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장대로 모두 건설노조때문이라기엔 찜찜하다

['건폭'의 진짜 얼굴] 보이는 '현상'이 원인이라는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의 입에서 터져 나온 '건폭'. 과연 건설노조와 건설노동자는 손가락질과 지탄을 받아야 마땅할까? 현장에서는 오히려 건설노조 조합원이 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압도적으로 쏟아지는 건설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말과 보도에 대해 당사자, 전문가, 국제노동진영의 의견과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본다. 편집자주

전문건설업체 CEO 친구. 어쩌다 통화를 하게 되면 욕설이 섞인 험 담만을 내뱉는다. 비난의 주요 대상은 건설노조다. 건설업계가 그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음을 말해도 들은 척을 않는다. 빡빡한 하청공사비에다 노조의 요구가 커지면서 현장에서 돈을 벌지 못한다며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는다. 하도급공사 현장소장 후배. 현장 용어가 섞인 말투로 건설노조로 인해 현장운영이 힘듦을 토로한다. 작업 생산성이라도 높으면 좋겠는데, 일을 덜 하는데도 돈은 더 많이 주고 있어 힘들어 죽겠다는 하소연이다. 건설노동자가 3D 직업 종사자이므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당장 자기가 죽겠는데 그 사람들을 생각해줄 여력이 없다면서 애꿎은 담배만 연신 빨아댄다.

원청업체 얘기도 비슷하다. 자신의 공사 현장 앞에 건설노조 집회가 예정되면, 연줄을 통해 다른 현장에서 시위해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한다. 직접적 피해는 하청업체가 받지만 어쨌거나 원청에게도 피해가 분담될 것이고, 자신의 현장에서 괜한 논란이 만들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심정일 것이다. 건설관련 양대 협회는 건설산업 논의주제로 건설노조의 불법·부당행위 근절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을 높이고 있다. 아울러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신문 지상을 통해 연일 건설노조 비판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를 받아서인지 정부는 강경 대응으로 나서 산업계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월 20일,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을 발표하였다. 근절대책으로 불법·부당행위 점검·단속 강화 및 차단·방지, 건설근로자 보호조치의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실효성이 과연 있는지 의심되지만 말이다. 경찰청은 3월 9일, 건설현장 폭력행위 특별단속 중간 성과를 발표했다. 3개월간 2863명을 단속하고, 그중 29명을 구속했다는 내용이다. 구속된 29명 중 양대 노총(민노총, 한노총) 소속은 12명(41%)으로 절반에 못 미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8일 서울 동작구 전문건설회관에서 열린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실태고발 증언대회에서 윤학수 대한전문건설협회중앙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가 없어지면 건설산업은 정의로워지는가?

위와 같은 현장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경찰청의 단속 결과를 보면, 건설업체들의 인내심이 수인한도를 넘어선 상황이라는 점에 대해서 이견을 달 생각이 없다. 영리법인 건설업체가 약자라는 느낌마저 들게 하는 아이러니가 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정부와 업계의 주장대로 모든 것이 건설노조 때문이라고 단정하기엔 뭔가 찜찜하다. 건설노조란 조직이 없어지면 우리나라 건설현장이 정의롭게 흘러갈 것으로 생각되지 않기에 그렇고, 정부나 산업계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건설산업의 가장 큰 축이 건설노동자 그룹일 텐데 이들을 적(敵)으로 간주하는 것은 산업계의 잘못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비겁한 행태로 비칠 수 있다. 경찰청이 발표한 구속자 29명 중 양대 노총 비중은 41%로서 적지 않지만, 모든 책임을 건설노조에 있는 듯한 좌표 찍기는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여기서 우리는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였고, 점점 더 심각해졌는지에 대한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아니, 원인진단 없는 대책은 엉터리일 뿐이므로, 반드시 냉철한 원인분석이 있어야 한다. 이는 건설노조에 대한 온정주의에 터 잡은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해둔다.

보이는 현상은 원인이 아니다. 왜곡된 시각은 멈춰야 한다.

