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우 공습은 '러 강경파에 주는 선물'…전쟁의 '성격' 바뀌고 있나?

WP "전쟁 성격이 정적인 장기전에서 확전 태세로 바뀌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공습은 최근 우크라이나의 연이은 영토 수복으로 강경파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는 데 대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응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장에서 떨어진 이번 공격이 당장의 전세 회복과는 거리가 있고 정치적 판단이 우선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다. 이번 공습이 러시아 공세 방식의 전환을 의미하는지 속단할 수는 없지만 최신 방공 시스템 제공을 포함해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방식의 변화를 불러일으켜 전쟁이 이미 확전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우려가 나온다. 

10일(현지시각) 외신들은 러시아의 키이우 공습이 전쟁 수행에 대한 전략적 목적보다는 내부 강경파의 불만을 진정시키고 국민들에게 위력을 과시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달부터 러시아가 점령한 자국 영토를 대규모로 수복 중이고 심지어 푸틴 대통령이 지난달 말 러시아로의 합병을 선언한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의 4곳 주(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에 대해서도 탈환이 이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속속 승전보를 올리며 푸틴 대통령은 최근 몇 주 간 러시아 내 강경파의 불만에 직면해야 했다. 지난 1일 강경파인 체첸 공화국 수장 람잔 카디로프는 "저위력 핵무기 사용" 필요성까지 언급하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강경파는 푸틴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더 적극적 공세를 펴지 않는국방부를 비난했지만 사실상 푸틴 대통령이 안팎에서 궁지에 몰렸다는 해석이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공격으로 "푸틴이 강경파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줬다"고 짚었다. 이날 오전 러시아가 키이우를 비롯해 르비우·하르키우 등 우크라이나 도시 10여 곳을 미사일로 공격해 적어도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강경파는 이번 공격을 환영했다. 카디로프는 소셜미디어(SNS)에 "100% 행복하다"고 밝혔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NSC) 부의장은 소셜미디어에 러시아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크라이나 정부를 "완전히 해제"하는 것이라며 더 적극적인 공세를 촉구하기도 했다.

키이우 공격은 전세를 뒤집는 전략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요 전장은 러시아가 합병을 선언한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지역으로 북부 키이우 공격은 당장의 전황을 바꾸는 것과는 무관해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가 계속해서 영토를 수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공격이 러시아 엘리트와 대중들에게 "푸틴 대통령이 여전히 유능하고 군 또한 훌륭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지만 전장이 아닌 다른 곳에 테러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오히려 "군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보여줬다고 푸틴 대통령의 연설비서관 출신인 러시아 정치 평론가 아바스 갈리야모프를 인용해 꼬집었다.

이번 폭격이 러시아의 전쟁 수행 방식을 바꾸는 전환점이자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 노골화되는 최악의 확전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푸틴 대통령은 키이우 공습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전쟁 활동의 일부분으로 묘사하기보다 8일 크림대교 폭발이라는 "테러 행위"에 따른 일회성 조치임을 시사했다. 서방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채 러시아산 자원을 대량으로 수입하며 러시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중국의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후시진 전 편집인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의 키이우 폭격에 대한 정의가 "온건"했다며 "이는 러시아의 보복이 제한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의 마오닝 대변인은 10일 언론 브리핑에서 이번 공격을 언급하며 상황이 가능한 빨리 진정되기를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외신은 푸틴 대통령이 크림대교 폭발 주체로 우크라이나를 지목하며 서방을 함께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는 우크라이나의 저항 배후에는 미국과 영국 정부가 있다는 전형적인 러시아 대통령궁(크렘린)의 수사와 거리가 있다"며 "이러한 전환은 러시아 지도자가 확전을 통제하는 데 관심이 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의 직접 갈등을 유발하지 않으려 한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매체는 이와 더불어 이번 폭격이 민간인을 공격 목표로 삼지 않는다는 러시아의 기존 주장과 배치되고 러시아가 자국의 문화유산으로 여기는 키이우를 파괴하는 모순을 안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공격은 러시아 쪽에 다소 부담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지역 합동군 총사령관으로 잔혹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세르게이 수로비킨을 8일 전격 임명한 것은 확전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수로비킨 총사령관은 2017년 시리아 파견부대 사령관을 역임할 당시 반정부 세력에 대한 무차별 폭격을 가해 도마에 오른 전력이 있다. 이번 공습은 수로비킨의 새 사령관으로서의 업무 첫 날 이뤄졌다. 10일 알렉산드르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수천 명의 러시아군이 벨라루스군과 합동 지역군을 꾸려 벨라루스에 배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 북쪽에 위치해 주요 전장이 현재의 남부와 동부에서 북부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빅토르 본다레프 러시아 상원 국방안보위원장은 10일 소셜미디어에 이번 공습이 "특별군사작전"의 "새로운 단계"이며 더 "단호한" 조치가 뒤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전쟁 수행 방식을 바꾸는 것은 최근 한 달 간 국내외에서 수세에 몰린 푸틴 대통령이 극단적인 핵무기 사용 위협을 가하는 것 외의 다른 압박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러시아 정치학자인 블라미디르 페스투코프는 <뉴욕타임스>에 "오늘 푸틴 대통령의 모든 행동은 핵발사 버튼만 남아 있는 이 궁지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해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폭격을 갑작스런 전환으로 보기 보다 우크라이나의 수복이 시작된 최근 몇 주 간 이 전쟁의 성격이 서서히 바뀌어 왔다고 분석했다. 매체는 우크라이나의 영토 탈환부터 푸틴 대통령의 부분 동원령, 핵 위협을 동반한 최근 몇 주 간 "전쟁이 겨울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였던 정적인 포병전에서 빠르게 확전되는 다면적 충돌로 갑자기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전쟁 양상이 변화한 탓에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개념이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에서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더 강력하게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는 지속적으로 더 많은 무기를 서방에 요구해왔지만 서방은 망설여 왔다. 하지만 민간인에 대한 폭격이 자행된 이상 더 정교한 방공 시스템은 물론 방어를 위해 그 동안 미국이 지원을 꺼려 왔던 탱크 지원 필요성까지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방의 추가적인 무기 지원은 이미 시작됐다. 도이치벨레(DW)는 10일 크리스티네 람프레히트 독일 국방장관이 "수일 내"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로버트 메넨데스 미 상원 외교위원장은 성명을 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가속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엘리사 슬로트킨 미 하원의원 또한 소셜미디어에 방공 시스템 제공이 "시급"하며 현 상황에서 이는 확전이 아니라 "방어"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다만 <워싱턴포스트>는 현 시점에서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어떤 무기를 보낼 지를 결정하는 비교적 긴 승인 절차를 변경할 조짐은 감지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10일 미 백악관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들과 11일 화상 회의를 갖고 이번 공격을 포함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책임을 묻고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10일(현지시각) 러시아가 공습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길거리에 피가 배어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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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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