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안군북 출신 조경숙 작가는 친구들과의 수년 간 일상 대화를 엮은 <고바우 일기–칠 학년의 소꿉놀이> 수필집을 출간했다.
1950년생 그는 초등학교 친구들과의 아기자기한 대화를 엮었고 책의 후반부에는 작가의 문학적 재능이 돋보이는 시(詩)와 그의 삶을 풀어낸 에세이가 소박함을 오롯이 느낄 수 있게 했다.
조 작가는 "그 시절에는 누나와 오빠가 희생하며 동생들을 보살폈다"며 "넉넉하지 못한 세상에서 부모님의 용단을 꺾을 수가 없었고 내 삶은 그저 희생이었다고 생각해 왔으나 선택과 집중이라는 부모님의 아픈 결정이 환갑이 지나서야 이해가 되었다"고 회상했다.
형제자매의 돈독한 우애로 위안이 되더라는 뜻이다.
조 작가는 "수필집에 친구들과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내 동생들과 부모님, 사촌 형제간의 얘기도 있었다"면서 "인생 칠십년을 넘긴 사람의 기억 속에도 더러는 흑백이 있고 천연색으로 바뀐 것이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시 한 편을 살펴보자.
/동생 극래는 올케 정유희와 홀로 계신
와병 중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밤낮도
먼 거리도 아랑곳없이 고향집을 들락거렸네/
/대소변 홀로 못 하실 때
큰딸인 나도 작은딸인 맹숙도
완강한 거부로 도와드릴 수가 없었네/
/오직 큰 아들 극래와 큰 올케 유희만의
특권을 안겨 주신 첫날 아버지는 부끄러워
한 없이 우셨다네/
/병수발 동생 뒷바라지에 허리도 아픈 그들은
천사였네 살아있는 천사였네 아버지 가신 뒤에도
봄날 꽃밭 애기똥풀 보고 올케 눈이 그렁그렁 했네/
/친정아버지 못 모신 그 한
시아버지에게 쏟은 그걸 우린들 어찌 모르겠는가,
고맙다 참 고맙다/ -애기똥풀 전문-
조 작가는 "수십 년을 아쉬워했던 가슴앓이는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며 "바로 아래 남동생과 여동생도 그 아래 세 명의 남동생들을 위해 부모님의 결정을 따라야 했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위의 세 명 기회 포기로 아래 세 명의 앞날을 밀도록 한 그 결정이 예순을 넘기면서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당시의 사정상 부족함이 너무 많았던 시절 보릿고개가 넘기 힘들다는 것 느꼈다. 또한 그 시절에도 친구들과 교정에서 뛰어 놀기는 신이 났다. 오포(사이렌) 소리 듣고 오후에 학교 수업하러 간 적도 있었다. 유년시절의 추억은 아직도 자라는 듯 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경숙 작가는 "아들이 둘 손자가 둘이다. 할아버지 닮은 손자들 자라는 것 보면서 일흔 넘어 책 한 권 내는 버킷리스트 이루었고 이제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고 살짝 속내를 드러냈다.
출판기념회는 4월 30일 일요일 낮 12시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안대로 51 유로스퀘어빌딩 9층 (우)5174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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