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금덕 등 강제동원 생존자 3명 "의사 반하는 변제 거부" 공식화

지원단체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아닌 전범기업 지원하는 재단으로 이름 바꿔야 할 정도"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대법원 배상 판결을 피고인 일본 기업이 아닌 제3자가 이행하는 것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피해자인 원고 측이 제3자 변제를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내용증명 형식으로 공식화했다.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을 맡고 있는 소송 대리인 측은 13일 원고인 양금덕·김성주 할머니가 지난 2018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확정된 채권과 관련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다. 의뢰인 양금덕·김성주의 의사를 본 내용증명으로 명확히 밝히니, 수신인은 의뢰인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증명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지난 6일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이행과 관련해 정부가 발표한 입장문에 따르면, 행정안전부 산하의 이 재단은 원고가 대법원에서 판결을 통해 받은 배상금액을 피고인 일본 기업 대신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즉, 원고들이 제3자 변제의 실질적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에 변제 거부 의사를 명확하게 전한 셈이다.

대리인 측은 "민법 제469조 제1항에는 '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정하고 있다"며 채권자가 거부 의사를 표시할 경우 제3자 변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리인은 또 내용증명에서 "의뢰인이 확정판결에 따라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을 행사한 것"이라며 "제3자가 채권자의 의사에 반하여 함부로 변제하여 소멸시켜도 되는 성질의 채권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원고 4명 중 유일한 생존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도 이날 소송 대리인을 통해 재단에 위와 같은 취지의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이로써 강제동원 사안과 관련해 대법원에서 배상 확정 판결을 받은 생존자 3명 전원이 정부 안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게 됐다.

대리인 측은 제3자 변제 거부 의사 표시를 재단뿐만 아니라 피고 일본 기업인 일본제철 측에도 국제우편으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미쓰비시 중공업에도 국제우편으로 전달할 예정인데 형식과 시기 등에 대해서는 검토 중에 있다고 전했다.

▲ 강제동원 피해자 생존원고 법률 대리인단이 13일 오전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안'인 제3자 변제방식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담은 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재단 측에 내용증명을 전달한 법무법인 해마루 임재성 변호사는 변제 거부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게 된 배경에 대해 "(민법 조항의 해석을 담은) 민법주에는 (채권자가) 제3자 변제를 거부할 경우 그 의사 표시를 변제 전까지 해야한다고 명시돼있다. 그래서 저희가 이 의사 표시를 늦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15명 중 이번에 의사표시를 하지 않은 나머지 원고들에 대해 임 변호사는 "15명 중 생존자 3명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유족분들인데 본인의 의사표시를 외부에 전하는 것을 꺼려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원고들이) 제3자 변제에 반대한다는 의사표시를 하기 전에 (재단에서) 내일이라도 (배상금을) 공탁해버리면 법률적으로 그쪽(정부 측)이 이길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반대 의사 표시를 하신 분들의 채권이라도 지키려면 신속한 의사 표시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일단 먼저한 것"이라며 "반대 의사표시가 추후로 더 확실해지는 분들이 있으면 당연히 추가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거부의사를 전달한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이제 거부 의사를 명확하게 했으니 외교부가 피해자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하고 괴롭히는 일을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어 재단에 대해서도 "재단 간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단은) 지금 정부로부터 일제 전범기업 지원재단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어렵게 쌓아올린 역사적 성과물을 완전히 뒤엎고 전범기업 명예회복을 위한 기관으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강제동원 피해자 생존원고 대리인들이 13일 오전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안'인 제3자 변제방식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담은 문서를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기금관리단 관계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제동원 정부 입장문 냈지만...해결까지 법적 공방 이어질 듯

원고인 피해자 중 일부가 제3자 변제를 받지 않겠다고 공식화하면서 앞으로 대법원 판결 이행을 두고 법적 공방이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는 원고가 재단의 판결금 지급을 거부한다면 공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 1월 26일 '한국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을 진단한다'를 주제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김홍걸 국회의원이 주관한 토론회에 참석한 대한변협 일제피해자인권특위 부위원장 박래형 변호사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당시 토론회에서 "(피해자인) 채권자가 수익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으면 채권자와 인수인간의 권리 의무 관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며 "권리의무관계가 성립하지 않으면 변제를 할 수 없고. 그렇다면 공탁도 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과 같이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갚아야 할 금액을 공탁하는 변제공탁의 경우 "채무자가 채무를 변제하려고 해도 채권자가 수령을 거절"하는 경우에 가능하다면서, 피고 기업이 아닌데 채무에 같이 참여한 제3자는 채무자가 아니라 채무를 함께 인수한 '인수인'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배상 이행을 위해 진행 중인 일본 기업의 한국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 문제도 적잖은 논란과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채권자의 강제집행절차가 정지되기 위해서는 민사집행법 49조에 따라 ① 채무자가 재판정본을 받아서 ② 그 재판 정본을 집행기관에 제출하여야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이 사안에 대입해보면 채무자인 일본 기업이 채권자인 피해자를 상대로 재판을 제기하여 강제집행 정지 결정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받아 이를 집행 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강제집행 정지 법원 판결을 받으려면 제3자가 채무자가 되어 채권자에게 변제한 것이 되어야 하는데, 이 경우 재단은 채무자가 아닌 '인수인'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아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조현동 외교부 제1차관은 지난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재단이 배상금을 지급하면 피고 기업이 더 이상 원고에 대한 채무가 없다고 보고 강제집행 절차를 벗어나기 위해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면서도,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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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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