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시위 사망자 200명 넘었다…軍 쿠르드 가정집 향해 발포도

시위에 '이슬람 혁명' 이끈 석유 노동자들 가세…시위 변곡점 될지 주목

한 달 가까이 지속되는 반정부 시위를 가혹하게 탄압하고 있는 이란 보안군이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시위 현장에서 가정집 내부에 발포를 했다는 인권단체의 주장이 나왔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지난달 시위 배후라며 이라크 쿠르드 거주지까지 공격한 가운데 쿠르드족에 대한 추가적 탄압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편 이란 경제의 근간인 석유 산업 노동자들의 합류가 시위의 전환점이 될지 이목이 쏠린다.

11일(현지시각) 국제앰네스티는 이란 북서부 쿠르드족 거주지인 사난다즈에서 시위 진압에 나선 보안군이 총기와 최루탄을 "무차별적으로" 발사했다는 보고를 접했다고 밝혔다. 단체는 보안군의 발포가 일반 주택 내부에서까지 이뤄졌다며 우려를 표했다. 쿠르드 인권단체 헹가우(Hengaw)는 이날 지난 3일간 쿠르드 거주지에서 시위에서 적어도 5명의 시민이 사망했고 400명 이상이 다쳤다고 했다. 단체는 보안군이 시위 진압 과정에서 기관총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쿠르드 거주지 10곳 이상의 도시에서 시민들이 총에 맞아 사망한 사례가 발견됐고 이 중 적어도 4명이 10대라고 밝혔다. 단체는 쿠르드 거주지에서만 현재까지 시위 진압으로 인해 32명이 죽고 1541명이 다쳤으며 2500명이 넘게 체포됐다고 했다. 12일 노르웨이에 기반을 둔 이란인권단체(IHRNGO)는 시위 진압 과정에서 현재까지 23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적어도 201명이 보안군에 의해 숨졌다고 주장했다. 히잡을 부적절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지도 순찰대에 끌려간 뒤 지난달 16일 사망한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22) 사건 뒤 이란 전역에선 여성·대학생·청소년들까지 동참한 전국적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헹가우가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한 시위 영상을 보면 10일 밤 사난다즈 시위 현장에선 다수의 총성과 비명소리가 들리고 섬광이 보인다. 다른 영상에선 보안군이 주택 내부를 직접 겨냥해 총을 발사하는 장면이 공개됐다. 단체는 사난다즈에 남겨진 다수의 총탄 영상도 게시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시위 배후 세력에 대한 보복을 경고하며 우려를 자아냈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에 따르면 호세인 살라미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10일 전사자 추모 행사에 참석해 이란에서 일어난 "폭동"을 조장한 "적들"에게 가까운 시일 내에 보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혁명수비대는 지난달 정부가 쿠르드 세력이 시위를 조장하고 있다고 밝힌 뒤 이라크 영토 내 쿠르드 주거지를 미사일로 공격하기도 했다. 살라미 총사령관은 특히 젊은이들이 "속고 있다"며 "적들의 노리개"가 되지 말 것을 경고했다. 이란에선 최근 대학생들에 이어 고등학생들까지 반정부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시위에 이란 경제의 근간을 지탱하고 있는 에너지 산업 노동자들의 가세가 변곡점이 될 지 주목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 석유 산업 노동자들의 시위 참여가 더 광범위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날 페르시아만 연안 부셰르주 아살루예 석유화학 공장 노동자들 및 이란 최대 정유단지인 후제스탄주 아바단의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인 것으로 알려진 데 이어 이날 이란 수도 테헤란 남부의 주요 정유 공장 노동자들도 시위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이란 정부는 석유 노동자 시위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반관영 매체는 이 시위가 임금 관련이라고 축소했지만 외신들은 소셜미디어(SNS)에 공유된 시위 자료 등을 보면 석유 노동자 시위에서 "독재자에게 죽음을"과 같은 이란 반정부 시위와 동일한 구호가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산업이 이란 경제의 핵심인 만큼 이들 노동자들의 시위가 정부에 상당한 압박감을 줄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블룸버그> 외교 분야 필자인 바비 고쉬는 특히 이번 시위는 이란 정부가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서방 제재를 이용해 유럽 등에 더 많은 석유를 공급하려고 꾀하고 있는 시점에 나와 영향력이 크가도 지적했다. 공급난에 시달리는 유럽이 미국을 설득해 이란에 대한 제재를 완화시켜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이번 시위 및 파업이 가져 올 생산 불안정과 더불어 정부의 가혹한 진압이 이어진다면 이런 기대가 충족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유럽연합(EU)은 오히려 추가 제재를 준비 중이다. <로이터> 통신은 11일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교부 장관이 EU가 전날 이란 시위 탄압 책임자에 대한 제재의 기술적 측면에 합의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콜로나 장관은 제재가 오는 17일께 승인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석유 노동자 시위는 이란에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1979년 팔레비 왕조가 전복되고 현재 이란의 통치 세력을 그 자리에 앉힌 이슬람혁명이 성공한 결정적 요인 중 하나로 석유 노동자들이 파업해 경제에 압박을 가한 것이 꼽히기 때문이다.

다만 워싱턴에 기반을 둔 비영리 에너지 연구 조직 에너지정책연구재단(EPRINC)의 마이클 린치 연구원은 <포브스>에 당시엔 이란산 원유의 생산과 수출이 중단될 것을 우려한 미국 등이 압박을 가하며 정권이 받는 압력이 가중됐지만 이란이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란산 원유의 세계 시장 영향력은 크지 않고 현 정권에 그와 같은 영향력을 행사할 타국 정부를 찾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편 영국 BBC 방송은 이번 시위의 계기가 된 아미니의 가족이 정부로부터 협박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쿠르드 민병대(페시메르가) 소속인 아미니의 사촌 에르판 모르테자이가 인터뷰에서 아미니 가족이 "이란 정부 관리들에게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인권단체를 포함해 이란 외부 창구와 소통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아미니의 죽음에 대한 정보를 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방송에 정권 관리들이 가족들에게 "시위에 가담하면 살해당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7일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이란 반정부 시위 연대집회에 참석한 한 이란 여성이 히잡을 태우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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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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