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노동자들이 '임금노동자'였다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복지국가와 일 하는 사람

20세기 복지국가와 '임금노동자 되기'

20세기 복지국가의 시작을 알린 제도는 19세기 말 독일에서 시작된 사회보험이었다. 사회보험은 국가가 빈민을 대상으로 한 잔여적 지원을 넘어 생산인구를 포함하는 인구 대다수에게 사회적 보호를 제공한 최초의 제도였다. 사회보험이 그 대상으로 포괄하고자 한 집단은 생산을 담당하는 계급, 즉 '임금노동자' 계급이었는데, 이는 20세기 복지국가가 '임금노동자 문제'의 해결을 위한 체제였다는 평가를 받는 까닭이기도 하다.

19세기에 이루어진 자본주의적 산업화의 확대는 생산인구의 다수를 '임금노동자', 즉 오직 시장에서 노동력을 판매함으로써 소비능력을 획득하는 집단으로 변화시켰다. 이들은 종전의 생산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이었던 농업 자영자와 달리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시장에서 더 이상 노동력을 판매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소비능력이 완전히 단절된다는 위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여기에 산업화와 함께 이루어진 도시화는 이들이 비상시에 기댈 수 있는 전통적 공동체의 해체를 수반했기에 대안적 보호에 대한 사회적 필요는 더욱 높았다.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한 사회보장제도는 바로 이들 임금노동자가 노동력을 판매하기 어렵게 하는 상황, 즉 질병, 노령, 장애, 사망, 실업과 같은 위험에 처했을 때 보호를 제공하는 제도로 마련되었다.

임금노동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사회보험만은 아니었다. 임금노동자 보호의 가장 핵심적 장치인 노동법 역시 임금노동자 보호를 위해 제도화되었다. 노동력을 판매한다는 것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그 노동력과 분리할 수 없는 노동자의 '인격'과 관련된 문제를 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노동력을 판매하는 노동자와 구매하는 기업 사이의 관계는 일반적 계약과 달리 수평적이거나 동등하지 않다. 이는 노동력을 거래하는 노동자의 신체적·경제적 안전을 보장하지 위한 장치를 필요로 하는데 이를 위해 고용계약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임금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행동하고 교섭함으로써 스스로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제도를 필요로 한 것이다. 요컨대 노동법은 사회보장제도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노동이라는 상품화할 수 없는 것을 상품화한데 따른 최소한의 제어장치였다.

21세기 복지국가와 '임금노동자 못 되기'

20세기 복지국가가 '임금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체제로 출발하여 그 범위를 확대해온지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복지국가와 노동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복지국가가 해결해야 할 과거의 문제가 '임금노동자 되기'에 따라 생겨났다면, 지금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임금노동자 못 되기'에 따라 생겨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의 역전은 20세기 복지국가의 사회적 보호, 특히 노동법과 사회보험이 '임금노동자'라는 지위에 결부되어 형성됐기 때문이다.

전통적 복지국가가 임금노동자를 중심으로 보호체계를 형성한 것은 산업화가 진전되고 경제가 고도화될수록 생산에 종사하는 이들은 임금노동자와 임금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용자로 양분될 것이라는 생각에 기초했다. 물론 임금노동자나 사용자로 보기 어려운 자영업자가 언제나 경제활동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을뿐더러 점차 감소할 것이라고 여겼다. 뿐만 아니라 어쨌든 자영업자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자신의 노동에 대한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임금노동자만큼 취약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임금노동자도, 사용자도, 그렇다고 전통적인 자영업자도 아닌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혹은 좀 더 최근에는 '노무제공자'로 불리는 이들이다. 이들은 고용계약 하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임금노동자가 아니며, 다른 임금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사용자도 아니다. 자율적으로 자신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사업에 종속되어 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 자영업자와도 다르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모호한 지위는 이들이 사회적 보호가 형성되기 이전의 임금노동자와 유사한 취약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사회적 보호로부터 배제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노동문제의 많은 부분이 이와 관련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화물연대의 파업에서 문제가 되었던 화물차 운송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임금, 노동시간 등은 임금노동자라면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에 따라 규율할 수 있는 문제다. 배달, 대리운전, 퀵서비스,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권과 사회보장권에 관한 문제 역시 이들이 임금노동자였다면 기존의 제도를 통해 큰 논란 없이 해결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들은 임금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종속적 지위에서 노동하기에 임금노동자에게 부가되는 위험을 공유하지만, 임금노동자 지위에 들어가지 못했기에 지난 세기에 형성된 사회적 보호에서 배제되어 있다. 한 세기만에 전복된 '임금노동자 못 되기'의 문제다.

