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머쓱케 한 OPEC+ 대규모 감산…"사우디, 러시아 편에 선 것"

감산으로 유가 오르면 러에 이득…EU 유가상한제·바이든에 대한 불만 표출한 '정치적 결정' 의혹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를 포함한 비 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가 대규모 감산을 선언하면서 유가 상승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감산 결정은 유럽연합(EU)의 석유 가격 상한제 합의 직후 이뤄지며 정치적 결정이라는 의혹을 샀다. OPEC을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번 감산으로 사실상 러시아 편에 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7월 인권 단체들의 비난에도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외교적 노력이 실패했다는 시각이 나오며 다음 달 미국 중간선거에도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OPEC+는 5일(현지시각)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월례 장관급 회의 결과 다음 달 하루 원유 생산량을 지난 8월보다 200만배럴 줄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2년 만에 가장 큰 감산폭으로 전세계 공급량의 2%에 해당한다. 이번 감산으로 OPEC+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4185만배럴로 줄게 된다. <로이터> 통신 및 <뉴욕타임스>(NYT)를 보면 OPEC의 사실상의 지도자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에너지 장관 압둘아지즈 빈살만 왕자는 이번 감산이 서방의 금리 인상과 세계 경기가 약화 조짐에 따른 "선제적" 대응이라고 밝혔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스 미국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이날 성명을 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세계 경제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계속해서 악영향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OPEC+의 근시안적 감산 결정에 실망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다음달 전략비축유 1000만배럴을 추가적으로 방출할 예정이라고 설명한 뒤 "바이든 행정부는 OPEC의 에너지 가격에 대한 통제를 줄이기 위한 추가적 조치를 의회와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은 성명에서 언급된 "추가적 조치"가 가격 담합에 대한 소송에서 OPEC+ 회원국과 이들 국가의 국영 석유기업에 대한 면제를 폐지하는 '석유생산수출카르텔금지(NOPEC)' 법안 적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법안은 지난 5월 미 상원 법사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번 회의에서 OPEC+가 감산을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국제유가는 이미 지난주부터 상승하기 시작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의 경우 지난 3일 전 거래일 대비 5% 이상 가격이 뛰었고 다음 날 연이어 3% 이상 상승한 뒤 감산폭이 시장 예상보다 더 큰 것으로 밝혀지며 5일 1.4% 가량 추가로 상승해 배럴당 87.76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두바이유의 경우도 가격이 4일 3% 넘게 오른 데 이어 5일에도 1.3% 추가 상승해 배럴당 92.12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급등한 원유 가격이 급등해 한 때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지만 6월부터 다시 하락하며 9월엔 배럴당 80달러 밑으로 떨어져 전쟁 직전 수준보다도 가격이 낮게 형성되기도 했다. 이번 OPEC+의 감산 결정으로 원유 가격이 재차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OPEC+ 회원국들이 현재 목표 생산량만큼 원유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실제 감산폭은 하루 100만~110만배럴 가량일 것이라고 압둘아지즈 장관은 설명했다.

이번 감산을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실패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사우디 출신 언론인 자말 까슈끄지 살해에 관해 사우디를 비난해 온 바이든 대통령은 인권단체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유가 안정을 위한 증산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7월 사우디를 방문해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만났다. 그러나 이후 대규모 증산을 끌어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지난달 소폭 감산에 이어 이번 대량 감산에 직면했다. 다음달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내려진 감산 결정은 유가 하락에 힘입어 물가의 추가 상승을 방어하고 있었던 바이든 정부에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감산이 "걸프 동맹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영향력이 기대보다 훨씬 적다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이번 결정이 경제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유럽외교협회(ECFR) 걸프 지역 담당 연구원인 신지아 비앙코를 인용해 이번 감산은 사우디가 바이든 대통령 받문 뒤 미국으로부터 그다지 얻은 것이 없다는 실망감을 표출하는 것이며 "돈과 아무 상관도 없고 분명한 정치적 결정"이라고 보도했다. OPEC+에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국과 대립 중인 이란이 포함된다는 점도 이 같은 시각을 부연한다.

감산은 이날 앞서 유럽연합(EU)이 합의한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에 대한 OPEC+ 국가들이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컨설팅 업체 에너지애스팩트의 암리타 센 석유 부문 수석 분석가가 "이는 매우 정치적이고 OPEC이 원유 가격 상한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신호"라며 "실제로 작동을 하든 안 하든 이들은 가격 상한제를 위험한 선례로 본다"고 설명했다.

중동 쪽은 이번 결정은 순전히 경제적이라고 주장했다. 수하일 알 마즈루이 아랍에미리트(UAE) 에너지 장관은 <파이낸셜타임스>에 OPEC+는 2008년과 같은 원유값 폭락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러시아에 대한 논의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진의가 어떠하든 이번 결정이 러시아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감산은 원유값 상승을 불러와 러시아의 원유 수출 이윤을 즉각적으로 높인다. 더구나 원유값이 높게 유지될 경우 러시아산 원유를 할인가에 대량 구매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가 서방 제재에 동참할 유인이 떨어진다. 높은 에너지 가격에 신음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의 고통은 심화될 전망이다. 크리스 머피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은 미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감산은 "미국과 사우디의 동맹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져야 한다"이라며 "사우디는 사실상 미국 대신 러시아를 선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는 더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주가가 폭락한 가스프롬·로스네프트·루코일 등 러시아 에너지 기업에 사우디 국부 펀드가 상당한 지분을 보유 중인 사우디 알왈리드 빈탈랄 왕자가 운영하는 사우디 투자회사 킹덩홀딩스가 6억달러(약 8400억원)나 투자한 것을 들어 러시아와 사우디의 경제적 밀착이 깊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전문가들은 사우디가 지난 3월 유엔(UN)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에 동참했고 러시아산 원유의 대체 공급처를 찾고 있는 유럽 국가들에 대한 판매를 늘렸다고 해서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고 덧붙였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 장관이 5일(현지시각)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OPEC+ 월례 장관급 회의 뒤 기자회견에 임하고 있다. OPEC+는 이날 회의에서 다음 달 일일 원유 생산량을 크게 줄이기로 결정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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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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