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반전 시위대에 '소집 통지서'…푸틴, 동원령·포로교환으로 양쪽서 비난

"전쟁은 푸틴 개인 프로젝트" 탈출 이어져…라브로프, 안보리서 젤렌스키 "개XX" 비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부분 동원령을 내린지 하루 만에 러시아 전역에서 빠르게 징집이 시작됐다. 예비군을 동원하겠다는 발표와는 달리 군 경험이 없는 이들도 징집되고 소수 민족 지역에 더 많은 징집 통지서가 날아들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반전 시위대들은 연행된 경찰서에서 동원 통지서를 받기도 했다. 동원령에 시민들이 크게 동요하는 가운데 러시아가 '네오나치'로 규정한 아조우 연대를 포함한 우크라이나와의 포로 교환 성사에는 강경파가 반발하며 푸틴 대통령이 양쪽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 영문 매체 <모스크바타임스>는 22일(현지시각) 전날 푸틴 대통령의 동원령 뒤 러시아 전역에 병사 추가 모집 사무소가 문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정부가 동원령이 예비군을 대상으로 한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징병된 이들 중엔 군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남동부 부랴티아 지역 언론인 야니나 니마예바는 이날 군 경험이 전혀 없는 자신의 38살 남편에게도 동원 명령이 내려왔다고 폭로했다.

동원이 부랴티아 지역을 포함해 소수민족 거주지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의혹도 나온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반전 단체인 자유부랴티아재단 회장인 알렉산드라 가르마자포바가 동원령이 내린 뒤 하루 만에 부랴티아 지역에서만 3000건이 넘는 소집 통지서를 확인했다며 "이건 부분 동원이 아니라 100% 동원"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소셜미디어(SNS) 등에 공유된 징집 관련 영상을 보면 러시아 중심부에 비해 우크라이나전에서 이미 상대적으로 더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소수민족 거주 지역에서 이번에도 더 많은 동원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시베리아 지역과 무슬림 거주자가 많은 캅카스 산맥 지역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서남부 카바르디노발카리야와 북동 시베리아의 야쿠티아 지역에서 소환장이 발부되는 모습이 여럿 공유됐다. 이미 전쟁에서 아들 한 명을 잃은 한 여성은 <뉴욕타임스>에 새로 동원된 병사들을 실은 버스 세 대가 러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자신의 거주지 서남부 다게스탄을 떠났다고 말했다. 야쿠티아 지역 수도인 야쿠츠크의 지역 한 활동가는 외딴 북극 지역 마을에서 비행기로 신규 입영자들이 이송되고 있다며 "공황과 공포가 도처에 있다"고 이 매체에 말했다. 러시아군은 이날 24시간 동안 1만 명에 이르는 자원 입대를 받았다고 밝혔다.

동원소집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던 청년들이 경찰에 연행돼 소집 통지서를 받기도 했다. <모스크바타임스>를 보면 경찰은 모스크바에서 벌어진 동원 반대 시위를 취재하던 기자 아르티옴 크리거까지 시위대와 함께 연행해 소집 통지서를 발부했다.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 말고도 10명 이상의 남성이 22일 통지서를 받았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시위를 벌이다 모스크바 경찰서에 구금됐던 미하일(29) 또한 경찰이 통지서를 건네며 거부할 경우 감옥에 가게 된다고 위협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러시아 인권단체 OVD-Info를 인용해 최소 6개의 모스크바 내 경찰서에서 시위대에 대해 징집 통지서를 발부했다고 전했다. 관련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궁(크렘린) 대변인은 경찰이 구금자들에게 소집 통지서를 발부하는 것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OVD-Info는 21~22일 동원 반대 시위로 구금된 인원이 1336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변호사 그리고리 베이판은 <뉴욕타임스>에 부분 동원령의 충격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2월24일에 비견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 때 '저 쪽에서' 전쟁이 시작됐다. 이제 '여기서'도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병사들에게 법적 도움을 제공하는 단체인 '시티즌'의 대표 세르게이 크리벤코는 <모스크바타임스>에 "평소 하루 50 건 정도 오던 문의가 지난 이틀 간 1만4000건으로 늘었다"며 "공포가 엄청나다"고 말했다. 러시아 독립 언론 <노바야가제타유럽>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동원 규모가 기존에 정부에서 발표한 30만 명이 아니라 100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징집을 피하기 위한 탈출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튀르키예(터키), 카자흐스탄 등 러시아인이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인접국들로 가는 비행기표는 매진되거나 가격이 급등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로의 진입도 급증했다. 22일 <로이터> 통신을 보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3시간 거리인 핀란드 발리마 국경 경계엔 이날 오후 300~400m씩 차가 줄을 서 있었다. 다만 핀란드 국경수비대장은 밤에 정체가 더 심해졌지만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국경수비대는 21일 4824명의 러시아인들이 동부 국경을 통해 핀란드에 도착했으며, 이는 일주일 전인 3133명에 비해 많은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BBC 방송은 조지아와의 국경에도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차량 행렬이 이어졌고 혼잡을 피해 자전거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한 남성은 징집을 피해 러시아를 떠나기 위해 12시간이나 줄을 섰다고 전했다.

