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원인은 박정희식 '국가조합주의' 유산

[기고] 세월호 참사의 교훈

2014년 4월 16일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한 304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 사건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재였고 대참사였다. 청해진해운과 세월호의 선장 등이 안전 불감증에 빠져 있지 않았다면, 기본적인 안전규제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사고였다. 배가 침몰하는 과정에서 선장과 선원들이 침착하고 책임감 있게 대처했더라면 인명피해를 막거나 최소화할 수도 있었다. 퇴선 명령 대신에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만 반복하고 자신들만 배에서 빠져나온 무책임한 선장과 선원들 때문에 꽃다운 생명들이 배 안에 갇혀 익사하였다. 배가 침몰하는 동안 해경은 바로 앞에서 이를 지켜보면서도 제대로 구조 활동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이었다. 국가 최고 지도자는 사고 직후의 긴박했던 7시간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타나서 엉뚱한 질문을 던져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후에도 정부는 구조를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없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하였다.

당연히 국민은 이 엄청난 대참사를 막지 못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정부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 결국 국민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통해 세월호 참사에 정치적 책임을 묻는 데 성공했다. 탄핵을 이끌어낸 대규모 촛불시위의 밑바탕에는 국정농단 못잖게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크게 작용하였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하여 우리나라의 재난안전 대책에 획기적인 발전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안전처를 신설하고 해경을 해체하는 등 재발방지 대책을 세웠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국민안전처는 행정안전부에 흡수 통합되었고 해경은 해양수산부 산하 외청으로 환원, 부활하였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건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이태원 참사와 같은 대형 인재를 막지 못하였고, 사고 희생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에도 실패하였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 이후 해양사고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증가 추세라고 한다. 산재사고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세월호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정한 교훈을 얻으려면 왜 그러한 안전사고가 발생했는지 원인 규명을 토대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근본적 원인

세월호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크게 두 가지가 거론되었다. 첫째는 해피아 또는 관피아를 통한 관과 업계의 유착 및 비리이다. 둘째는 신자유주의적인 안전규제의 완화와 민영화이다. 특히 진보 진영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와 민영화에 근본적인 책임을 돌리는 견해가 많았다. 그러나 필자의 연구 결과 신자유주의보다는 관과 업계의 유착으로 인한 시장규율(market discipline)과 국가규율(state discipline)의 동시적 실패가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 내항 여객선의 안전규제를 담당하는 '운항관리자'가 해운조합에 고용되어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던 문제가 드러났다. 운항관리자가 안전규제 감독을 철저히 하려면 오히려 조합으로부터 질책을 당하고 인사에 불이익을 당하는 구조였다. 운항관리자는 승선 인원 및 화물 적재량과 고박 상태 등을 점검한 후 출항 허가를 해야 하지만 실제 운영은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세월호 참사 전까지 운항관리자가 실제 한 일은 멀리서 망원경으로 선박의 만재흘수선(최대 허용 적재량을 실었을 때 선박이 해수면과 맞닿는 선)이 수면 위로 보이는지 확인하는 정도였다. 승선 인원과 화물 적재량은 출항 후 선장이 전화로 보고하면 대신 기입해주는 것이 관행화되어 있었다. 세월호는 과적으로 만재흘수선이 수면 아래로 내려가야 했지만 선원들이 평형수를 절반 이상 바다에 쏟아 부어 만재흘수선이 보이도록 하였다. 결국 배의 무게 중심이 올라가서 세월호의 안정성과 복원력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게다가 배에 실은 자동차 등 화물을 제대로 고박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맹골수역에서 급변침으로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자 배가 무게 중심을 회복하지 못하고 전복하고 만 것으로 보인다. 만일 운항관리자 제도가 없었다면 세월호가 그렇게 급속도로 전복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며, 따라서 그렇게 큰 희생을 초래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안전규제의 형식적인 집행은 차라리 규제가 없는 것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왜 운항관리자를 해운조합이 고용하여 관리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일부 진보 논객들은 성급하게 국가가 안전규제 집행 책임을 신자유주의 논리에 따라 민영화했다고 단정하였다. 그러나 필자가 조사해 보니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운항관리자 제도는 1970년 남영호 침몰 사고로 326명이 사망한 후 박정희 정부가 처음 도입할 때부터 해운조합이 고용하여 운영해왔다. 또한 혹자는 선박 안전 검사를 한국선급이라는 민간업체에 위임한 것도 신자유주의적 조치로 단정하곤 하였는데, 한국선급은 1961년 5.16 쿠데타 직후부터 일정한 선박의 안전 검사와 분류 권한을 법적으로 부여받았고, 1982년부터는 여객선의 안전 검사까지 위임받았다.

