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성의있는 호응? 정상회담 성과 기대하기 어렵다"

[인터뷰] 이수훈 전 주일본한국대사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대법원 배상 판결을 피고인 일본 기업이 아닌 제3자가 이행하는 것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이후, 한일 양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정상회담 일정을 공개했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미래를 위한 결단이었다며 발전적 한일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정부 입장문 발표에 대한 여론이 여전히 좋지 않은 가운데, 일부에서는 정부의 안이 이미 문재인 정부 때도 검토되던 것이었다면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던 세력은 이번 정부안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 당시 첫 주일본한국대사를 지냈던 이수훈 전 대사는 15일 <프레시안>과 만나 현 정부의 입장문과 문재인 정부의 방안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2019년 6월 대법원 판결에 대해 행정부가 어떻게 할 수 없긴 하지만, 그럼에도 한일 관계를 위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며 피고인 일본기업과 한국기업이 공동으로 기금을 마련하자는 안을 제안한 것"이라며 "지금 정부의 입장문은 일본 기업의 참여가 완전히 빠지고 제3자가 변제하겠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방안과는 천양지차"라고 지적했다.

이 전 대사는 "소위 '문희상 안'의 경우에도 현 정부의 입장문과는 다르다. 기금 마련은 기업과 국민이 같이 하지만, 일본 기업의 사과, (원고인) 피해자의 동의, 국회에서의 여야 합의, 특별법 제정 등이 포함돼 있었다"며 "그럼에도 전임정부를 끌어들이고 문희상안을 현 정부 입장문과 유사하다고 끌어들이는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발표가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이행의 마무리가 아니라 오히려 더 큰 공방을 부르는 '패착'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전 대사는 원고인 강제동원 피해자 중 생존자 3명이 거부 의사를 명확히 하고 국민 여론이 정부 안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 등을 거론하며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정부가 원하는 '미래를 지향하는 한일 관계'를 만들 수가 없다. 크게 어긋난 상태로 출발하는 셈인데, 지속가능하고 발전적일 수 없는 패착"이라고 평가했다.

이 전 대사는 이번 입장문 발표로 "역사의 시계를 1965년으로 회귀시켜버렸다"며 "일본이 한일 관계의 근간으로 규정하고 있는 1965년 청구권 협정의 뼈대는 '역사 봉인'과 '반공 연대'인데, '역사 봉인'은 그대로이고 '반공 연대'는 '반(反) 중국 연대'로 변화된 셈"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강제동원 문제를 한국이 해결하고 이를 통해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실질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필요성도 있다"면서도 "이를 절대시하는 것은 국가의 관리자들이 보일 태도는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 전 대사는 "한미일 안보 협력에 '영혼'까지 실어버리면 전략적 사고와 균형잡힌 태세를 잃어버리게 된다"며 한미일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등 대륙 세력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균형외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이수훈 전 주일대사 ⓒ프레시안

프레시안 : 윤석열 정부가 지난 6일 강제동원 대법원 배상 판결 이행과 관련해 발표한 입장문에 일본 기업의 배상은 빠져있다. 피고인 일본 기업들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에 기금을 내는 방식도 완전히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법원 판결이 나온 2018년 직후에는 어땠나?

이수훈 : 외교부가 그간 일본과 협의하면서 피고인 일본 기업의 사죄와 배상 참여 등 두 가지를 요구했고 그건 최소한의 '성의있는 호응'이라고 했는데 이 해결안은 2019년 6월 당시 문재인 정부가 일본에 제안하기도 했고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이 제기했던 이른바 '문희상 안'도 대동소이다.

우선 정부는 당시 일본에 피고인 일본 기업(1)과 한국에서 지난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수혜를 받은 기업(1)이 같이 기부금을 내서 해결하자는 방안인 이른바 '1+1'을 제안하고 이를 협상하자고 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이를 일거에 걷어차버려 아무 진전이 없었다.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재직하던 때였는데 입장이 아주 강경했다. 일본은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징용" 문제가 해결됐는데 한국 대법원이 이러한 판결을 내린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대법원의 판결을 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문희상 안은 정부의 협상 시도 이후 나왔는데,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에 일반 국민들의 성금이 추가된 것이었다. 이 안에는 대법원 판결을 받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로 피해를 입은 분들 전부를 위한 재단을 설립하자는 특별법 제정도 포함돼 있었다.

