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기관의 거짓말, 어머니는 입양에 동의한 적 없었다"

[372명 해외입양인들의 진실 찾기] ⑮ 친생모와 재회를 통해 드러난 진실

내가 한국 부모님을 처음 찾기 시작한 것은 17살 때였다. 삶은 나를 극도로 힘들게 했고, 나는 어쩌다 보니 내 트라우마 뿐만 아니라 심한 괴롭힘, 인종차별과 내내 싸워야 했다.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나는 내가 자란 스웨덴의 작은 북부 마을을 떠났고 혼자 살면서 심리치료와 약물치료를 하며 우울증을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나는 내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어머니를 직접 만나서 내 입양 서류에 써있는 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그녀가 나를 버린 이유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내 존재가 실수라는 느낌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 아동 입양과 가족찾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스웨덴 입양기관의 입양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은 나를 대신해 나의 입양을 담당했던 SWS(현 대한사회복지회KWS)에 연락했지만, 나는 곧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는 인터넷 검색, 페이스북 재회, DNA 일치 여부 확인 등도 없는 때여서 나는 내가 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 모르고 지내는 삶도 괜찮다며 스스로를 설득하려고 노력했지만, 16년 후에 내가 부모가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내 임신은 고뇌와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고, 어머니 생각이 끊임없이 났다. 내 서류에 따르면, 나를 낳았을 때 그녀는 겨우 15살밖에 안 됐다. 내가 아들을 낳기 전에는, 나 또한 입양이 아이를 원하지 않거나 키울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쉬운 선택이라는 생각에 동의했다. 나는 그들이 아기를 의사에게 넘겨주고 나서 그들의 삶을 다시 살아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양어머니는 항상 우리가 가족이 되었을 운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자라는 동안 나는 그 말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것들을 겪으면서, 나는 내가 모든 것을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어린 아이한테 아이를 낳게 해서 떼어낸 후 지구 반대편의 다른 여자에게 보내 자기 아이라고 부르도록 하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운명적' 이라는 말인가? 내 아들이 자라서 우리의 뿌리에 대해 질문할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뿌리찾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나와 같은 공백을 가지고 자라지 않기를 바랐다.

두 번째 뿌리찾기 시도는 이전과는 달랐다. 온라인과 이메일을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대한사회복지회가 부모님을 찾을 수 없다고 재차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파트너와 나는 직접 찾기 시작했고, 내가 태어난 부산의 친절한 여경을 통해 친생부모를 가까스로 찾아낼 수 있었다. 그 경찰이 내 부모를 찾는 데에는 불과 몇 달 밖에 걸리지 않았고, 나는 대한사회복지회가 수년간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사실 그들은 나의 친생부모 찾기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은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내 배경 서류에 있는 대부분의 정보는 지어낸 것이었고, 게다가 나는 수천 명의 서류상 고아들 중 한 명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거짓말은 어머니는 내가 입양되는 것에 동의한 적이 없었고, 아버지는 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동의할 기회조차 없었다는 것이었다.

내 입양 이야기가 거기서 끝났다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 2014년에 우리 가족과 나는 어머니를 만나 내 입양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나의 입양에 연루된 사람이 기아 업무를 담당했던 부산의 한 아동복지기관과 고아원의 원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복지기관이 사실상 아이들을 팔았다는 것과 뇌물을 기부금으로 기록함으로써 이 일을 은폐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나는 스웨덴으로 돌아와 해외입양을 감독하는 정부 기관에 이메일을 보냈고 내 입양과 관련하여 알게 된 사실을 그들에게 말했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물었지만 그들은 유감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 12월 초 내가 소속되어 있는 스웨덴 한국 입양인 네트워크는 한국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에 우리의 입양에 대한 조사 요청서를 제출했다. 이는 가슴 벅차오르는 중대한 사건이다. 

내 어머니와 나, 그리고 수천 명의 다른 입양인들과 그들의 한국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된 뒤, 나는 입양인 공동체를 위한 진실과 정의를 옹호하는 데 헌신해왔다. 한국은 지난 수십 년 간 꾸며낸 이야기와 거짓 서류로 아이들을 해외로 보냈지만 이제는 정말로 그들이 한 일을 인정하고 그것에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왔다. 그리고 입양 아동을 받은 나라들도 그래야 한다.

▲이 글을 쓴 리사 울림 셰블룸. ⓒ리사 울림 셰블룸

이 글을 쓴 리사 울림 셰블룸은 20년 동안의 치열한 '친생가족 찾기' 과정을 주제로 한 그래픽 노블 <나는 누구입니까>(리사 울림 셰블룸 글.그림, 이유진 옮김, 산하 펴냄)를 쓴 작가다. 그는 2살때 한국에서 스웨덴으로 입양됐으며, 2014년 극적으로 친모를 찾게 됐다. 셰블룸 씨의 두 자녀 테디와 포피는 입양인 자녀의 입장에서 바라본 입양 문제에 대한 글을 본지에 기고하기도 했다. 

지난 9월 283명의 해외입양인들이 진실화해위원회에 입양될 당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조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 11월 15일, 12월9일 두 차례에 걸쳐 추가로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372명으로 늘어났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권위주의 시기에 한국에서 덴마크와 전세계로 입양된 해외입양인의 입양과정에서 인권 침해 여부와 그 과정에서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를 요청한 것이다. 다행히 진실화해위는 12월 8일 '해외 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조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이는 한국이 해외입양을 시작한지 68년의 첫 정부 차원의 조사 결정이다. <프레시안>은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요청한 해외입양인들의 글을 지속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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