돌이켜 보면 한국에서 세월호 및 남영호와 같은 선박 침몰 대형 사고는 여러 차례 비슷한 모습으로 일어났다. 1953년 330명을 수장시킨 창경호 침몰 사고, 1993년 292명의 사망자를 낸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등은 모두 악천후와 함께 화물 과적이 원인이 된 후진국형 사고였다. 필자가 조사해 본 결과 내항 여객선 사고가 빈발하는 국가는 미국처럼 신자유주의 민영화와 규제완화가 가장 많이 이루어진 나라들이 아니라 부패가 심한 후진국들이었다.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가 세월호 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한 측면도 없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선령 규제완화를 들 수 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선박의 연령 한도가 기존의 25년에서 30년으로 연장됨에 따라 청해진해운이 일본에서 퇴선된 선령 18년의 세월호를 수입한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를 했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이루어졌어야 할 시장진입 규제의 완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연안 여객선 사업은 독과점 체제가 유지되고 있었다. 청해진해운이 20년간 독점해온 제주-인천 항로를 포함하여 연안 여객선 항로 99개 중 85개가 독점 항로였다. 이 중 보조항로 26개를 제외하고는 왜 정부가 항로별 면허체제를 유지하며 독점을 보호해주었는지, 특히 국내 여객선 업계에서 가장 많은 사고를 내어 왔던 청해진해운에 인천-제주간 황금노선을 독점 운영하도록 허용했는지를 시장논리로 설명할 수가 없다. 결국 정부가 진입규제 철폐와 같이 기존 업계의 기득권을 해체하는 규제 완화는 하지 않고 선령 규제 완화처럼 업계가 바라는 규제 완화를 선별적으로 해왔다. 규제 완화가 신자유주의 경제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업계와의 유착에 의해 왜곡되었다.

세월호 사고의 근본적 원인을 고찰하려면 세계적으로 해양사고의 방지 및 안전의 증진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타이타닉호 사고 이래 세계적으로 해양 안전의 발전은 무엇보다도 시장의 규율에 의해 이루어졌다. 대형 사고로 타격을 받은 보험회사들은 사고를 낸 선주에게 보험료를 대폭 올리는 방법으로 대응하였다.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보험회사들은 사전에 각 선박의 안전성 및 선주의 안전 관리 수준을 완벽히 평가하기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선주가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아 사고가 나면 안전관리 비용보다 훨씬 큰 보험료 인상을 감수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응방안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보험 기능이 한국의 내항 여객선 사업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고를 내어 온 청해진해운은 해운조합의 공제사업 덕분에 보험료의 폭증을 면할 수 있었다. 해양수산부로부터 우수기업 표창을 받고 산업은행으로부터 저리 융자를 받아 세월호를 구입할 수 있었다. 게다가 청해진해운은 제주-인천 항로를 독점 운영하고 있었으므로 안전 관리를 비롯한 서비스 품질의 시장 경쟁 압력에서 벗어났다.

사실 경쟁의 압력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저가 항공사들로부터 가격과 서비스 경쟁이 고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해진해운과 해운조합이 이러한 경쟁 압력에 대응하는 방법은 보다 낮은 가격과 보다 높은 안전과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력보다는 대정부 로비를 통해 시장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즉, 부산지방해양항만청과 제주해양관리단이 각 교육청에 고등학교 수학여행 시 페리 여행을 권장해달라는 공문을 보내도록 하여 다시 각 교육청이 산하 학교들에 협조 공문을 보내도록 했다. 단원고 학생들이 집단으로 세월호에 승선하여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비극적인 죽음에 처하게 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결국 청해진해운의 경우 독점 항로의 보장과 대정부 로비를 통한 시장의 확보로 시장 경쟁의 압력이 작용하지 않았고 보험회사를 통한 안전 관리 압력과 은행의 대출 심사 등 시장 규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운항관리자 제도 등 안전규제를 통한 국가의 규율도 작동하지 않았다.

