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균형발전, 철 지난 잔소리인가?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그럼에도 '균형'이 중요한 이유

우리나라 국토에 관한 계획 및 정책 수립의 기본이 되는 국토기본법에는 국토의 균형있는 발전에 대해서 여러차례 언급하고 있으며, '국가균형발전 특별법'과 같이 법의 명칭 자체에 균형이라는 말이 사용되기도 한다.

자주 듣는 말은 그 자체로 당연한 것이 되기 쉽다. 즉 표현 자체가 정당성과 힘을 가지게 되는 현상, 담론화 현상이 나타난다. 반면 이러한 '~해야한다' 와 같은 표현을 너무 자주 듣게 되면 잔소리가 되기도 하며, 이를 반박하거나 뒤집어보고 싶은 심리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 이러한 잔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특히 균형발전은 규제이며 자유로운 시장경제에 역행하고 경제의 활력을 저하시킨다는 논리가 이러한 반발심리에 더해지면, 국토의 균형발전 논리는 이념적이고 고루하며,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는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젊은이와 기업이 모두 수도권에서 일하고 싶어하니 인구절벽 시대에 수도권 규제는 무의미하다는 기사를 보고 놀란 적도 있다.

규모의 경제, 집적의 이익 그리고 불이익

그렇다면 국토의 균형발전은 당위나 이념에만 근거한 것일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하게도 우리 국토가 모두 같은 방식으로 같은 수준으로 발전할 수는 없다. 지역은 고유한 잠재력을 지니며 각각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성장해나간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어 일정한 인구 규모에 도달하면 도시가 형성되고, 인구가 더욱 늘어나면 운영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고, 비슷하거나 연관된 산업 등이 모여들면 집적의 이익이 생긴다. 교통시설, 병원, 학교, 관공서 등은 모두 최소한의 인구가 있어야 효율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에 도로를 만드는 것은 사회적 낭비이며, 학교에는 최소한의 학생이 있어야 교사가 배치될 수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공간과 장소는 이러한 최소한의 인구 그리고 규모의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고, 공공시설이 아닌 소비시설과 서비스 시설은 규모의 경제가 달성되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상권분석과 같은 조사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규모의 경제가 늘 경제적 효율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너무 많은 인구가 한정된 공간에 모여있게 되면 이를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한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최근 경부고속도로 동탄역 구간이 직선화되어 서울 방향이 개통되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경부고속도로 동탄 나들목부터 동탄분기점까지 4.7km 구간을 직선화하고 동탄역 주변 1.2km 구간은 지하화하여 동탄1, 2 신도시가 지상으로 연결됐다.

공학적 측면에서는 다른 의견이 있겠지만, 필자는 이 구간에서 고속도로가 운전에 영향을 줄 정도로 곡선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물론 분리된 동탄 신도시가 연결된다면 주민의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겠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는 효용이 큰 사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언론 보도를 검색해보니 해당 구간의 공사비가 700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서울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교통량이 워낙 많아 차량 1대당 편익은 크지 않아도 전체적으로 보면 투자비용을 상회하는 효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7000억이라는 금액은 너무 많아서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올해 예산개요를 살펴보니 코로나로 인한 소상공인·자영업자 채무조정 예산이 약 2800억, 예비군 예산 2600억, 국가의 핵심전략기술인 2차전지 연구개발 예산 1500억, 고등학교 무상교육 9000억, 55만 명의 노인을 위한 맞춤돌봄서비스 예산이 5000억 정도이다. 4.7km 구간을 직선화하고, 1.2km 구간은 지하화하는 7천억 이라는 돈은 이정도의 액수인 것이다.

또 다른 서울과 수도권의 과밀로 인한 비용의 예는 최근 유행인 도로의 지하화이다. 1988년 개통된 서부간선도로는 정체로 악명이 높았으며 5200억 원을 들여 지하화했고, 동부간선도로는 2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자하여 지하화를 계획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기흥~양재 구간의 지하화에 3조 8000억 원이 든다는 보도가 있었으며, 서울시는 한남동~양재 구간도 지하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확한 추계는 어렵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남동~양재 구간의 공사비는 몇 조 원 수준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다고 한다. 엄청난 예산이다.

