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의 관찰] 이타주의, 진정한 행복

인간은 다양한 감정을 지니고 살아간다. 간혹 롤러코스터를 타며 무서움을 즐긴다. 격하게 외로움을 느끼며, 외로움을 피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에만 집중하는 것도 아니다. 남이 행복할 때 행복을, 남이 불행할 때 슬퍼하기도 한다. 심지어 가상의 상황에서도 그러한 감정을 느낀다. 애틋한 영화를 보며 슬퍼하니 말이다. 어느 땐, 타인의 행복에 고통스러울 때도 있으니…. 참 특이한 동물이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뮤(Mui) 교수는 흥미로운 사실을 관찰하였다. 중국의 발전은 도시뿐 아니라 농촌에도 영향을 준다. 빌딩이 높아지면 빌딩의 그림자는 길어지는 법이다. 불평등이 생겼다. 어느 농부는 부자가 되어 경운기를 사들이고, 많은 가축을 키운다. 논과 밭도 많이 소유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농부에게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이 키운 소가 죽고 경운기가 파손되고 작물이 훼손된 것을 발견하였다.

뮤 교수는 부농의 재산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훼손된 것을 관찰한다. 뮤 교수는 이러한 행위를 질투 때문이라 설명한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것이다. 상대의 행복 또는 불행에 관해 관심을 두는 동물은 그리 많지 않다. 인간이 유일하지 않을까. 상대방에 대한 유별난 관심이 인간의 기질(氣質)이라면, 상대의 행복에 미소 짓고 불행에 안타까워하는 기질만 발현될 수는 없을까? 우선, 인간 밖에서 답을 찾아보자.

늑대는 길들일 수 없다. 어떻게 인간에게 친근함을 보이는 개로 진화된 걸까? E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면서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2018년도에 제작된 프로그램이지만, 유튜브를 통해 지금도 시청할 수 있다.]

1960년대에 러시아의 유전학자인 벨라예프(Dmitry Belayaev) 박사의 주도 아래 흥미로운 연구가 진행되었다. 연구팀은 은여우 130여 마리를 ‘실험군’과 ‘대조군’으로 분류하였다. ‘실험군’은 온순한 은여우 집단이다. 그리고 ‘대조군’은 일반적 은여우들로 구성되었다. ‘실험군’에서 교배가 진행되었다. 새끼가 태어나면 공격성이 적은 개체만 따로 번식시켰다. 번식이 거듭될수록 은여우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처럼 행동하게 되었다. 가축화된 개체는 인간의 몸짓을 이해하기까지 했다. 기질만 바뀐 것이 아니다. ‘처진 귀’, ‘말린 꼬리’와 같은 형질이 나타난 것이다. ‘대조군’에서는 기질이 바뀌지 않았다.

늑대는 가축화되지 않았다. 자연선택에 의해 늑대 일부가 개가 된 것이다. 인간의 본성 역시 변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리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적응하며 기질은 변할 수 있다. 다른 동물보다 인간의 적응력은 훨씬 뛰어나다. 늑대와 은여우는 자연선택에 의해 다른 기질을 지닌 개체들로 진화되었지만, 인간은 다른 개체로 진화되지 않고도 기질을 바꿀 수 있다.

인간 안에서 답을 찾아보자. 사회학, 생물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에서 인간의 감정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경제학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진화경제학, 실험경제학, 게임이론 등에서 이타심, 시기심에 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진화게임은 환경에 따라 특정한 기질을 지닌 집단이 번성하는 결과를 보여준다. 두 다른 환경을 고려해 보자. 하나는 승자와 패자가 있는 게임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지 않는 게임이다.

콘래드(K. Konrad) 교수와 슈미트(F. Schmidt) 교수는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게임(승자 독식 게임)에서 이타적인 사람과 시기적인 사람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였다. 더 나아가 슈미트 교수는 시기심이 생존에 더욱 유리한 상황을 설명한다. ‘승자 독식 게임’에서 이타적 개인은 상대방을 위해 경쟁심을 줄인다. 이타적인 개인은 패자가 될 확률이 높다. 이에 반해, 시기적 개인은 승자가 되기 위해 경쟁하고, 승자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더욱이 이타적인 개인의 부는 줄지만, 시기적 개인의 부는 증가한다. 결과적으로 불평등은 커지면서 사회적 부(wealth)는 증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기적 인간이 사회의 주류가 되어 이타적 인간과 공진화하게 된다.

이와 다르게, 이타심을 지닌 인간이 생존에 유리한 결과를 보여준 연구도 있다. 그 결과는 승자와 패자가 없는 게임에서 나타난다. 결과의 차이점은 환경의 차이에 기인한다.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지 않는 게임에서 이타적인 사람은 경쟁심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상대방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자신도 흥하고 상대방도 흥하게 된다. 이에 따라, 유(柔)한 기질을 지닌 인간이 생존에 유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승자와 패자로 구분 지으려 한다. 승패에 대한 의식은 사회의 부를 증가시킬 수 있지만, 불평등의 심화라는 그림자를 수반한다. 환경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인류는 관대함과 이타주의를 배우고 행하고,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 관대함과 이타주의를 행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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