도 노동조합도 모두 제 역할을 못하게 하는 구조를 낳은 것이다. 결국 노동자가 정치의 주체가 되거나, 노동자 직접정치가 구현될 가능성이 처음부터 막혔다고밖에 할 수 없다.

물론 노동자가 정치의 주체가 되고, 노동자 직접정치, 광장정치가 현실에서 그 실체가 드러나는 것은 세계사적 과제로서 무척 어려운 일이다. 민주노총 정치방침은 아직은 문장에 머물러 있어서 앞으로 현실화, 구체화해 나가야 하겠지만 분명 커다란 전환이고 선회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 과정의 쓰라린 경험과 커다란 대가를 치르고 얻은 소중한 결론이다.

민주노총 총선방침(안)이 제시하는 시나리오는 이렇다. 다가오는 2024년 총선에서 민주노총과 함께 진보-좌파정당이 연대연합해서 단일한 대응을 하자는 것이다. 지난 2022년 대선 때 시도한 민중경선을 통한 진보-좌파 대선 단일후보 선출의 연속으로, 민주노총도 다시 시작하겠으니 진보-좌파정당도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함께 나서달라고 주문하고 촉구하는 것이다. 지극히 정당하고 필요한 제안이다. 노동자대중의 바람이자 요구이다. 누구라도 말하듯이 정세적 측면에서 요구되는 긴박성과 긴급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지금 진보-좌파정당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과제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민주노총 정치방침(안)이 설령 채택된다 해도 다시 무력화되거나 사문화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금 민주노총 정치방침은 아무리 의미가 크다고 해도 그게 어떤 대중적 동력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닌 만큼 실질적 힘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대중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로부터 멀어져 있다. 민주노총과 진보-좌파정당이 한 목소리로 다가서도 작은 것 하나 성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존재하는 진보-좌파정당을 우회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이룰 수 있는 별도의 동력은 형성하기 어렵다. 진보-좌파정당의 현 상태나마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밑거름이 되게 해야 한다. 아직은 그럴 가능성이 남아 있으며 먼저 포기할 일이 아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진보-좌파정당이 끝내 호응하지 않으면, 아예 새롭게 노동중심의 새 정당을 민주노총 주도로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그 힘으로 진보-좌파정당을 강제하는 것이 더욱 실질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주장과 인식이 일부에서 말하듯이 단지 특정 정파의 의도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진보-좌파정당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현실이 이처럼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펼쳐지고 있는 상황은 전혀 딴판으로 흘러가고 있다. 안건 철회, 대대 유보를 둘러싼 논란이 앞서 나가고 있다. 그 핵심적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발생하고 있다.

먼저 하나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진보-좌파정당 모두가 민주노총의 두 방안을 진지하게 대하고 있지 않다. 이 점은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다. 정당 나름의 사정이야 충분히 있을 수 있고, 그 또한 현실적 조건이라는 점에서 이해되는 바가 없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각자가 처한 현재 조건에서나마 자신의 입장과 태도를 투명하고 분명하게 밝히면서 논의와 논쟁을 이끌고 정치적으로 상승시키려는 노력과 시도를 다해야 한다.

진보-좌파정당은 지난 대선에서 민중경선을 통한 진보-좌파 대선 단일후보 선출 방안을 최종적으로 불발시킨 책임이 있다. 알다시피 그 방안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제출된 것이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서는 진보-좌파정당 사이의 연대연합이 필요하다는 인식과 요구에 기초한 것이다. 그 뒤로 논의할 시간이 있었는데도 그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닥칠 가능성이 충분히 예상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정당 하나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모든 어려움과 책임을 민주노총에 지우고 자신들은 문제를 회피했다. 이번에도 지난 대선과 같은 상황이 다시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진보-좌파정당은 지금부터라도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다음으로, 이 또한 간단치 않은 문제인데, 민주노총 현 집행부에 대한 문제제기가 적지 않다. 한마디로 진행 방식이 일방적이고 패권적이라는 것이고, 그 내용이 진의와 관계없이 사실상 진보당 강화에 다름 아니라는 주장이다. 필자는 이러한 비판과 문제제기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그러한 문제제기 또한 문제가 많다고 보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집행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그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대책이 필요하다. 좋은 의미에서 정치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특히 대중조직으로서는 더욱 그럴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은 큰 틀에서 먼저 연대연합 자체에 대한 공감을 형성하는 데 집중하고, 그 구체적 방안과 방식에 대해서는 진보-좌파정당이 자유롭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물론 지난 대선에서 드러났고, 현재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진보-좌파정당에 그냥 맡겨두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지난 대선에서 확인됐고, 현실적으로 그렇듯이 연대연합은 정당의 동의를 이끌어 내지 않으면 실현하기 어렵다.

4월 24일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게 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다시 조직적으로 논의하고 결의할 기회는 계속해서 있다. 최종적으로 강제가 불가피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지만 이런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과정이 더 필요하고 정파 활동가들 사이를 넘어 광범위한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밟는 것이 제출된 정치방침(안)과도 맞다. 민주노총 안에는 다양한 정파가 활동하고 있지만, 민주노총 자체는 정파가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 대대 이전에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가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정기 대대에서 이미 안건 상정이 확정된 만큼 중집은 좀 더 일찍 중지를 모아 지금과 같이 안건 철회, 대대 유보와 같은 논란이 일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중집 성원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에 따른 정치행위를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과정과 절차에 대한 문제제기든, 안이 갖는 내용에 대한 반대 표명이든, 안에 담겨 있다고 판단하는 어떤 의도와 목적에 대한 비판이든 간에 충분히 할 수 있다.

이와는 다른 한편으로 중집 성원 모두에게는 대대를 성사시키고 운영해야 할 책임이 따른다. 물론 대대를 유회시키는 방안도 하나의 정치적 행위로써 그동안 있어왔고, 심지어는 그보다 더한 행위도 없지 않았다. 결국 모든 사안은 최종적으로 대중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서는 민주노총 중집의 논의가 어떤 결론을 맺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요청하자면, 대대를 성사시키고 그것도 가능한 최대의 참여를 조직해서 충분한 토론이 진행되도록 하는 데 모두가 일치했으면 한다. 중집에서의 논의 양상이 그대로 대대에서 재연되더라도 대의원의 발언을 통해 확인하는 것도 의미가 크다.

그리고 하나 더. 결론적으로 유회를 시키든 표결에 이르든 적어도 다음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을 남기자는 데에도 모두가 일치했으면 한다. 유회든, 부결이든, 통과든 모두 아직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인식을 가져줬으면 한다. 나쁜 경우라도 노동자대중이 모두를 외면하게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만은 피해줬으면 한다. 만약 언제가 됐든 모두의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조합원 전체에게 의사를 묻는 과정을 밟는 것도 한 번쯤 진지하게 검토해 봤으면 한다. 단지 의사 결정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합원이 조금이라도 노동자 직접정치를 실제로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결국 지금의 모든 행위는 거기에 이르기 위한, 매우 중요하지만, 하나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주최로 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일대에서 '민생파탄·검찰독재 윤석열 심판 투쟁선포대회' 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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