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정부 노동개혁 밑그림 발표…"주 최대 69시간 가능 "

양대노총 "장시간 노동 더욱 심화될 것…전면 재검토 촉구"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의 밑그림이 나왔다.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발족한 전문가 기구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노동시간·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최종 권고안을 12일 공개했다.

연장노동시간의 관리 단위를 기존 1주일 단위에서 주·월·분기·반기·연 단위로 개편하고, 호봉(연공) 중심 임금체계 대신 성과·직무 중심으로 개편하는게 핵심이다.고용노동부는 권고안에 담긴 과제들을 검토해 연내 또는 내년 초에 입법 일정 등을 담은 구체적인 추진 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다.

하지만 양대노총은 정부의 '노동개혁안'에 대해 "노동자 선택권을 빙자한 장시간노동체계로의 회귀"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시장의 한 축인 노동자가 윤 정부의 정책방향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어떻게 풀어낼지 주목된다.

'주 최대 92시간' 우려에 11시간 연속휴식 부여했지만...

현재 법정노동시간은 1주 40시간이다. 여기에 연장노동시간은 1주에 12시간까지 가능하다. 즉, 연장노동시간을 포함해도 주 52시간을 넘기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번 노동개혁을 통해 연장노동시간의 관리 단위를 1주일에서 '월·분기·반기·연'으로 확대하면 주 노동시간을 52시간보다 늘릴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현행 주 1주 연장노동시간은 12시간이지만, 이를 월 단위로 확대하게 될 경우. 1주에 가능한 연장노동시간(12시간)에 평균 주수인 4.345주를 곱하면 월에 연장 가능한 노동시간은 52시간이 된다. 다만, 노동시간 단위를 월 단위로 확대했기 때문에 이 52시간은 한 주에 몰아 쓸 수도 있게 된다.

이 때문에 1주 법정노동시간인 40시간에 월 연장노동시간 52시간을 한 주에 몰아쓸 경우 한 주 최대 92시간 근무가 가능해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부 발표 초기 이같은 우려와 논란이 계속되자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권고안에 "연장노동시간 관리단위를 월 단위 이상으로 할 경우 노동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을 부여하는 등 건강권 보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를 강제할 제도적 대안을 제시하진 않았다.

만약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권고안대로 11시간 연속 휴식을 부여한다고 하면 주 최대 근무시간은 92시간이 아닌 '69시간'이라는 게 고용부와 연구회의 설명이다. 근로기준법은 일주일에 하루 이상의 휴일을 반드시 보장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권순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구회는 연장노동시간 관리단위를 확대하더라도 주52시간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월 단위 이상으로 할 경우에는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를 통해 도입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연구회 좌장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월 단위로 확대하는 경우 주당 근로시간이 연장근로시간 한도까지 포함하면 69시간까지 가능한 것은 맞다"면서도 "(주 69시간 역시)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가정이기 때문에 빈번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노동자가 일하는 날과 출퇴근 시간 등을 선택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도 3개월로 늘리도록 제안했다. 선택근로제는 정산기간(3개월)의 평균 노동시간을 1주 52시간 이내로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노동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데, 최대 노동시간에 대한 규제가 없다. 극단적으로 계산을 하게 되면 정산 기간인 3개월 동안 전체 노동시간을 한 달 철야 근무로 몰아 쓸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안전장치도 필요해 보인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노동자가 원하는 경우 연장·야간·휴일노동 등에 대한 보상을 시간으로 저축해 휴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을 권고했다. 이밖에도 야간노동에 대한 보호 조치 마련과 탄력적 노동시간제의 사후 변경절차 보완 등을 제시했다.

