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얌체와 염치

예전에 모음에 변화를 주어 의미를 바꾸는 것에 대하여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늙다’와 ‘낡다’, ‘남다’와 ‘넘다’ 등의 예로 들면서 모음을 바꿔서 의미를 새롭게 하는 단어들을 예로 들었다. 오늘 주제로 삼은 두 개의 단어 역시 이와 동일한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시작은 염치에서 비롯되었다.

한자 성어 중에 예의염치(禮義廉恥)라는 단어가 있다. 이 말은 효제충신(孝悌忠信)과 어울려 유학의 기본 덕목이다. 예의염치라는 말은 하나 씩 구분하여 말하자면 예절과 의리와 청렴함과 부끄러움을 말한다. 흔히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라고 말하는데, 이 때의 염치가 바로 부끄러움과 청렴함을 이른다. 결국 염치란 “남에게 신세를 지거나 폐를 끼치거나 할 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말한다. 여기서는 부끄러움의 의미가 조금 더 강하다고 본다. 즉 염치를 아는 것은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마음에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이에 반대되는 말로 파렴치(破廉恥)라는 말이 있다. 남의 신세를 지고도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을 말한다. 글자 그대로 ‘염치를 깨뜨린 사람’이라는 말이다. 요즘은 염치가 없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 필자도 선거가 끝나고 염치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선거 때 신세지고도 인사도 안 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현수막에 “고맙습니다.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쓴 것에는 관심이 없고, 하나하나 전화를 해서 감사의 인사를 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선거 때 도와 준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니고 모두에게 인사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염치없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파렴치범이 된 것이다. 한편 선거에서는 별로 힘도 보태지 않고 금전적으로 요구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내 주변에 사람이 많은데 이들을 동원하자면 자금이 좀 필요하다.”고 하면서 경제적 도움을 기대하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이런 사람들을 파렴치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도와주기보다는 경제적 손실만 입히고 선거법 위반으로 신고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럴 때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보고 ‘얌체’라고 한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자기에게 유리한 행동만 해서 얄미운 사람”이라고 나타나 있다. 예문으로는

너 계속 그렇게 얌체같이 행동하면 점점 친구들이 너에게서 멀어질 거야.

얌체같이 새치기 하지 말고 줄을 서자.(<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 인용)

그러니까 얌체라는 말은 한자어 염치(廉恥)에서 유래한 말인데, 의미가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보통은 ‘늘다’와 ‘낡다’처럼 의미의 확장을 하는데, 얌체의 경우는 염치와 상반되는 의미로 바뀐 것이다. 과거에는 ‘염치를 차리다’와 같이 비교적 본래의 의미를 담고 있었는데, 얌체는 어형이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의미도 상당히 달라졌다. ‘염치>얌치>얌체’의 과정을 거치면서 변했는데, 긍정적인 의미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완전히 바뀐 것이 특이하다. ‘염치’는 청렴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데 반해 ‘얌체’는 염치가 없는 사람으로 변했으니 가히 그 어형의 변화 과정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요즘 새로 나온 말 중에 ‘얌통머리 없는 놈’과 같은 단어도 생겨났다. 이는 얌치를 속되게 이르는 말인데, ‘얌치’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마음이 맑고 깨끗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라고 나와 있다. 그러므로 얌치가 염치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얌치’의 큰 말로 ‘염치’가 쓰인 것으로 보아 염치에서 얌치가 유래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여기서 더 나아가 ‘얌체’가 나왔다는 것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질서 정연하고 도덕적인 모습이다. 카페에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두고 가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에 외국인들은 아연실색한다. 우리 고유의 문화가 염치를 아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얌체족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한국적인 모습이 아니다. 2022년을 보내며 2023년에는 더욱 예의염치를 아는 한민족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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