혹자는 일부 사업은 국비가 아닌 민간자본투자 혹은 지자체 예산으로 하는 것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누구의 돈인가가 아니라 그렇게 쓰는 돈이 효율적인가 하는 것이다. 서부간선도로를 지하화해서 교통체증이 사라지고, 동부간선도로, 경부고속도로 등을 지하화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이야기의 결말을 우리는 안다. 교통이 원활해지면 교통량이 늘어나고 똑같은 문제는 늘 반복된다는 것을.

수도권 확장에서 나타나는 외부효과, 자산증가, 불로소득의 문제 

최근 GTX 등 광역교통망에 대한 기사도 쏟아지고 있다. 경기도에서 서울 도심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대심도열차는 서울로의 출퇴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거주자들의 편익을 증대시킬 것이다.

그러나 기사나 블로그 등을 검색해보면 통근자들의 편익만큼이나 GTX역이 건설되는 지역의 부동산에 관련된 내용도 많다. GTX역이 들어서면 "GTX ○○역까지 도보 10분"과 같은 부동산 개발광고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즉 서울로 이동하려는 사람은 더욱 늘어나고, 수도권은 확장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광역교통망은 부동산이라는 자산의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자산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입지이며, 입지에서도 교통연결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경제나 부동산을 전공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나의 부동산 자산가격의 상승은 나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나의 노력과 무관하게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나의 자산가치가 상승하는 것이며 이를 외부효과라고 하며, 불로소득으로 이어진다.

지방의 쇠퇴와 수도권의 인구증가는 좋은 일자리 문제만은 아니다. 수도권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다른 지역보다 부동산 가치의 증가라는 기분 좋은 외부효과를 누릴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자산 가치의 증가는 광역교통망 확충과 같은 정부의 예산투자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계획된 GTX 노선 이외에도 d,e,f 건설과 같은 소위 '희망회로'는 오늘도 열심히 돌아간다.

▲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GTX 이미지. ⓒ경기도

목이 말라도 바닷물을 마실 수는 없다

수도권의 밀집과 서울의 광역화를 추진하는 정책이 제어되지 않고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는 현상은 우려스럽다. 더욱이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넘어선 상황에서 수도권에 대한 투자는 갈수록 제어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정책이란 결국 유권자의 표를 바탕으로 추진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위에 언급한 GTX 이외에도 지하철 3호선, 7호선, 9호선도 경기도 외곽으로 조속히 연결해 달라는 목소리가 높다.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는 중요한 사안이지만 걱정이 앞선다. 이러한 정책들은 서울의 집중도를 높이고 과밀화로 이어지며 이는 비효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과연 현재 이러한 국토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적 의제는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 10여년 간 지방의 자생력, 지역 맞춤형, 컨텐츠 등의 이야기만 무성한데, 결과적으로는 지방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보라는 무책임에 가깝다.

수조원이 투자되는 광역교통망 공사가 수도권에 하나도 아니고 여러 군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에서 좋은 정책이 있으면 공모제나 심사를 통해 몇 십억 원 지원해주겠다는 식의 해결방식은 한계가 있다.

국토균형발전은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비용과 효율의 문제이며 예산과 자산의 문제이다. 즉 그렇게 돈을 쓰는 것이 장기적으로 효율적인 것인가에 대한 판단에 근거한다. 지금 당장의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서 펴는 정책은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이 감당할 수 없는 비효율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서울은 이미 초과밀 상태이며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수도권 확산이 일어나고 있다. 단순 계산을 해보면 만약 세계 모든 인구가 서울 수준의 인구밀도에서 산다면 한반도의 2.3배의 면적만 있으면 충분하다. 또한 인도의 14억 인구도 제주도를 제외한 남한 면적이면 충분하다. 이래도 국토의 균형발전이 철 지난 잔소리일까?

■ 필자소개

지상현 교수는 정치지리와 지정학을 전공하였고, 지정학적 담론, 동아시아 안보, 공간을 둘러싼 불평등과 갈등에 관심이 많다. 최근의 연구와 활동은 접경지역, 영토문제, 공간과 권력에 대한 질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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