프레시안 : 말씀하신대로 지금 정부의 입장문 발표가 이미 문재인 정부 때 모색했던 해결책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야당 등이 지금 정부의 발표를 비판하면 안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이수훈 : 그건 사실과 다르다. 지금 정부의 입장문과 문재인 정부 때 안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가지고 행정부가 어떻게 할 수 없긴 하지만, 그럼에도 한일 관계를 위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며 피고인 일본기업과 한국기업이 공동으로 기금을 마련하자는 안을 제안한 것이었다. 지금 정부의 입장문은 일본 기업의 참여가 완전히 빠지고 제3자가 변제하겠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방안과는 천양지차가 있다.

문희상안의 경우에도 현 정부의 입장문과는 천양지차가 있다. 기금 마련은 기업과 국민이 같이 하지만, 일본 기업의 사과, (원고인) 피해자의 동의, 국회에서의 여야 합의, 특별법 제정 등이 포함돼 있었다.

그럼에도 전임정부를 끌어들이고 문희상안을 현 정부 입장문과 유사하다고 끌어들이는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전임 정부도 지금 정부 입장문과 유사하게 계획했는데 당시는 한일 양국 정부가 상호 신뢰가 부족해서 이뤄지지 못했고 지금은 가능했다고 선전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했다시피 그 내용이 기본적으로 다르다.

당시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이었던 가와무라 다케오 일본 중의원이 문희상안을 듣고 일본에 가서 이것을 잘 설명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2019년 연말 당시 일본은 어떤 안을 내놓아도 못 받아들인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또 이미 그해 7월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했는데, 이것이 소위 '레드라인'을 넘은 행동이었다. 이는 다른 외교 협상은 없다는 아베 정부의 신호이기도 했다. 당시 내가 느끼기에 일본은 한국의 다음 정부를 기다린다는 태도를 가졌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문재인 정부가 2019년 6월 제시했던 방안도 '고육지책'이었다. 대법원 판결을 이행해야 하는데 한일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냈던 방안이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대법원의 판결을 시정해서 오라고 했다. 하지만 이건 불가능하지 않나. 그래서 대법원 판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고육지책을 구상한 것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입장문은 대법원 판결을 폄훼했을뿐더러 일본기업은 빠지고 한국기업이 낸 기부금으로 판결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건 한일관계와 대일외교에서 큰 패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조성한 재원으로 판결금을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일본 기업이 참여하는 최소한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노력을 좀 더 진중하게 기울이는 한편, 국내적으로 피해자를 설득하는 등의 진정성 있는 접근을 했어야 했는데 그게 없이 발표만 하다 보니 벌써부터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당장 지난 13일에는 강제동원 피해자 중 생존자 세분이 재단에 판결금 수령 거부 의사를 밝히는 내용증명을 제출했다. 그럼 외교부는 공탁을 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추후 법적 공방을 예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것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어마어마한 2차 가해다.

정부는 야당이나 국민들을 상대로 한 설득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야당의 강경한 반대에 부딪혔고 국민들의 약 60% 정도도 이 방안에 반대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주 조사한 결과가 그렇다. 14일에는 서울대학교 교수들이 정부안에 철회를 요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정부가 원하는 '미래를 지향하는 한일 관계'를 만들 수가 없다. 과거가 없이 미래가 있을 수 없지 않나. 크게 어긋난 상태로 출발하는 셈인데 지속가능하고 발전적일 수가 없는 패착이다.

오히려 이 발표가 문제를 한층 꼬이게 만들었다. 마치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 때와 유사한 양상이다. 당시에도 합의 발표 이후 바로 피해자의 반발이 있었고 이어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대 움직임이 커지지 않았나.

이후 2017년 치러진 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포함해 모든 후보들이 위안부 합의 파기 입장을 보였다. 이처럼 국민적 동의와 피해자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면 결국 윤석열 정부의 입장문도 위안부 합의의 재탕이 될 수밖에 없다. 두고두고 화근이 될 가능성이 높다.