현재 튀르키예에 머물고 있는 선원 드미트리(26)는 <뉴욕타임스>에 지난 24시간 동안 그의 친구들이 러시아를 떠나기 위한 항공편과 국경 상황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았다면서 지금까지 대부분의 친구들이 러시아에 머물고 있었던 것은 우크라이나전이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침공이 푸틴의 '개인 프로젝트'라고 일축하며 이제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를 떠나기를 원한다. 한 사람(푸틴)의 의견 때문에 전장에 나서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징집을 피해 달아나는 러시아인들에 대해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인들이 발로 투표하고 있는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탈출 남성들에 대한 연대를 표명했다. 다만 망명을 제공하거나 비자 발급을 빠르게 해 주는 등 실질적인 조력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발트 3국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는 이미 21일 동원을 피해 넘어 오는 러시아인들에게 망명 신청 자격을 주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22일 "러시아인들이 핀란드에 관광 목적으로 입국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의 부분 동원령을 언급하며 "상황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 반전 지지자들과 일반 시민들에게 큰 동요를 일으킨 부분 동원령에 더해 22일 전격 이뤄진 우크라이나와의 포로 교환은 강경파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며 푸틴 대통령이 이중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극우 강경파들이 푸틴 대통령이 전쟁 명분으로 내세운 우크라이나의 '비나치화'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아조우 연대의 석방을 "범죄보다 나쁘다"며 비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은 23일부터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인 친러 성향의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이 세워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 남부 자포리자주와 헤르손주에서 23~27일 러시아 편입에 대한 주민 투표가 실시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22일 성명을 내 "이른바 '주민투표'라고 불리는 것을 가장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나토는 이 투표는 "합법성이 없고 노골적인 유엔(UN) 헌장 위반"이라며 "나토 동맹은 불법적 합병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라브로프, 안보리서 젤렌스키 "개XX" 비유…우크라이나 외교장관 "부적절한 속어" 비난 

한편 2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위원회 회의에서 참석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강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러시아어 사용자들을 억압해 왔다는 기존 러시아 정부 입장을 되풀이하며 침공을 정당화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서방을 비난하며 "러시아 안보의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AP> 통신을 보면 이날 회의에서 자신의 발언 시간에만 짧게 모습을 드러낸 라브로프 장관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개XX(son of bitch)"에 비유해 우크라이나 쪽의 반발을 샀다. 라브로프 장관은 젤렌스키 정부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그는 개XX지만 나의 개XX(he’s a son of a bitch, but he’s our son of a bitch)"라는 입장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드미트리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러시아의 "부적절한 속어" 사용을 비난했다. 

'개XX지만 나의 개XX'라는 표현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전 대통령이 니카라과의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에 대한 입장을 설명한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한 공식 기록은 없다. 부패하거나 타락한 세력이라도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면 지지한다는 의미로 처음 사용자나 어원이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라브로프는 2013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도 이 표현을 사용했다.

▲ 22일(현지시각) 러시아 남부와 접한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 국경의 베르흐니 라르스 검문소에 차들이 길게 줄지어 있다. 동원령을 피하려는 러시아인 출국자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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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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