운항관리자 제도가 작동하지 않은 데서 이들이 해운조합에 고용되어 있었다는 태생적 한계와 함께 명령통제형(command and control) 사전규제(ex-ante regulation)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일찍이 환경규제에서 명령통제형보다는 탄소 등 오염 배출에 대한 세금이나 배출권 거래제와 같은 인센티브 기반 규제(incentive-baed regulation)가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임이 입증되었다. 사후규제(ex-post regulation)로 사고를 낸 업주에게 무거운 벌금과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식이 사전규제보다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운항관리자가 해운조합이 아닌 제3의 기관에 소속하여 독립적으로 일한다고 하여도 1인당 감독해야 할 선박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관리 감독에 한계가 있다. 국제 해사기구의 국제안전관리규약(International Safety Management Code, ISM 코드)도 인센티브 기반의 사후규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ISM 코드의 핵심은 각 선사별로 안전관리체계를 수립하여 선장은 물론 안전관리 책임자와 최고 경영자가 안전 관리 책임을 지도록 하며, 사고가 발생하면 이들에게 엄격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ISM 코드를 도입하여 외항 여객선은 물론 내항 여객선에도 적용하기로 하였으나, 업계의 로비로 내항 여객선은 결국 면제해 준 것이 세월호 참사를 가져왔다. ISM 코드 도입에 국제 경쟁에 노출된 외항선 업계에서는 저항이 없었으나 페리 업계에서는 처음에 새 제도에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에 정부는 1999년 ISM 코드를 도입한 해상교통안전법 개정 시 내항선에 대해서는 법 시행을 2003년 1월부터로 하여 준비할 시간 여유를 주었다. 그러나 내항선 업계는 이후 논리를 바꾸어 우리나라는 운항관리자 제도가 있으므로 ISM 코드는 이중규제로서 불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형해화한 운항관리자 제도를 근거로 이중규제 논리를 내세우는 데에는 모 대학교수를 연구책임자로 한 연구용역이 활용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2002년 12월 말에 법의 재개정으로 내항선은 ISM 코드 적용을 면제받았다.

운항관리자 제도를 그나마 개선할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있었다. 내항 여객선 운항관리자의 소속을 해운조합으로부터 해양교통안전 전문기관으로 이관하는 내용의 해운법 개정안이 2011년 최규성 당시 통합민주당 의원 등에 의해 발의되었다. 그러나 법안심사 소위원회에 동 법안이 상정되자마자 해양수산부 과장의 반대 발언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바로 폐기되고 말았다.

결국 최고 경영자에게 안전관리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 ISM 코드가 내항 여객선에도 적용될 기회를 놓쳤고, 운항관리자를 해운조합에서 분리 독립시키려는 입법 시도도 무산되었다. 형해화한 운항관리자 제도만 유지되어 국가규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2019년 10월 31일, 직립 작업이 마무리된 세월호 잔해. ⓒ프레시안

박정희 시대 국가조합주의의 유산

이처럼 국가가 내항여객선 시장에 독과점 체제를 유지하고 해운조합에 운항관리자를 고용, 관리하게 하면서 ISM 코드의 적용을 면제시킨 배경은 무엇인가? 국가의 안전규제 기능을 민영화한 신자유주의에 혐의를 둔 것은 사실적 근거가 없음이 밝혀졌다. 필자는 이 모든 것의 근원이 박정희 시대의 국가조합주의(state corporatism)로부터 유래되었으며, 그 유산이 민주화 이후에도 강하게 남아 있다고 본다.

박정희는 국가조합주의 원리에 따라 국가-사회관계를 재조직하였다. 전전 일본의 국가조합주의를 모방하여 각 산업별로 하나의 협회만을 인정하여 국가의 통제 및 독점적 이익 대표 채널로 기능하게 하였다. 사업체의 등록, 검사 및 평가 작업, 회원사 감독과 제재 등 여러 권한들은 협회에 위임하여 정부를 대신하는 규제자 역할을 수행하게 하였다. 선박 소유자들의 독점적 이익집단인 한국해운조합에 운항관리자의 고용과 관리를 맡긴 것은 바로 이러한 국가조합주의적 규제의 일환이었다. 한국선급에 선박의 안전 검사와 분류 권한을 위임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국가조합주의적 규제는 국가가 기업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위의 힘을 가질 때에는 어느 정도 작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차 국가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기업의 힘이 강화하면서 이러한 규제 방식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워졌다. 해운조합 및 한국선급 등으로의 규제 집행 권한의 위임에 정부의 효과적인 감독이 뒤따르지 못하고 낙하산 인사를 통한 관과 업계의 유착관계가 형성되었다. 해운조합의 역대 회장 12명 중 10명이 동 조합을 감독하는 기관인 해양수산부를 비롯한 정부 주요 기관의 고위직 출신이었다. 또, 한국선급의 12명의 전 회장들 중 8명이 정부 부처와 산하 기관의 고위직 출신이었다. 이들이 해피아의 핵심을 이루었다.

