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의 관찰] 이해(understanding)

“우리는 모두 배울 것이 많은 학생이며, 물려줄 것이 있는 스승이다. 나의 멘토는 내가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나의 학생은 내가 실행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얼마 전 필자의 멘토이신 지도교수님이 보낸 내용 중 일부이다.

필자가 지도교수님을 처음 뵌 장소는 교수님 연구실이었다. 벌써 22년 전이다. 펀드를 받지 못하는 상태여서, 등록금을 부모님께 의지하고 있던 시기였다. 생활비는 기숙사를 청소하면서 받은 월급으로 보전하고 있었다. 펀드를 받는 대학원생과 받지 않는 대학원생은 여러 면에서 달리 분류된다. 펀드를 제공받으면 등록금을 납부하지 않는다. 게다가 연구실도 제공받는다. 펀드도 받고 등록금은 면제되고, 연구실을 제공받고… 일거삼득이다.

펀드를 받기 위해 경제학과 교수님 연구실을 개별 방문하였다. 나의 존재를 알리고, 펀드를 제공받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등록금도 면제받고 도서관이 아닌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교수님들께 이렇게 나를 소개하고 펀드를 요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성실합니다. 저에게 펀드를 제공해 주시면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대부분 교수님은 공통된 점이 있었다. 첫째, 친절하다. 둘째, 5분 후 나의 서투른 영어 실력을 확실히 파악한다. 셋째, 면담시간이 아님을 알려준다. 즉, 연구실에서 나가 달라고 요청한다.

지도교수님 역시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여느 교수님과 같았다. 하지만, 세 번째는 다르셨다. 첫째, 친절하다. 둘째, 5분 후 나의 서투른 영어 실력을 100% 인지한다. 셋째, 나에게 앉으라고 한다. 그리고 이면지를 주며 하고 싶은 말을 쓰라고 한다.

이렇게 지도교수님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필자에게 경제학은 어려운 학문이다. 첫 번째 박사학위 종합시험에서 미시경제학 분야가 합격선에 충족되지 않았다. 난리 났다. 몇 개월 후 재시험에 합격하지 않으면, 힘들게 받았던 펀드를 더 이상 제공받지 못하게 된다. 등록금도 납부해야 하고, 도서관이 필자의 안식처가 될 처지다. 재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연구실에서 새벽까지 공부해야 했다. 어느 저녁에 지도교수님이 연구실을 방문하셨다. 이런 말씀을 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너는 창의적으로 영어를 구사한다. 내가 알아들을 수 없으니 말이다. [아…]. 어쨌든 타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것 자체가 훌륭하다. 좋은 결과가 있을 거다. 참고로, 나도 네가 합격하지 않은 분야에 합격하지 못했었다. 재시험에서 합격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타지에서 생활하고 공부하는 필자에게 큰 힘이 되어 주셨다. 운이 좋게 재시험에 합격했다. 힘에 부쳤던 유학 생활이었다. 방황도 많았다. 그때마다 지도교수님은 필자를 도와주셨다. 지도교수님 덕분에 학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귀국하여,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며 살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지도교수님처럼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고 싶어졌다. 교학상장(敎學相長)! 임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도교수님께 또 다른 도움을 받았다. 임용된 후 지도교수님께 기쁜 소식을 알려드렸다. 답장이 왔다. 일반적인 답장은 “축하한다. 열심히 연구해서 좋은 업적 쌓기를 바란다.”가 아닐까? 하지만, 지도교수님은 또 다르게 표현하셨다. “조선대학교는 운이 좋다. 왜냐하면 너를 임용하였기 때문이다(Chosun university is lucky to have you).”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스승으로서 제자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덕담이 아닐까? 당연히 필자가 운이 좋았다. 필자가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소개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도교수님은 필자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셨다. 지도교수님은 제자를 위해 아래로 위치하셨다. ‘이해하다.’ 이 단어는 영어로 [understand]에 해당한다. “아래로(under) 서다(stand)”이다. 필자의 콩글리쉬를 들어주셨고, 필자가 힘들 때 도와주셨고 조언해 주셨다. 그리고 필자를 격려하기 위해 당신의 약점을 보여주셨다. 제자의 위치에서 제자와 대화하기 위해 노력하셨다.

필자는 수업 시간에 지도교수님을 소개한다. 그리고 지도교수님의 홈페이지를 보여준다(www.jshogren.com).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에 중요한 이유는 필자도 지도교수님처럼 학생들을 대하겠다는 다짐이다. 학생의 위치에서 그들을 만나기 위한 노력이다. 그리고 교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함이다. 필자는 복이 많다. 의지할 수 있는 멘토가 있으니 말이다. 필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도교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모두 학생이고 멘토이다. 가끔 상대방의 위치로 가서 함께 걸어가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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