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르키우 철수로 흔들리는 러시아…국영매체도 "승리 불가능" 주장 방송

지역의원들은 "푸틴 퇴임 촉구" 서명운동…국영방송서 평화협상 촉구 목소리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으로터 동북부 하르키우주를 탈환하면서 러시아 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반대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러시아 전역의 지방 의원들이 푸틴 대통령의 퇴임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고 국영 방송에서까지 승리가 "불가능"하며 평화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러시아 매체 <모스크바타임스> 등 외신을 종합하면 12일(현지시각) 모스크바시 및 상트페테르부르크시 지방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19명의 공직자가 푸틴 대통령 퇴임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을 소셜미디어(SNS)에 게재하며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는 크세니아 토르스트렘 상트페테르부르크 세메노프스키 지역 의원은 시베리아 야쿠츠크 지역에서부터 우크라이나에 비교적 가까운 볼가 강변의 사마라 지역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전역에 걸쳐 지역 대표 84명이 추가로 서명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성명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채 다만 "푸틴 대통령의 행동은 러시아와 러시아 시민의 미래에 해롭다"는 이유로 "블라디미르 푸틴이 러시아 대통령직에서 사임할 것"을 촉구했다. 성명에 전쟁을 직접 명기하지 않은 것은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허위 정보"를 유포할 경우 최고 징역 15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개정된 법을 피해가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이 아닌 "특수군사작전"으로 칭하고 있다. 

서명자 중 한 명인 모스크바 지역 의원 바실리 호로실로프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급진적 애국자들조차도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며 성명이 푸틴 대통령 퇴진에 결정적 기여를 할 수는 없어도 정치적 반대파들에게 러시아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내부에서 드물게 푸틴 반대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분출된 것은 지난주 우크라이나가 하르키우주를 탈환한 상황 때문에 더 이목을 끈다. 지난 7일엔 상트페테르부르크 드미트리 팔류가 등 7명의 스몰닌스코예 지역 의원들이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 국익을 침해했다는 요지로 러시아 하원(국가 두마)에 푸틴 대통령 탄핵 호소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팔류가 의원 등은 "집권층에 대한 불신" 혐의로 일단 경찰에 소환된 뒤 풀려났지만 벌금형에 처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미국 CNN 방송이 보도했다. 러시아 내 정치적 탄압을 추적하는 독립적 인권단체인 OVD-Info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침공 뒤 반전 운동 혐의로 1만6437명이 체포되거나 구금됐다.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 수복으로 전쟁 반대자들뿐 아니라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를 보면 미하일 셰레메트 러시아 하원의원은 12일 현지언론에 "총동원" 없이는 우크라이나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 등이 러시아군 사상자가 8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는 상황에서도 러시아 내부의 안정을 중시하며 대규모 징집에 거리를 두고 있는 푸틴 대통령의 방침에 대한 암묵적 비판으로 여겨진다. 세르게이 미로노프 하원의원도 11일 소셜미디어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기반시설 폭격을 두고 이 공격이 "2~3개월 전에 이뤄져야 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지난 10일 하르키우에서 철수를 시작한 뒤에도 주말 이 지역을 폭격해 단전과 단수를 유발했다. 

<뉴욕타임스>는 엄격히 통제되는 러시아 국영 매체들에서까지 최근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는 우크라이나를 더 강경하게 몰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평화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는 것이다. 9일 러시아 국영 방송 NTV에 출연한 보리스 나데즈딘 전 하원의원은 "러시아군은 경제적, 그리고 기술적으로 가장 강력한 나라들이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강한 군대와 싸우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를 패퇴시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평화협상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는 다수당 통합러시아당 하원의원인 콘스탄틴 자툴린은 12일 <뉴욕타임스>와의 통화에서 러시아군의 후퇴가 "특별군사작전 아이디어에 매우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면서도 푸틴 대통령이 실각할 것이라는 주장은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퇴각이 시민들 사이에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러시아 정치학자 비탈리 트레티야코프는 8일 국영 방송 로시야1에 출연해 "승리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지만, 이 확신은 실제 결과에 의해 뒷받침돼야 한다"며 "사회적 긴장은 사람들이 작전(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 아니라 왜 이기지도 못하고 진전도 없는지에 대해 물을 수 있기 때문에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유러피안대 정치학 교수 이반 쿠릴라는 <뉴욕타임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침내 무언가가 무너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며 "틀릴 수도 있고 시기상조겠지만, 모두가 어떤 균열이 생기길 반 년 동안 기다려 왔기 때문에 이 희망은 매우 강하다"

러시아 쪽은 침공이 "원래의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르트스트림1 가스 끊은 러시아, 8월 재정 흑자 대폭 감소

한편 서방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 공급을 줄인 러시아의 재정 흑자가 대폭 감소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12일 발표된 러시아의 올해 1~8월 누적 재정 흑자는 1370억루블(약 3조1222억원)로 1~7월 누적 흑자인 5000억루블(약 11조4100억원)에 비해 크게 줄었다고 지적하며, 8월 한 달에만 3600억루블(약 8조2044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흑자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던 석유 및 가스 공급을 줄이며 이에 따른 대금 수입이 줄어든 것이 적자에 기여한 것으로 봤다. 러시아의 1~8월 석유과 가스대금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18% 줄었다. 매체는 러시아가 이달 초 독일로 향하는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1을 무기한 폐쇄한 것을 들어 9월 이후엔 수입이 더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 우크라이나 군인이 12일(현지시각) 러시아로부터 탈환한 하르키우 지역에서 다친 전우를 부축하며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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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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