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역대 최악 열차 사고로 최소 43명 사망, 원인은…

인력 부족 더해 안전 관련 자동화 설비도 미비…그리스, 민영화 이후 EU 내 열차 사망률 1위

그리스 중부 라리사 인근에서 발생한 열차 사고 사망자가 하루 만에 43명으로 늘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이번 사고를 "사람의 실수"로 규정했지만 근본적 배경엔 철도 부실 관리와 만성적 인력 부족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P> 통신, 영국 BBC 방송 등 외신을 종합하면 1일(현지시각) 전날 수도 아테네에서 북부 테살로니키 방향으로 승객 342명과 직원 10명을 태우고 운행하던 여객열차와 마주 오던 2명의 직원이 탑승한 화물열차 충돌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최소 43명으로 늘었다. 중장비를 동원한 구조작업이 1일 밤까지 계속됐지만 구조대원인 니코스 자이고우리스는 <AP>에 "생존자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다. 당국은 실종자 규모를 20~25명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이 중 일부는 사고 뒤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현장을 떠났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사고 당시 열차 첫머리 2량에 불이 붙어 객실 온도가 1300도까지 치솟으며 주검이 훼손돼 신원 확인조차 쉽지 않은 상태다. 라리사 지역 수석 검시관인 루비니 레온다리는 주검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며 "대부분이 젊은이들"이라고 <AP>에 말했다. 열차 안에는 사순절을 앞두고 지난달 16~27일까지 아테네에서 열린 카니발 축제를 즐기고 돌아가던 대학생들이 많이 타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AP>는 그리스 소방당국에 따르면 1일까지 6명의 중환자를 포함해 57명의 부상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15명은 퇴원했다고 전했다. 가벼운 부상을 입거나 다치지 않은 200명 이상의 승객은 테살로니키 등으로 버스를 통해 이동했다.

복선 선로가 깔린 구간에서 두 대의 열차가 같은 선로를 사용해 수 킬로미터, 약 12분 가량 마주 달린 뒤 충돌한 이번 사고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여객열차의 당시 주행 속도는 시속 160km에 달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1일 방송 연설을 통해 사고의 "주된" 원인은 "사람의 실수"라고 시사했다. 이날 열차에 신호를 보낼 책임이 있는 라리사 역장은 과실치사 및 과실치상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다만 역장은 사고 원인이 기술적 오류라고 주장하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이번 사고의 근본적 배경엔 만성적 인력 부족과 안전 관련한 최소한의 자동화 시설 미비 등 부실 관리가 깔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연합철도청(ERA)은 지난해 펴낸 철도 안전 관련 보고서에서 이미 그리스의 2018~2020년 열차 주행 100만km 당 사망률이 EU 27개 회원국 중 가장 높다고 제시했다. 그리스는 2017년 EU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며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철도를 민영화했다. 

코스타스 카라만리스 그리스 교통장관은 1일 사임 의사를 밝히며 그리스 철도 시스템이 "21세기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이런 비극이 일어났는데 아무 일 없었던 척할 수 없다"며 사임할 "책임"을 느끼고 이는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추모의 표시"라고 덧붙였다.

노동자들은 관련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BBC를 보면 그리스 철도 인프라 운영사 OSE 노조위원장인 니코스 치칼라키스는 이미 국가가 승인한 계획에 철도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노동자 수가 2100명으로 명시돼 있는데 실제 노동자 수는 750명에 불과하다고 현지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리스 기관사협회장 코스타스 제니두니아스는 현지 방송에 "신호등·전자 교통 제어 장치 등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아테네에서 테살로니키로 향하는 구간의 모든 것이 수동으로 조작된다"며 기관사에게 전방의 위험을 알려줘야 할 전자 시스템이 오랫동안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 쪽은 지난 25년 간 이러한 문제를 보고해 왔다고 덧붙였다. 

철도노조는 "인력 충원·더 나은 교육·현대적인 안전 기술 도입 요구가 오랫동안 무시돼 왔다"며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2일 하루 동안 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노조 쪽은 이번 사고로 각 열차의 기관사 2명씩을 포함해 8명의 직원이 숨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사고는 34명의 목숨을 앗아간 1968년 펠로폰네소스 남부에서 발생한 열차 사고 이래 그리스에서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낳은 열차 사고로 기록될 전망이다. 그리스 정부는 1일부터 3일 간의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1일(현지시각) 전날 그리스 중부 라리사 인근에서 발생한 열차 충돌 사고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 그리스 구조대원들이 2일(현지시각) 중부 라리사 인근의 열차 충돌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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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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