프레시안 : 윤석열 정부가 이번 입장문을 통해 사실상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을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때문에 이후 한국이 일본과 다른 사안의 협상에서도 입지가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일본이 조선인 강제 노역이 이뤄졌던 곳인 사도(佐渡)광산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시도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방어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수훈 : 사도광산도 그렇고 지금 수출규제 현안도 있는데, 일본은 정부의 입장문 발표 이후에도 수출규제를 철회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부가 먼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취하했다. 일본 정부가 우리한테 가한 경제 보복 조치를 먼저 처리해야 하는데 우리가 제소를 먼저 취하하고 그 기초 위에서 정책 협의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미 외교에서 굴욕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입지는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는 과거사와 관련된 것이고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출 문제도 동해나 부산, 제주도 등에 직접 들어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영향을 주는 문제라 우리가 강하게 이야기해야 하는 사안인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독도 관련해서도 우리 대응이 어물쩡해 보인다. 지난해 12월 16일 일본 정부가 발표한 개정 국가안보전략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했는데, 이 문건은 일본의 국가 안보에 굉장히 중요한 문건이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처럼 작용해서 향후 일본의 방위나 안보 등의 기반이 되는데, 여기에 독도가 영토로 기록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인데도 정부는 논평과 초치만 하는 등 기존에 의례적으로 하던 대응 수준에 머물렀다.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정상화 문제만 해도 수출규제 조치와 연동돼있는 사안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의제에 올라와있을 것 같은데 이미 우리가 이와 연동된 WTO 제소를 하지 않기로 했으니 지소미아 정상화도 따라갈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한국 정부의 외교 상황은 권투로 비유하자면 가드를 내리고 있는 상태에서 엄청 두들겨 맞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프레시안 : 정부 입장문 발표 이후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강제동원 문제를 일본 뜻대로 매듭짓고 나서 이뤄졌는데, 시각에 따라서는 상당히 굴욕적인 회담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정부가 어떤 결과를 들고 돌아와야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이수훈 : 일본 정부가 지금은 기고만장한 상황이다. 여기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지지율도 그렇게 높지 않은 상황이라 정부가 먼저 강제동원 관련한 조치를 취했다고 해도 일본이 '성의있는 호응'을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본 지도자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이나 기자회견 등에서 역사인식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한일관계 발전시키는 중요한 기초다. 우리 대통령은 비록 관철되지 않더라도 그런 것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이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해 9월 21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한 컨퍼런스 빌딩에서 한일 정상 약식회담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한미일 안보 협력에 '영혼'까지 싣지 않길

프레시안 : 강제동원에 대한 정부 입장문 발표 이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다렸다는 듯이 환영 입장을 발표한 것을 두고 이 사안의 배후에 결국 미국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한국이 들어가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수훈 : 일본은 1965년 청구권 협정이 현재 한일관계의 근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협정은 '역사 봉인'과 '반공 연대'가 그 뼈대다. 그런데 협정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정부의 국력 및 그에 따른 위상이 높아지고 국제사회에서 인권 존엄성에 대한 감수성이 커진 데다가 탈냉전까지 맞물리면서 1965년 체제가 크게 흔들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반영된 것이 무라야마 담화, 고노담화,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이었는데, 이번 입장문 발표는 역사의 시계를 1965년으로 회귀시켜버렸다. '역사 봉인'은 그대로이고 '반공 연대'는 '반(反) 중국 연대'로 변화됐다.

1965년 청구권 협정 체결 이후인 1970~80년대 한국은 미일 동맹의 종속변수였다. 미국 대통령이 동아시아 지역 순방하면 일본에 주로 머물고 한국은 잠시 들르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의 위상이 변하고 한미 동맹이 굳건해지면서 우리의 자율성이 제고되는 동맹으로 진화했다. 즉 우리가 더 이상 미일 동맹의 종속 변수가 아닌 상태로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강화라는 정책기조 아래 스스로 알아서 미일 동맹 아래로 들어가고 있다. 한미 동맹이 독립 변수가 돼야 하는데 지금은 미일을 축으로 하고 한미 동맹이 여기에 붙어있는 것 아닌가 하는 기우가 든다. 과거로의 퇴행이 일어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재임시절 3각 안보협력의 틀을 무척 강조하고 한국을 그 틀에 엮어두려고 굉장히노력했다. 북한과 평화 및 화해 프로세스를 견제하고 한일관계도 틈만 나면 격하시켰다. 아베가 이런 전략을 취했는데 지금 딱 그렇게 돼 버렸다. 아베 총리가 지하에서 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한미 훈련이나 한미일 안보협력이 실질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그 필요성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를 절대시하는 것은 국가의 관리자들이 보일 태도는 아니다. 좀 더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관점을 갖고 안보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한미일 안보 협력이 강화되면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도 가시권에 들어온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향후 한일 간 군사 협력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는지?