▲ 안전운임제 일몰제를 폐지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 나선 화물노동자들이 자신의 차량 번호를 목에 건 채 행진하는 모습. ⓒ연합뉴스

기업의 선택과 일터의 균열

임금노동자도 아니고 자영업자도 아닌, 국제노동기구(ILO)의 표현을 빌자면 '종속계약자(dependent contractor)'로 불리는 이들이 증가한 배경에는 경제와 산업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현대의 선진 복지국가 대부분에서 경제와 고용의 중심에는 서비스 산업이 자리하고 있는데 서비스 산업은 20세기 복지국가의 중심이었던 제조업과는 여러 측면에서 다르다. 서비스 산업에서는 제조업과 달리 장기고용을 통한 특정적 숙련(specific skill)의 필요성이 적고, 생산물을 재고로 보유할 수 없기에 고용 유연성 요구가 높다. 여기에 20세기 말부터 가속화된 국제적 규모의 분업과 경쟁은 노동비용이라는 고정비를 감축하고자 하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경제와 산업의 변화에 발맞추어 고용을 줄이고, 유연화하고, 외부화하고자 하는 유인이 증가했다.

비교적 최근에는 ICT 기술의 변화 역시 고용관계를 형해화하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업이 시장으로부터 노무를 구입하지 않고 고용관계라는 위계조직을 활용하는 것에는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라는 목적이 있다. 그런데 ICT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 고용관계를 맺지 않고도 기업 밖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앱과 알고리즘으로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이 그 예이다. 노무를 제공하는 이들의 노동과정을 이 정도로 통제하기 위해 과거에는 반복적 관계를 전제한 고용계약을 필요로 했지만, 이제 기업은 알고리즘을 통해 간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경제와 산업의 변화도, 기술의 발전도 그것이 직접적으로 고용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에서는 기업의 '선택'을 경유한다. 산업이나 기술의 변화가 종속계약자 등장의 '배경'이라면 직접적 원인은 기업의 전략에 있다. 그리고 그 전략의 목적 중 적어도 일부분은 지난 세기에 만들어진 임금노동자에 대한 보호책임을 우회하는 것이다. 이는 종속계약자의 본격적 증가 이전에 이미 나타났던 노동시장 변화가 기간제나 시간제 등의 비정규 고용, 파견과 하청 등의 간접고용을 통해 기업의 노동자에 대한 직접 책임을 완화하는 경향이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데이비드 와일이 '균열 일터' 혹은 '고용 털어내기'라고 설명한 현상이다.

물론 기업 역시 완전히 자유로운 상황에서 선택권을 행사한 것은 아니다. 국제적 경쟁의 압력 속에서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 일터의 균열이 나타났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동일한 압력 아래 있다고 모두가 동일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은 그 기업을 둘러싼 제도적 환경 속에서 행위하며, 그 결과 일터의 균열 정도는 국가마다 기업마다 상이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환경 속에서 우리 기업의 선택은 더 많이 균열된 일터로 이어졌다.

모든 일 하는 사람을 위한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

우리의 노동시장 환경과 기업의 선택이 더 많이 균열된 일터를 만들어왔다는 점은 현재 제기되는 종속계약자 문제 중 적어도 일부는 근로자 오분류(현재의 법적 기준으로 근로자에 해당하는 이를 자영업자로 잘못 분류한 것)에 기초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의미한다. 따라서 종속계약자 보호에 관한 제도의 출발점은 오분류의 시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오분류는 오분류된 근로자의 권리를 박탈할 뿐 아니라 오분류한 기업이 경쟁기업과의 관계에서 부당한 규제차익을 누리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분류의 시정만으로 '임금노동자 못 되기'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종속계약자 중 상당수는 현재의 노동법에서 근로자로 분류되기 어렵다. 이는 부분적으로 근로자에 대한 법적 표지를 재조정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으며 실제로 이와 같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끊임없이 유동하고 있는 노동시장을 고려하면 이 또한 불완전할 가능성이 크다.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노동자 못 되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노동자가 못 돼도 상관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20세기 복지국가의 제도들이 '임금노동자'를 주된 대상으로 한 것은 이들이 보호를 필요로 하는 계급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금노동자 뿐 아니라 다른 방식의 종속적 노동을 하는 이들이 보호를 필요로 하는 지금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보호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보호를 제공하는 것이다. 요컨대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로 대표되는 사회적 보호의 범위를 임금노동자 뿐 아니라 모든 일 하는 사람에게로 – 보호의 유형에 따라서는 '일 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에게로 – 확대해야 한다.

사실 이와 같은 노력은 이미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노동법에 있어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노동조합법상 노동자 기준을 달리하여 범위를 확대한 것이, 사회보장제도에 있어서는 '전 국민 고용보험'과 '전 국민 산재보험'을 지향하며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보호 대상으로 포괄한 것이 그 예이다. 한 편에서는 반대방향의 시도들도 나타나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사업주 담합'이라는 입장을 제시한 공정거래위원회나 고용보험의 재정문제를 들어 전 국민 고용보험을 늦추고자 하는 시도 등이 그것이다.

고용형태가 다변화되고 종전의 표준적 고용이 해체되어 가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라면, 그에 대응하여 모든 일 하는 사람을 위한 보호를 제공하는 것도 당연히 시대적 흐름이다. 경제와 산업, 기술의 변화 속에서 고용관계의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 인격과 분리되기 어려운 노동을 제공하는 계약을 맺은 사람의 불안정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임금노동자 문제 해결이 20세기 복지국가의 출발점이었던 것처럼 모든 일 하는 사람을 위한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는 21세기 복지국가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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