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결단' 내려야 한다

[최창렬 칼럼] 적대적 공생을 강화하는 제1야당의 행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단행한 당직 개편으로 민주당 내에서 쇄신 요구는 당분간 잦아들 전망이다. 정책위의장, 전략기획위원장, 지명직 최고위원, 대변인 등을 비명계 인사로 교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적 쇄신의 핵심은 조정식 사무총장 유임 여부였지만 사무총장은 유임됐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에 대해 비명계 일각에서 '탕평을 빙자한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민주당 문제의 핵심은 이재명 대표의 거취다. 이 대표가 기소된 이후 당무위원회는 당헌 80조의 예외조항을 적용하여 이 대표의 당직을 정지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가 '정치 탄압'과 '정치 보복'이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주류가 언제까지 이 대표의 여러 혐의들을 모두 '검찰공화국'의 '사법사냥'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이 대표가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그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법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위험한 발상이기도 하다. 본질은 재판에 회부된 이 대표가 과연 검찰의 공소장에 적시된 혐의를 정말로 저질렀는지 여부다. 그러나 이는 법원의 판단 이전엔 모두 각자의 주장에 그칠 뿐이다.

정치와 법치가 병존하는 게 민주주의의 통치 원리이고 각 영역은 조응할 수도, 전혀 별개로 작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절차적 정당성을 상징하는 총선은 법적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내년 총선 때까지 법원의 최종 판단은 내려지지 않을 것이다. 유권자들은 이 대표의 혐의에 대해서 각자의 정치적·법률적 판단을 가지고 투표장으로 향할 것이다.

만약 총선 때까지 민주당이 이 대표와 거리를 두지 못하고 이 대표의 대표직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선거를 치르면 민주당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도에서 선거를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국민의힘이 표면적으론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지만 이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해 내심 민주당이 사법리스크의 족쇄가 되기를 바라는 이유다.

민주당 대표의 사법 문제는 단순히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적대적 공생을 기본 구도로 하는 한국 정당체제에서 이 대표의 대장동·백현동 등 각종 혐의가 여야 공방의 블랙홀이 되고 정책과 현안들에 대한 토론과 협의가 실종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이 대표와 친명계는 자신들에게 제기되는 비판 여론의 화살을 돌리고 국면을 전환하기 위하여 국민의힘 등 여권에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내고 이에 맞서는 국민의힘의 야당 공세 역시 더욱 가팔라지는 악순환의 구도이다.

여러 주장과 관점이 난무하지만 모든 걸 감안한다 해도 이 대표가 자신의 거취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불과 23만 표 차이로 패배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당에 더 이상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 물론 이 대표 기소에 대해 야당 탄압 수사이므로 반대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51.6%에 이르는 여론 조사도 있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 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 25-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6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 포인트)

그러나 내년 총선 때까지 사법부의 판단도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법리스크를 계속 안고 간다면 민주당은 대안정당과 제1야당으로서 여권을 견제 심판할 명분을 찾을 수가 없다. 집권 후 여권의 여러 실책과 무능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정당지지도는 여당과 엎치락뒤치락 한다. 최근 한일 정상회담의 비판여론과 주 최대 69시간 근로 문제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국민의힘과 접전을 보이는 정도다.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에 대한 이탈표가 예상외로 많았다는 사실은 본질과는 거리가 먼 당직개편으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선행지표에 다름 아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공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저자들은 '모든 성공적인 민주주의는 비공식적인 규범에 의존한다'며 강력한 민주주의 규범을 민주주의의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이는 '제도적 자제'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더구나 성문화된 당헌에 명시된 조항의 예외 적용은 규범을 깨는 행위이다.

미국의 워싱턴 대통령은 "권력을 기꺼이 내려놓음으로써 권력을 얻었다"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자제의 규범이 민주주의 유지에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례이다. 이 대표가 진정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제의 규범을 통하여 결단을 통한 자기희생을 보여줘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3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를 마친 뒤 대표실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