건설사업은 기획·설계와 발주단계를 거친 이후 시공단계로 진행된다. 시공단계는 단위 시간당 가장 많은 비용과 인원이 투입되므로, 시쳇말로 복마전이 아닐 수 없다. 시공단계에서의 고질적 문제는 무수히 많다. 다른 나라보다 5배나 높은 사고사망자 비율, 끊이지 않는 부실시공 논란, 외국인 노동자 불법고용으로 내국인 일자리 잠식, 위장직영 및 불법하도급 등이다. 이러한 고질적 문제는 우리나라 건설현장에서 유독 커 보이는 현상들로서, 산업계의 고질적 병폐라는 비난을 받은 지 참 오래되었다. 해서 정부마다 고질적 병폐 근절을 외쳤으며, 이번 정부에서도 다시 반복되고 있다. 이제 질문을 던져보자, 지금까지 근절되지 못한 고질적 병폐는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정부와 산업계가 말하는 건설노조의 불법·부정행위는 채용 및 장비사용 강요, 월례비, 노조전임비, 업무방해 등으로 생각된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들이 사라진다고 하여 산업계의 고질적 병폐들 또한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채용 및 장비사용 강요 등의 현상이 발생했던 이유가 산업계의 고질적 병폐 때문이기에 그렇다. 일례로 타워크레인 월례비가 없어지지 않는 것이 건설현장에서의 불안전하고 빨리빨리 작업을 재촉한 업체들에 기인한 것임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정부와 산업계 또한 이를 모를 리 없음에도 채용 및 장비사용 강요, 월례비 등의 현상이 사라지면 마치 건설현장이 정의로워지는 것처럼 왜곡되게 생각한 것은 대단한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부디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제대로 된 정부의 역할은 노조에 빌미를 준 산업계의 고질적 병폐, 즉 산업계의 불법·부당행위를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방안을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2월 20일 내놓은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은, 그간 건설노조가 문제삼아 온 산업계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 완화를 제시하고 있어 심히 유감스럽다. 특히 건설안전관련 사항들을 합리적으로 정비한다면서 제시된 방안이 자칫 안전관련 규제를 완화 또는 폐지하는 것으로까지 진전될까 걱정이 앞선다. 나아가 정부의 근절대책에는 서민 일자리를 불법적으로 빼앗는 건설업체의 불법고용 처벌 완화를 포함하고 있어,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인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이러한 정부의 근절대책을 보자면 그간 노조가 빌미로 삼아온 부실시공에 대한 처벌마저도 완화해줄 것인지 되묻고 싶다.

▲대전지역 종교 및 정당과 진보 시민사회단체들이 민주노총 건설노조 대전 공안탄압대책위원회 결성했다. 이번에 결성한 위원회는 민주노총 건설노조 표적 탄압 분쇄 및 건설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대전지역 공안탄압대책위원회로, 이들 단체는 윤석열 정권의 건설노조 탄압을 중단하고 고용안정 대책을 마련할 것을 주장했다. ⓒ연합뉴스

노·사·정 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

돌이켜보니 예전에는 건설노조의 투쟁에 우호적인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건설노조에 대한 비난적 목소리가 월등히 증가하였음을 체감하고 있다. 노조의 불법·부당행위는 최근 들어 급증하면서 강해지는 경향을 보여왔기에, 직접적 피해를 당하지 않은 일반 시민들조차도 비판 대열에 가세한 때문으로 판단된다. 설령 건설노조가 아니더라도 불법·부당행위는 응당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건설노조 불법·부당행위를 증가시킨 원인은 산업계의 불법·부당행위에 기인한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바, 제대로 된 근절대책은 건설업체에 대한 처벌 완화가 아니라 발생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것이어야 한다. 안전시공 및 품질관리 확립, 불법고용 근절, 직접시공제 확립, 적정임금제 등이 그것으로, 이미 정부 또한 잘 알고 있는 사안들이다.

극한으로 치닫는 대결은 산업계뿐만 아니라 국가경제에도 이롭지 않다. 상대방의 주장과 내용이 확인된 만큼 대화와 타협을 통해 금번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진부하지만 노·사·정 협의체 구성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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