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때까지 다섯 가정 떠돈 아이가 양부모와 애착이 가능할까요?

[372명 해외입양인들의 진실 찾기] (24) 우리는 '물건'처럼 거래됐습니다

"넌 우리에게 마음을 열지 않아, 너무 멀게 느껴져."

"넌 우리에게 절대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우리는 너의 인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절대 알지 못해."

이것은 내가 어린 시절 내내,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입양) 부모, 주로 어머니에게로부터 일관되게 들은 이야기였습니다. 나는 그 순간에 감정이 없고, 얼어붙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대답할 지에 대한 단서도 없이 존재해야만 했습니다. 부모님의 관점에서 볼 때, 저는 아마도 관계 단절의 전형이었습니다.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마술처럼 그것을 바꾸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나는 이런 성격을 내 가장 큰 실패로 받아들였습니다. 성적이나 스포츠에서의 실패와는 달리,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타고난 속성에 대한 실패였습니다. 나는 단순히 부모-자녀 관계에서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나는 양부모와 친아들들이 있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1980년대에 99%이상이 백인인 지역에 살면서, 나는 동상으로 검게 변한 아픈 엄지손가락처럼 두드러져 보였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부모와의 관계를 친구와 그들 부모의 관계와 관찰해 비교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이 입장에서 부모님, 특히 엄마와의 정서적 친밀감이 다른 친구들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연대와 친밀감을 얼마나 필사적으로 느끼고 싶었는지, 내가 부모와 유대감을 느끼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모릅니다.

2021년 말, 나는 북미의 작은 마을에서 아시아 아이로서 산 것에 대한 엄청난 대가, 감정적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입양인 커뮤니티에서 이런 과정에 대해 "안개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상업적 DNA 검사를 통해 유럽에 입양된 형제 자매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너무 혼란스러웠습니다. "맙소사,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습니다.

친생가족과 연결되는 200만 분의 1의 만남은 내가 수십 년 동안 내 안에 깊이 간직했던 모든 경험과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2021년 12월, 나는 입양 가족 형제 중 한 명과 솔직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나는 최근에 겪었던 감정적 혼란과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감정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한 가지 사실은 (양)엄마가 유산(한번 또는 두번)을 경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엄마는 여자아이를 원했습니다. 그녀는 친밀한 엄마/ 딸 관계에서 기대를 할 수 있는 여자아이와 유대감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지역 입양기관에 여아를 요청했습니다. 엄마는 영어를 전혀 말하지 못하는 6.5살의 한국 소녀를 데리러 우리 고향에서 JFK 공항까지 가는 비행기를 예약하면서, 엄마는 우리가 "여성간 유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유대는 절대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직후, 나는 한국으로부터 더 많은 (입양 관련) 문서를 받았습니다. 수많은 페이지를 읽으면서 나는 머리가 핑핑 도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원래 친가족과 함께 살다가 4살 즈음에 밖에 나갔다가 부산 경찰에 의해 "발견"(그곳이 내 태어난 곳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약 8개월 동안 고아원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다른 고아원에서 몇달 더 지내다가 캐나다로 보내지기 전에 잠시 위탁가정에 머물렀습니다. 그 기간 동안 경찰은 나를 직계 가족이나 다른 친인척을 찾아주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섯살이 될 때까지 5개의 가정, 5명의 후견인 아래에서 살았습니다. 이렇게 지낸 6.5세의 아동이 외국에 보내진 뒤 양부모와 깊은 유대를 맺지 못했던 것이 과연 내 잘못일까요?

심리치료사이자 동료 한국 입양인인 캠 스몰(Cam Small)은 "부모와 헤어졌는데 낯선 사람들에게 애착을 갖지 않는다고 비난받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입양기관이 아동을 가족을 꾸리는 데 도움이 되는 상품으로 마케팅함에 따라, 입양된 아동이 그들의 가족을 위한 이상적인 계획에 들어맞지 않을 때 입양아동은 더 대상으로, 인간이 아닌 존재로 취급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아니요, 나는 관계 단절로 고통받지 않습니다. 나는 평생동안 수없이 의미있는 관계를 가졌습니다.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 것은 부모님과의 단절뿐입니다.

올해 나는 다시 거처를 옮길 것입니다. 나는 네 개의 대륙을 넘나들며, 일곱 번째 나라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된 이후에도 내 삶의 조각들을 맞추고 있습니다. 영원히 "집"을 찾고 있습니다.

나는 부모, 교육자, 기관, 정부 공무원이 실제 입양 이후 오랫동안 우리가 어떤 트라우마를 갖는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당혹스럽고 슬프고 솔직히 화가 납니다.우리는 아동 인신매매의 피해자입니다. 우리는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 "물건"처럼 거래되었습니다.

나는 한국의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우리가 어머니, 아버지, 형제 자매, 숙모, 삼촌, 조부모, 문화, 음식, 전통, 언어 및 지역 사회로부터 어떻게 분리되었는지에 대한 답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한국이 저지른 일입니다. 나는 내 정체성을 되찾고 싶습니다. 내 진짜 이름은 뭔가요? 내 생일은 언제인가요? 나는 어디에서 왔나요? 입양이 되지 않은 사람들에겐 쉽고 당연하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나는 입양과 관련된 모든 진실에 대한 답을 찾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쓴 1984년 입양된 주례. ⓒ필자 제공

2022년 9월, 283명의 해외입양인들이 진실화해위원회에 입양될 당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조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 11월 15일, 12월9일 두 차례에 걸쳐 추가로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372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권위주의 시기에 한국에서 덴마크와 전세계로 입양된 해외입양인의 입양과정에서 인권 침해 여부와 그 과정에서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다행히 진실화해위는 12월 8일 '해외 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조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이는 한국이 해외입양을 시작한지 68년만의 첫 정부 차원의 조사 결정이다. <프레시안>은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요청한 해외입양인들의 글을 지속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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