국가조합주의의 이러한 부정적 유산은 민주화 이후에도 끈질기게 유지되어 왔다. 특히 국제경쟁의 압력에 노출되지 않은 부문에서 이러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로 인해 규제기관이 규제 대상인 업계에 의해 포획되는 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시장진입 규제와 같이 업계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규제는 지속되고 선령 규제의 완화와 같이 업계가 원하는 규제 완화는 이루어졌다. 운항관리자 제도는 형해화되어 유지되었고, ISM 코드 적용을 면제하는 근거로 이용되었다. 결국 국가의 규율도 시장의 규율도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후진국형 대형 참사를 막지 못한 것이었다.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통해 본 이태원 참사와 중대재해처벌법

이태원 참사도 세월호와 같이 시장규율과 국가규율이 다 작동하지 않은 결과로 일어난 인재였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의 경우 본질적으로 시장규율이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국가의 규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주최 측이 없는 행사라서 국가가 나설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둘러댔다. 이는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될 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명확히 규정된 국가의 책임을 회피한 변명이었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재난안전법은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한 경우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이 기본적 의무이자 책무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은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를 "범죄의 예방·진압 및 수사"보다도 더 앞선 제1의 직무로 규정하고 있으며 "경찰관은 --- 극도의 혼잡, 그 밖의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에는" 필요한 경고와 억류, 피난 등의 조치를 할 수 있고 "경찰관서의 장은 관계기관(구청, 소방서)의 협조를 구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소방기본법도 소방책임자는 위급한 상황에서 피난 명령을 할 수 있으며 인명구조·구급 등 필요한 활동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행정안전부 장관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장으로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행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 조정하는 책임을 진다. 그런데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참사 다음날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었다. 소방, 경찰 인력을 미리 배치하는 것으로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는 면피성 발언으로 공분을 샀다. 이어서 이 장관이 국무총리가 주재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불참하면서 같은 시각에 윤석열 대통령의 분향소 조문에 함께 한 것도 주무장관으로서의 책임을 망각한 처사였다. 행안부 장관 대신 국무총리가 중대본부장 역할을 맡을 수 있지만, 이 때 행안부 장관은 중대본의 차장 역할을 맡아야 한다. 따라서 이 장관이 중대본 회의에 불참한 것은 그야말로 무책임한 처사였다. 이태원 참사처럼 재난관리기관이 기존 법령에 정해지지 않은 유형의 재난에 대해서는 행안부 장관이 재난관리주관기관을 정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데 이 장관은 이러한 법적 책임도 수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형사적 책임으로 국가와 주무장관의 책임을 협소화하였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안전 주무장관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형사처벌을 받을 죄를 범하지 않았으므로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감쌌다. 장관은 보고를 받지 못해 대응할 수 없었으므로 책임이 없다는 논리이다. 이태원 참사와 같은 중대한 안전사고에 형사처벌을 받을 직접적 책임이 없다고 하여 안전 주무장관에게 아무런 정치적 책임도 묻지 않는 것은 매우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앞으로 장관이나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위급한 상황이 발생해도 보고하지 말고 밑에서 알아서 처리하라는 신호를 보낼 것이다. 보고받지 못한 책임도 엄중하게 물어야 이러한 참사의 재발을 예방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서도 세월호 참사의 교훈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안전 규제에 있어서 국가의 규율 못지않게 시장의 규율도 중요하며, 또한 국가의 규율에 있어서도 명령통제형 사전규제보다는 인센티브 기반의 규제와 사후규제가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중대재해발생시 사업주 인신 구속과 신체형을 위주로 처벌하는 법은 기업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뿐이며 실효성도 약하다. 형사처벌은 검사의 엄격한 입증책임을 요구한다. 따라서 대형 로펌을 고용하는 대기업일수록 실제 처벌은 쉽지 않다. 국제 해운안전규정에서 보듯이 최고 경영자와 안전관리 책임자에게 신체형보다는 무거운 벌금형이나 과징금으로 엄격한 책임을 묻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방책이 될 수 있다.

이 글의 주요 내용은 필자의 세월호 참사의 원인에 대한 논문(You, Jong-sung and Youn Min Park. 2017. "The Legacies of State Corporatism in Korea: Regulatory Capture in the Sewol Tragedy." Journal of East Asian Studies, vol. 17, issue 1, 95-118)과 민주연구원 주최 토론회(2022년 11월 16일)에서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통해 본 이태원 참사의 국가책임과 재난안전대책"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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