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당정분리' 尹 '당정일체', 모두 실패한 까닭

[최창렬 칼럼] 균형 무너진 당정관계의 예정된 경로

대통령제 국가에서 집권연대 내의 당정 관계 설정은 권력 운용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다. 당권-대권 분리와 함께 당정 분리는 권력 분산은 물론이고 삼권분립과 헌법적 원칙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과거 재정·인사·공천권 등을 가지고 당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한 '제왕적 총재'와 집권당 총재를 겸함으로써 여당과 국회를 통제한 '제왕적 대통령'의 폐단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정 분리의 이러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집권당과 대통령실의 분리와 협조의 경계는 모호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은 가장 강력한 의제설정자이며 집권당과 대통령의 관계가 마냥 분리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편 당정 일체는 권력 간의 건강한 견제와 비판을 원천적으로 막는 결정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당정 사이의 관계를 여하히 설정하느냐는 그 자체가 정치의 핵심일 수밖에 없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정 분리를 '내가 당을 지배·통솔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당정 분리 독트린'으로 표현할 정도로 일관되게 추구했다. 하지만 당시 집권당이던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자율성을 제고하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본래 당정 분리는 대통령이 집권당을 장악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에 대한 당의 영향력 역시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당과 대통령의 관계 자체를 단절시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당정 분리라는 명분으로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의제에 대해 당의 주장을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봉쇄됨에도 불구하고, 결국 여당은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을 뒷받침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게 된다. 관점에 따라 당정 분리는 역설적으로 여당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노무현 정부 때 국가보안법과 대연정 이슈가 그 대표적 사례였다. 당시 당정 분리를 요구했던 열린우리당은 청와대에 당정 관계의 복원을 요구했고, 청와대는 당정 분리 원칙 훼손을 이유로 당의 요구를 거부했다. 결과적으로 당정 분리는 처음의 취지와는 달리 집권당이 대통령의 정치적 결정에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니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국민의힘 경선에서 불거진 '윤심' 논란은 대통령실과 여당과의 관계 설정에 관한 문제로 환원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당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경선 룰 개정과 경선 후보들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정 일체를 통해 당과 정부의 상호협조를 강조하는 것과 맥락이 닿아있다.

만약 대통령실이 미는 김기현 후보가 대표로 선출되지 못할 경우, 국민의힘 '친윤' 그룹은 지도부 붕괴를 시도할 수도 있다. 최고위원의 분포에 따라 이 시도가 여의치 않을 경우 여권 내 대통령의 리더십 훼손은 불가피하고, '친윤 대 비윤' 대립 구도가 심화되면서 당에 원심력이 작동될 수도 있다.

당정 분리와 당정 일체 중 어느 한 쪽만 취할 수는 없다. 둘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당정 분리와 당정 일체의 단점만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정 일체는 노무현 정권 때의 당정 분리에서 나타난 문제를 해소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동안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의 관계나 '친윤' 그룹의 일련의 행태들로 미루어 볼 때 집권당의 자율성의 부재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집권연대 내에서 여당의 영향력이 대통령실에 작용하지 못하고, 여당이 일방적으로 대통령실에 의해 규정되는 상황이 된다면 외관상으로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가 아니더라도 '제왕적 대통령'의 행태가 재연될 수 있다. 대통령실이 당 경선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총선 때 여당 대표를 통해 공천에 개입한다면 권력 간 균형이 깨지고 권력의 건강한 작동이 원천적으로 제약될 수 있다.

국민의힘 경선 과정이나 최근 여권 일각에서 당의 명예대표직과 관련한 언급이 나온 것으로 볼 때 대통령실이 여당에 대한 통제력 제고에 나설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당정 분리가 가지고 있는 함정도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하지만, 당정 일체라는 명분으로 대통령의 권력이 여당에 공천권을 통해 과도하게 행사된다면 총선에서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이 차기 총선에서 패한다면 식물정권으로 전락할 수 있다. 대통령실과 '친윤'의 성찰이 필요한 이유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뒤 장제원 등 여당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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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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