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윤 정부의 '기후 대응' 도박 사이트를 개설한다면?

[초록發光] 역대 정부 탄소중립의 역사와 전망

지난 3월 21일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 방향이 공개되었다. 이번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놓고 실망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발표 전부터 국가 계획이 밀실에서 수립되고 있고, 공청회가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법 절차에 하자가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지적되었다. 정부 초안이 공개된 이후로도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중을 줄이는 대신에 원전을 확대하는 친원자력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 못하고 현실성이 부족한 탄소 포집․저장 기술이 포함되었다는 문제와 더불어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를 기존보다 축소함으로써 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후퇴한 계획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심지어 환경단체로부터는 이번 정부안이 비민주적, 친기업, 찬핵, 친화석연료 계획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선언까지 나왔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먼저 현 정부의 탄소중립 기본계획을 시민이 예상하지 못했을까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남은 임기 4년 동안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이 어떻게 진행될지 혹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수 있다. 이들 두 가지 질문에 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한국의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 그럼으로써 현재를 평가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30년이라는 기후 대응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자칫 고리타분할 수 있는 역사가 소중한 이유는 바로 현재와 미래의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 기후정책의 역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에 가입한 1992년을 공식적인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강산이 세 번 바뀔 정도의 경험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2008년까지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부는 사실 아무런 정책적 대응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우리에게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굳이 불필요하게 앞장섰다가는 화를 입을 수 있으니, 나서지 말고 가만히 지내야 한다는 격언이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옛 성현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다. 기후협약을 승인함으로써 세계적인 추세에 편승하기는 했지만, 회의장 뒷자리를 조용히 지키기만 했다. 온실가스를 열심히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가는 경제성장의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처럼 정부가 노력하지 않기로 결정한 정책 방향을 '무의사 결정'이라고 한다.

역사적 모순일 수 있지만, 이처럼 무책임한 한국의 태도를 바꿔놓은 정치인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사실 대선 캠페인 기간에 이명박 대통령은 한반도 전체를 공사판으로 만들겠다는 대운하 계획과 변형된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반환경 후보로 낙인 찍힌 상태였다. 이처럼 태생적 한계를 지닌 대통령이 취임 첫해의 광복절 기념식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제시하며, 향후 60년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탄소 감축으로 전환하겠다는 획기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대선 공약에도 없었던 파격적 선언이었다. 이는 대기업 사장 출신으로 기후변화 이슈가 쟁점으로 등장하는 국제적 흐름을 읽어내고 이를 한국의 대표 상품으로 마케팅하는 데 성공한 기업인의 탁월한 감각적 판단이었다. 덕분에 녹색성장 기본법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은 현행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의 전신인 녹색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이 시기에 도입됐다.

같은 정당 출신으로 정권을 승계한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기후변화 대응 노력은 다시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사실상의 정권교체라고 불릴 정도로 계파적 성격이 달랐기에, 인수위 운영 단계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 사회가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60년의 전환 기획인 저탄소 녹색성장만큼은 계승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박 대통령 취임 이후에 이 같은 요구는 철저히 무시되고 말았다.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는 개최되지 않은 채 무력화되었으며, 정부 내의 녹색성장 관련 조직은 전부 사라지고 관련 사업마저 폐기되고 말았다.

