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도피 시칠리아 마피아 두목, 병원 기록으로 '덜미'

판사 살해·연쇄 폭탄 테러 혐의 수배 뒤 체포…시칠리아 마피아 약해지자 다른 조직 활개치기도

이탈리아 시칠리아 마피아 두목이 30년 도피 행각 끝에 체포됐다. 조직원들로부터 침묵의 비호를 받으며 은신했던 그가 결정적으로 덜미를 잡힌 계기는 병원 기록이었다.

<로이터>, <AP> 통신, <워싱턴포스트>(WP) 등은 16일(현지시각)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한 사설 병원에서 시칠리아에 근거를 둔 마피아 코사 노스트라의 우두머리 마테오 메시나 데나로(60)가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데나로는 1992년 마피아 단속을 주도했던 판사 2명 살해 및 1993년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밀라노·로마·피렌체에서 폭탄 테러를 주도한 혐의, 같은 해 전 마피아 조직원의 증언을 막기 위해 그의 12살 아들을 납치해 2년 넘게 감금 뒤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 등 수많은 범죄 혐의를 받으며 1993년부터 중요 지명 수배 명단에 올랐다. 

자신이 죽인 시체만 모아도 “공동묘지를 채울 수 있다”고 주장했던 데나로에겐 궐석재판으로 이미 종신형이 선고된 상태다. 데나로의 체포로 1993년 체포된 살바토레 리나, 2006년 체포된 베르나르도 프로벤자노에 이어 시칠리아 마피아 3대 두목이 모두 체포됐다. 앞서 체포된 두 사람은 각 2017년, 2016년에 감옥에서 사망했다.

30년간 도피 행각을 이어오던 데나로의 덜미를 잡은 것은 건강 이상이었다. 수사관들은 최근 몇 달 동안 시칠리아에서 데나로와 같은 나이에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추적해 왔다. 특수 작전을 이끈 파스콸레 안젤로산토 이탈리아 군경찰 대장은 "건강은 은둔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습을 드러내도록 강제하는 요인 중 하나"라며 데나로의 건강 상태에 초점을 맞춰 수사한 결과 그가 이날 병원에 검사와 치료를 위해 나타날 것을 알게 돼 체포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가명을 사용해 통원 치료를 받던 데나로는 경찰이 들이닥치자 순순히 신원을 밝히고 체포에 응했다고 한다. <AP>는 당국이 데나로가 어떤 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는지 공개하지 않았지만 데나로가 체포된 병원은 암 전문 병원으로 현지 언론이 그가 1년 가량 치료를 받았다고 보도했다고 전했다.

데나로의 사진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나이 든 모습을 추측해야 할 정도로 당국은 추적에 애를 먹어 왔다. 합성 사진을 배포한 뒤 2021년 한 영국 남성이 네덜란드에서 오인 체포되기도 했다.

당국은 상대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시칠리아 내에서 데나로가 수십 년 간 적발되지 않은 배경에 이른바 '침묵의 규율(오메르타)'을 지키는 조직원들의 비호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2013년 데나로의 여동생이 체포되는 등 주변 인물들이 연이어 체포되고 자산이 압수되며 점차 데나로는 고립돼 갔다.

데나로는 도피 생활 중에도 조직을 지휘한 것으로 보인다. 데나로는 폭력 외에도 풍력 발전을 포함해 여러 사업에도 손을 댔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시칠리아 마피아 조직이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마스크 제조업에까지 진출했다고 덧붙였다.

영국 BBC 방송은 "수년 간 데나로는 범죄조직의 상층부에 접근할 수 없다는 국가의 무능을 상징했다"며 데나로 체포가 "국가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이탈리아 남부 지역에서도 마피아가 근절될 수 있다는 희망의 신호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르지오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데나로 체포가 "마피아에 굴복해선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국가의 위대한 승리"라며 반기기도 했다.

다만 데나로 체포가 곧 마피아 근절이라고 봐서는 곤란하다는 경고가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데나로에 대한 책을 쓴 이탈리아 언론인 리리오 아바테가 데나로 체포가 시칠리아 마피아 약화에 기여하겠지만 범죄조직에 대한 "치명타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아바테는 경찰이 수십 년간 끈질기게 조직 수장들을 감옥에 넣고 자산을 압수하며 시칠리아 마피아를 약화시켰지만 남부 칼라브리아주를 근거지 삼은 은드라게타, 남부 캄파니아주에 기반을 둔 카모라 등 다른 마피아 조직이 그 자리를 차지해 활개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마우리치오 데 루치아 팔레르모 검사도 기자회견에서 "마피아는 근절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큰 실수"라고 강조했다.

▲16일(현지시각) 이탈리아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30년간 도피 행각을 벌인 시칠리아 마피아 두목 마테오 메시나 데나로(60)가 연행되는 모습.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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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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