임금체계와 관련해서는 현재 우리나라의 주류를 차지하는 연공서열식 호봉제를 비판하며, 성과 중심 직무급제로 나아가기 위해 사전 작업들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임금체계가 없거나 미약한 중소기업의 임금체계 구축을 정부가 지원하는 한편 임금 공정성을 확보하고 격차 해소를 위한 사회적 대화 기구로 ‘상생임금위원회’를 설치하라는 권고도 내놨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안에 바로 화답했다. 이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권고문에 구체적으로 담겨있는 임금과 근로시간 제도는 빠른 시일 내 입법안을 마련하겠다"며 "노동시장 개혁을 기필코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정부 노동개혁의 전제조건은 권고문에 적힌 대로 "노사 당사자의 이해관계는 '자율'의 힘으로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장노동시간의 관리단위를 월 단위로 확대하더라도, 근로자 대표 혹은 개별 노동자의 동의를 얻어 실시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유명무실한 근로자 대표 제도를 정착할 방안이 병행되지 않는 데다, 노조 조직률이 14.2%에 불과한 한국에서 다수 사업장의 경우 노동시간 관리는 사용자의 작업지시권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된다는 현실을 간과한 권고안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5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대 노총 "사용자 지시 거절할 수 없는 현실에서 노동시간 '자율'선택권 확대가 무슨 의미인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모두 정부의 노동개혁 방향에 강한 반발을 보였다. 특히 노동시간과 관련해 "사용자의 노동시간 활용 재량권을 넓혀 집중적 장시간노동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민주노총은 이날 논평을 내고 "재벌과 사용자들의 요구에 따라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체제'를 유지.강화하기 위한 노동 개악"이라며 "안 그래도 사용자 편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진 한국의 현실에서 이번 권고문이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으로 추진, 실현되면 그 기울기는 이제 수직에 가깝게 변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동 시간에 대해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조차 결성하기 힘들고 사용자의 재량에 의해서 노동시간이 강제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선택', '자율'이란 말 자체가 허황되다"며 "건강권 보장방안이라고 내놓은 유일한 것은 11시간 연속최소휴식시간제인데, 보편적 적용이 아니기도 하고 24시간 내 11시간 휴식제가 아니라서 장시간 노동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임금체계 개편안에 대해서도 "성별 차이, 정규직 비정규직의 차이, 원청 하청의 차이 구분 없이 노동자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일의 노예로 만들겠다는 주장"이라고 강하게 힐난했다. 이어 "연공급이 불공정하다는 불만이 현장의 많은 젊은이들 안에서 나오고 있다고 하지만, 이는 연공급의 불공정이 아니"라며 "비정규직으로 1년을 일하나 10년을 일하나 임금이 똑같다. 이는 직무급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임금을 적게주는 저임금 체계를 만들어 가는 사업주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과 금융,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체만 고임금의 연공급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나마 노동조합이 있어서 지금의 고용과 임금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노동조합이 있어서 연공급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있어서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나은 임금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권순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왼쪽 두 번째)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노총도 "노동자 선택권을 빙자한 장시간노동체계로의 회귀"라며 "장시간노동과 저임금체계가 고착화된 현실, 낮은 조직률(14.2%)로 대부분 사업장에 노조도 없는 현실에서, 사용자의 업무지시를 거절할 수 없는 현실에서 말뿐인 노동시간 자율선택권 확대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사용자의 노동시간 활용 재량권을 넓혀 집중적 장시간노동은 더욱 심화되고 이는 고용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임금체계 개편안에 대해서도 "사용자단체가 오랜 숙원과제로 제시해온 임금 억제 정책에 정부가 맞장구를 쳐준 모양새에 불과하다"며 "임금격차의 원인은 수많은 요인에 의해 결정됨에도 연공급형 임금체계만을 문제로 규정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노총은 "이해당사자인 노동계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정부 입맛에 맞는 학자들을 동원하여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구성 및 운영하여 결론 내는 행태는 절차적으로 정당하지 않고, 정부가 미리 정해놓은 장시간노동 저임금체계라는 결론에 학자들의 논리를 더해 장식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며 "전면적 재검토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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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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