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발달장애 어린이를 키우며, 사회서비스 노동자 파업을 지지하는 이유

[기고] 껌 씹듯이 버려지는 사회서비스 정책…돌봄 노동 존중하라

나는 11살 된 발달장애가 있는 어린이를 양육하고 있다. 발달장애 양육자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실종 신고들이 올라온다. 찾지 못한 경우 종종 시신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기후 위기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재난들이 닥쳐온다는데 발달장애인은 피해 일순위에 있다. 지난여름 폭우에 사망한 이들 중 발달장애인은 두 명이나 있었다. 코로나시기를 경과하면서 발달장애인 존속 살해 사건들이 뉴스를 도배했다. 함께 사는 가족이 장애 당사자를 살해하는, 끔찍하고도 비참한 사건들을 연일 마주해야 했다.

장애를 말할 때 더 이상 죽음이나 비참함만 거론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장애는 치명적인 결점이나 약점이기 이전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특성일 뿐이다. 결점이나 약점으로 만드는 건 사회 구조에서 기인한다며 가족들을 비롯한 장애계에서는 비장애 중심 사회의 변화를 촉구해왔다. 물리적인 환경이 구축된다면, 지원과 조력을 받을 수 있다면 장애인들이 권리를 가진 주체로 당당히 살아나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제도들과 네트워크의 뒷받침이 절실히 필요하다. 의료나 교육 현장, 가까이에서 지원과 조력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노동 역시 필수다. 그러나 장애인 활동지원, 요양보호, 유아·어린이 돌봄 등 인간 생애에 필요한 사회 서비스 현장에는 오히려 비정규직들이 많다. '민간기관'의 활동지원사들은 장애인들을 지원하는 여러 노동을 제공하지만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다. 학교에서 장애 학생들을 가장 많이 보고 대하는 사람은 비정규직 실무사들이다. 불안정 노동에 기댄 조력과 돌봄은 그 서비스를 받는 사람의 삶도 불안하게 만든다. 돌봄 노동자의 권리가 돌봄을 받는 대상의 권리와 등치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실 매우 불안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복지 예산이 가장 먼저 삭감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공적 돌봄을 본격화하며 어린이, 장애인, 노인 등의 사회적 약자들을 국가의 책임으로 돌보고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사회서비스원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이 시에 요구한 내년도 출연금 요구액 168억 원 중 100억 원이 삭감된 것이다. 넉 달 치 월급 주면 끝날 액수라 하니, 경영진 측에서도 사업 운영을 할 수 없다고 우려를 전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 한다. 노조에서는 '예산 테러'라고 규정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100억 삭감이면 더 이상 사업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29일 오전 서울시 중구 서울시 의회 앞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노조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내년도 예산 100억 삭감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노조는 서울시 의회 보건복지위가 내년도 출연금 요구액 168억 중 100억 원을 삭감했다고 알려졌다"라며 " 서울 사회서비스원이 담당해 온 공공돌봄 사업에 심각한 지장을 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그간 한국 사회는 경제위기를 거치며 국가의 기간산업들이 민영화되었고 많은 문제들을 야기해왔다. 공공영역의 핵심 부문인 돌봄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활동지원사를 투입하는 민간기관들에서는 중증의 장애인 연계가 거의 불가능하다. 장애 상태나 정도를 보고 픽업되듯이 매칭 되고 있어서 중증 장애인들은 활동지원사를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24시간 지원이 되지 않아 화재가 난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한 장애인들을 목격한 것도 수차례, 장애인들에게 놓인 참담한 조건 속에서 전문성 있는 활동지원사들의 24시간 지원과 케어를 유일하게 받을 수 있는 곳은 사회서비스원이었다. 저출생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정작 이들을 보호할 장치들은 무자비하게 없애버리다니, 이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선전 포고다. '약자와의 동행'을 말하는 여당의 캐치프레이즈는 표를 구걸할 때에만 유효했다.

사회서비스원 예산 삭감 폭거를 자행하면서 감사를 하던 국민의 힘 의원은 어린이집에 입소한 유아들이 먹는 간식비가 평균은 2,500원 선인데 사회서비스원은 4,000원이라고 지적했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빵과 우유만 사도 4천원이다. 임대료가 쓸 데 없이 높다고도 따졌다. 부동산 이득을 챙기며 임대료나 올리는 건물주들의 편에 선 정치인들이 할 말인가. 다른 어린이집 아이들의 간식 단가가 낮다는 생각은, 더 여유 있고 좋은 공간에서 돌봄을 제공하겠다는 생각은, 이들의 머릿속에 없다.

부자 감세로 인해 복지 정책부터 타깃 된다는 건 바로 아이들 먹을 것마저 깎는 후안무치함, 헐값에 얻을 수 있는 돌봄 공간 같은 것이다. 사람을 돌보고 살리는 일에는 전문성을 갖춘 노동과 일정 정도의 자원이 투여되어야 한다. 국가가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할 일들이나 현 정권은 그럴 계획이 없다. 단 한 번도 장애인의 위치에서, 어린이나 노년의 위치에서 세상을 감각해본 적이 없는 자들, 이들과 교류하며 돌보고 살리는 노동의 권리는 쉽게 묵살하는 자들, 안타깝지만 우리는 이들의 손에 권력을 쥐어주었다.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 덧 한 달이 다가온다. 국가가 나서서 사회서비스원을 없애는 것 역시 재난을 방조하고 만들어내는 꼴 이상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투명 인간 취급하며 노골적으로 공공 서비스를 없애고, 반노동자적인 행위들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저들의 작태에 맞서 공공-운수-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고 있다. 특히 서울시사회서비스원 노동자들이 그 중심에 있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철도가, 화물이, 의료 현장이, 복지현장이 멈췄을 때 겪는 수많은 불편들을. 그러나 노동자가 파업하면서 대중들이 느끼는 불편은 이들의 노동이 일상에 끼치는 중요성을 체감하는 일과 같다. 게다가 중증장애인들에게 공공 돌봄 사업의 폐지는 언제 죽음의 위기기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생존의 도구를 빼앗기는 것이다. 이를 되찾는 싸움에 어찌 불편하다는 낙인을 보낼 수 있는가. 모두의 안전과 삶을 지키겠다고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지만 사실상 이는 사회적 약자들과 시민들의 의제이기도 하다. 더 폭넓게 지지의 목소리를 모으고 함께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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