이수훈 :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은 일본이 차곡차곡 자위대의 활동범위를 확대해 왔다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일본은 2015년 안보법제 제정하면서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에 대한 교두보를 이미 확보했다.

지금은 한미일 군사협력, 한일 군사협력을 강조하면서 동해에서 수차례 해양훈련을 하고 독도 인근에서도 훈련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건 좀 지나친 측면이 있다.

앞서 말한대로 북한의 미사일이나 핵무력 법제화 등으로 인해 군사협력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의 영토와 영해는 수호하는 차원에서 진행해야 한다. 안보협력을 강화돼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가다보면 자칫 우리가 지켜야 할 선을 넘을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 22일 한미일 3국이 동해 공해상에서 북한 미시알에 대응하기 위한 훈련을 실시했다. 앞쪽부터 세종대왕함, 배리함, 아타고함. ⓒ해군

프레시안 :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는 한반도를 둘러싼 신냉전 구도가 가속화됨을 의미한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이수훈 : 방안을 언급하기 전에 일단 이 정부가 철학과 인식이 빈곤하다는 측면을 지적하고 싶다. 직전 보수정부였던 박근혜 정부 때만해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등 나름의 지향점이 있었다.

정부도 그렇고 전문가도 그렇고 '한반도적 시각'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지금 정부는 남한만의 안보, 남한만의 경제를 추구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산적한 외교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큰 돌파구를 찾을 수도 없다.

윤석열 정부가 '인도 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는데 거기에도 해양만 있지 대륙이 없다. 왜 북방은 없는지 모르겠다. 보수정권이었던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DNA는 다 어디로 갔나. 러시아와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한반도적 시각을 가져야만 넓은 시야가 열린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하더라도 향후 국익을 위해 러시아와 관계도 붙잡고 있어야 한다. 또 중국을 포함한 대륙의 국가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 그 때 그 때 상황에 잘 대응하면서 국익을 추구해나가는 유연한 태도가 절실하다.

신냉전구도가 심화되는 것은 우리한테 절대 불리하다. 최대한 역량을 발휘해서 이 구도가 심화되지 않도록 좌표를 잡고 그런 방향의 외교를 펼쳐 나가야 한다. 우리가 북한과 미국을 중재해본 적도 있지 않나. 그런 역량을 발휘해 미국과 중국 간 대결구도를 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계속 발신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대만해협의 안정과 평화 유지를 지지한다고 했다. 즉 대만해협의 갈등과 분란을 확대·재생산하는 미국과 중국의 활동 또는 정책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미중 간 신냉전 구도 속에 한 쪽에 서서 휘말려 들어가지 말고 균형을 취하면서 우리 국익이 부당하게 침해당하지 않는 가운데 지역 질서를 가능한 협력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좌표를 설정하고 그 좌표위에서 외교를 펼쳐야 한다.

미국에 올인하여 돌아온 게 배터리 분야나 반도체 분야의 뒷통수다. 미국의 반도체지원법 때문에 중국에 투자한 삼성이나 SK하이닉스가 앞으로 매우 곤란한 처지가 되고 있다. 미국에만 편중하여 그렇지 않아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도체산업에 오히려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현재는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렵고 활로를 찾기도 힘든데다가 한국이 가지고 있는 저출산, 인구고령화, 노동력 부족 등 구조적 위기 요인도 상존하고 있다. 북한과 경제협력 등 제반 협력을 이뤄내며 활로를 만들어야간다는 생각은 못하나?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고 여차하면 사용한다고 하니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힘에 의한 평화' 노선을 추구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해서 우리 안보가 잘 지켜지고 평화가 오긴 하나. 연일 연합 훈련에 북한은 미사일로 도발하는 등 한반도가 평화는커녕 군사 연습장 비슷하게 되어가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어떻게 되고 있나. 미국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 목표가 ‘한반도 비핵화’라는데 아무런 실행이 없다. 미국에 대고 한반도 비핵화 정책 목표 이뤄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우리가 물어야 한다. 지금 이 상태로 가면 사실상 북한의 핵 무장을 용인하는 셈이 된다.

윤석열 정부 임기가 4년이나 남았다. 당장 노선을 바꾸라고 할 수는 없다. 한미 동맹 강화, 한미일 안보협력 모두 좋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 영혼까지 싣지 말라는 것이다. 영혼을 실으면 전략적 사고와 균형잡힌 태세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수훈 전 대사는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이후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장, 일본 게이오대학 초빙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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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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