이처럼 정권의 관심에서 멀어져 방치되었던 한국의 기후변화 논의를 그나마 진전시킨 사람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었다. 2015년 파리협정 체결을 위해 국제사회의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선진국과 개도국의 경험을 모두 지닌 한국의 선도적 조치가 국제협상의 교착 상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직통 전화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국의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요구했다. 이에 한미 동맹을 중요하게 여긴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과의 논의를 생략한 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하겠다고 유엔에 통보했다. 심지어 정부 실무자들과 협의할 시간조차 없이 이뤄진 발표였다. 결국 이는 국내 감축분을 찾아내지 못하고 관련 사업의 예산을 마련하지도 못한 채, 해외 탄소시장에서 배출권을 구입해 국가 목표를 충당하겠다는 임시방편의 목표라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2017년 탄핵 이후 급하게 치러진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나라를 나라답게'라는 공약으로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신분이었을 때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환경문제에 관심이 큰 편이었으며, 시민사회와의 교류도 활발한 편이었다. 그로 인해 환경단체의 기후 대응에 대한 기대도 높았다. 그렇지만 정작 대선 기간에 발표되었던 기후 공약은 감축 목표가 배제된 정부 조직개편 정도가 전부일 정도로 실행되는 데 그쳤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에 환경부는 국가 온실가스 목표를 단지 박근혜 정부의 해외 감축분을 국내에서 달성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시민사회의 우려는 현실화되고 말았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 전반기의 실망스러운 기후 대응 성적은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갑작스러운 반전을 보여주었다. 2020년의 예상치 못한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맞이해 정부는 과감한 지출을 통해 경제를 견인하겠다는 한국판 뉴딜을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논의되던 그린 뉴딜을 받아들여 국회 연설에서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했으며, 이듬해에는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발표했다. 정리하자면, 문재인 정부도 기대와 달리 기후변화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코로나 사태를 맞이해서 국제사회의 흐름을 고려해 탄소중립 논의에 편승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 누사두아 컨벤션센터(BNDCC)에서 열린 'B20 서밋 인도네시아 2022'에서 '글로벌 복합위기 극복을 위한 기업의 역할, 그리고 디지털 전환 시대의 글로벌 협력'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행 윤석열 정부는 역대 한국 대통령 가운데 어떤 정부에 가까울까? 여태 드러난 정부의 행보는 기후변화 논의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여론에도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검찰 출신으로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의 현 정부는 이명박 혹은 문재인 대통령과 달리 박근혜 정부와 유사할 것으로 판단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전반기에 직전 이명박 정부의 유엔 기후변화 목표를 그대로 유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윤석열 대통령도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를 폐기하지 않는 정도의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이번 탄소중립 계획도 국제사회에 제출한 감축 목표를 지키는 선에서, 원자력을 조금 늘리고 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조정 수준으로 발표되었으니,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던 셈이다.

문제는 예측 가능했던 취임 1년 차의 계획이 아니라 남은 임기 4년의 성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권 후반기에 미국 대통령의 전화 한 통으로 감축 목표를 상향하는 미봉책을 제시하고 말았다. 윤석열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국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본인에게 부여된 권한만을 행사하기 때문에, 자신의 관심사가 아닌 기후위기 및 탄소중립 요구는 앞으로도 동일하게 무시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요구나 유엔 혹은 유럽의 요청에 의해 약간의 개선 정도의 변화를 꾀할 가능성은 있다. 그렇지만 한국의 기후 대응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런 외부 압력에 의한 변화는 탄소중립 목표의 달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국 대통령의 요구에 의한 피동적 대응으로는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달성 불가능할 정도의 야심 찬 목표를 이루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한국 내부에서 시민과 정치인뿐만 아니라 산업계가 함께 머리를 모아 전환의 동력과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기후 대응 전례를 따를 것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 고유의 탄소 전환 정치가 만들어져야 한다.

매사추세츠 공대의 앤드루 맥아피 교수는 미국이 탄소 감축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도박 사이트 계정에 돈을 걸어놓았다. 윤석열 정부의 기후 대응 관련 확률을 계산해 베팅한다면, 박근혜 정부식 피동적 대응이 가장 가능성 큰 전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바람직한 미래가 아니다. 설혹 돈을 잃더라도 낮은 확률의 바람직한 변화, 즉 시민이 요구하고 정치가 반응하며 경제 및 도시 구조가 바뀌는 근본적인 전환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누군가 윤석열 정부의 기후 대응 도박 사이트를 개설한다면, 같이 판돈을 걸어보고 싶지 않은가?

※관련 기사

"남북전쟁에서 돈을 챙긴 버틀러, 지구온난화에 돈을 건 맥아피", 프레시안, 2023.2.6.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3020413432202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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