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회 간 젤렌스키 "우크라 지원은 자선 아닌 투자" 초당적 지지 호소

바이든과 정상회담 뒤 "영토 타협 없다" 못 박아…매카시 "백지 수표 반대 입장 변화 없어"

미국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 러시아와 영토에 관해 타협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이어진 미 의회 연설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원은 "자선이 아닌 투자"라며 지속적인 초당적 지원을 호소했다.

21일(현지시각) 젤렌스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2시간에 걸친 정상회담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대통령으로서 내게 '정의로운 평화(just peace)'란 주권·자유·영토 보전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것"이라며 러시아와의 종전 협상을 위해 우크라이나 영토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견에서 "기간이 얼마나 되든 필요한 만큼"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2023년까지 단결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 전쟁이 길어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우크라이나의 평화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확히 같은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과 동맹이 "우크라이나가 전장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을 돕는 것"에 계속해서 집중하겠다고 밝히고 전장에서의 성공이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와 대화할 준비가 됐을 때 성공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둘 다 전쟁이 끝나기를 원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철수하라'고만 한다면 오늘이라도 끝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며 푸틴 대통령을 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현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고 말했다"며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분열시키고 서방을 분열시키고 동맹을 분열시키고 러시아어를 쓰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틀렸다"고 지적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20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점령지 상황이 "극단적으로 복잡하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회담 전 공개 발언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미국인에게 감사"를 표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의회 구성에 어떤 변화가 있든 초당적 지지가 유지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지난 11월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현재 민주당이 다수인 미 하원은 내년 1월부터 공화당 다수가 된다. 공화당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백지 수표'는 없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 의회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원 패키지에 대해서도 "450억달러(약 57조3120억원) 지원안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이는 큰 도움이 될 것이며 미 의회가 이를 승인하기를 희망한다"고 호소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및 경제 원조안이 포함된 이 지원안은 미 의회에서 이번 주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패트리어트 미사일 시스템을 포함한 18억5000만달러(약 2조3561억원)에 이르는 추가 지원 계획을 발표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견에서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더 얻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도 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이 "노력하고 있다"며 웃음을 터뜨리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안하다. 하지만 우린 전쟁 중이다"라고 해명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대공 방어를 크게 강화할 것"이라며 안전한 영공을 만드는 것이 "에너지 부문·우리 국민·우리 기반시설에 대한 공습"으로부터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가을부터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에 대한 집요한 공습을 지속해 오고 있으며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혹한기에 난방과 전력 부족에 고통 받고 있는 상황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19년 가진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며 푸틴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날 전쟁으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고통을 언급하며 "복수"를 위해 사는 이들이 늘고 있고 이는 "엄청난 비극"이라고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처한 "비인간적" 상황을 묘사하기도 했다. 

이날 정상회담 뒤 미 의회를 방문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미 우리에게 제공한 자금 원조와 향후 결정될 수 있는 지원안에 대해 너무나 감사하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자선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가장 책임감 있게 다루고 있는 세계 안보와 민주주의에 대한 투자"라며 지속적 지원을 호소했다. 그는 "이란제 드론 수백 대가 러시아로 옮겨져 우리 주요 기반시설을 위협했다. 이는 한 테러리스트가 다른 테러리스트를 찾은 사례다. 지금 우리가 그들을 막지 않으면 그들이 미국의 다른 동맹을 타격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이 미국과 서방 동맹에도 이익이 된다고 설득하기도 했다. 그는 또 "테러리스트들이 침공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자"며 "러시아에 대한 제재 강화"를 촉구했다.

30분 가량 이어진 연설 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병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우크라이나 국기를 낸시 펠로시 미 하원 의장에게 전달했다. 전날 최전선인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바흐무트를 방문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그곳 병사들은 미 의회에 전달해 달라며 자신들의 이름을 적은 국기를 건넸다.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및 기자회견, 이어진 의회 연설에 정장이 아닌 국방색 티셔츠 차림으로 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의회 연설 중 많은 의원들이 몇 번이나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지만 우크라이나 지원에 비판적인 입장인 소수의 공화당 의원들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고 전했다.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 등 우크라이나 지원에 회의적인 몇몇 공화당 의원들은 연설 중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매체는 연설 뒤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내 입장엔 변함이 없다. 나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지만 백지 수표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칩 로이 공화당 하원의원은 이 연설이 "퇴임을 앞둔 민주당 의회 지도부의 정치극"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분석가들이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번 미국 방문에서 미국과의 동맹이 강력히 유지되고 있음을 보이는 동시에 전쟁이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점을 강조해 초당적 지원을 지속하는 데도 중점을 두었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왼쪽)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오른쪽)이 21일(현지시각) 미 워싱턴DC 의회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달한 우크라이나 국기를 펴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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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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